엔터테인먼트
2018년 12월 29일 16시 00분 KST

임성한 작가가 '막장드라마'를 쓴 이유에 대해 직접 밝혔다(인터뷰)

최근에는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 이라는 책을 냈다

 
한겨레
20여년간 쉼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손마디가 굵어졌다. 임성한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작품마다 성공시킨 인기 작가이자, 자극적 설정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시대를 연 작가.’ 임성한 작가는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하지만 그의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 몰라도, 필력을 갖춘 작가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거의 없다. 2015년 드라마 절필을 선언한 그가 최근 건강책 작가로 돌아왔다. 언론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 그를 최근 만나 20여년 드라마 작가 생활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검은 생머리에 원피스를 입은 귀여운 여자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임성한이에요.” ‘소문의 임성한’은 눈이 세개고 입이 두개인 줄 알았다. “하하하, 괴물이 아니어서 실망하셨나요?” 실망까지는 아니지만 몹시 놀랐다.

평범한 모습이 되레 의아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집필한 드라마와 그를 둘러싼 소문 탓이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신기생뎐>), 웃다가 사람이 죽는(<하늘이시여>) 등 흔히 사용하지 않는 설정으로 ‘막장 대모’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사람도 안 만나고 골방에만 처박혀 산다” “신내림 받았다” 등 소문도 난무했다. “하하하, 저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해요. 말도 많고요. 알아보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미디어로부터 철저히 나를 감추려 했으니, 거기에서 비롯된 억측들은 감수해야죠.”

 

자신을 드러내는 걸 한사코 거부해온 그를 12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91년 <드라마 게임?미로에 서서>(한국방송)로 데뷔한 이후 언론사와 직접 만나 ‘대면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자유로운 생활을 방해하는” 사진 촬영은 거절했지만, 드라마 작가 인생에 대한 소회, ‘막장’ 논란, ‘사람 임성한’ 등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뭐든 다 물어봐요”

 

“다 물어봐요. 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훅 치고 들어갔다.

 

-임성한 작가가 건강책 냈다는 얘기에 ‘사이비 건강 정보’ 아니냐는 말들이 있어요. 

그는 지난 11월 건강책인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의 건강 365일>을 냈다. 2015년 드라마 절필 선언 이후 3년 만이다. 두통, 불면증, 빈혈, 비만 등 20가지에 좋은 식단과 건강 상식 등이 적혀 있다.

 “읽어보면 그런 말 안 나올 거예요. 효과적인 식단, 운동 등을 적어놨어요. 내 몸에 직접 쑥뜸도 떠보고 부항도 해보고 별걸 다 해봤어요. 내가 직접 체험해서 효과 본 나름의 노하우를 전하고 싶었어요. ”

 

-마지막 드라마 끝나고 3년 지났으니 돈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요.

“하하하. 돈은 많이 벌어뒀어요. 20여년간 돈 쓸 시간도 없이 드라마만 썼는데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악성 빈혈로 휴학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2남 2녀 중 막내딸이어서 엄마가 몸에 좋은 건 다 구해다 먹였죠.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고, 주위 사람들에게 건강 관련 말을 계속 해대다가, 말하는 게 힘들어서 그래서 썼어요. 이왕 냈으니까 파는 거고.” 2쇄로 찍은 5000부 중 1000부를 지난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직접 전국을 돌며 무료로 나눠줬다. “시청자들한테 많은 사랑 받았으니,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책을 빌미로, 이참에 다시 드라마 쓰시려는 건 아니고요?

“이건 꼭 써주세요. 드라마 다시는 안 씁니다. 할 만큼 했어요.”

임성한 작가는 2015년 <압구정 백야>를 마지막으로 드라마 은퇴를 선언했다. “시작부터 10편만 쓰자고 막연히 생각해왔다”고 했다. “작가가 은퇴가 어딨냐”며 제작사나 피디들은 아직도 그에게 손짓을 보낸다. 성적으로만 보면 ‘흥행불패’인 임성한 작가는 방송사한테는 ‘좋은 작가’였다. 1998년 <보고 또 보고>부터 2015년 <압구정 백야>까지 작가가 된 뒤 쓴 10편이 모두 성공했다. <보고 또 보고>의 그해 10월12일 방송은 지금까지 일일연속극 역사상 최고 시청률인 57.3%를 기록했다.

 

-두편 빼고 모두 일일드라마예요. 성공 비법이란 게 있을까요?

“일일드라마는 순발력이 중요해요. 늘 두달치를 미리 써놓고 시작하지만, 방송 나가고 2~3주부터 쓰는 게 진짜예요. 방송을 2주 보면 캐릭터에게 어떤 에피소드를 줘야 하고, 대사를 어떻게 찰지게 바꿔야 하는지 등이 보여요. 그때 빠르게 수정해야 해요. <온달왕자들> 때는 막상 방송이 나가니 온달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셔야 시청률이 오를 것 같아, 한달치 대본을 다 날리고 사망 시점을 당겼죠.”

하지만 성공률과 관계없이 내용을 파고들면 의견이 갈린다. 1998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겹사돈(<보고 또 보고>)부터, 엄마가 친딸을 며느리로 삼는(<압구정 백야>) 등의 일반적이지 않은 설정들이 불편하다는 시선도 만만찮았다. 시청자들은 2002년 <인어아가씨> 연장 방영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절반의 시청자가 좋아하는 한편 그만큼의 시청자들은 거부했다. 지금도 개연성 없는 드라마를 평할 때 “임성한도 아니고”라는 말이 나온다.

 

-20년 작가 인생이 ‘막장’으로 정리되는 건 아쉽지 않나요?

“괜찮아요. 제 드라마를 좋아해주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전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려고 해왔어요. 시청자도 재미있게 봐야 하고, 방송사도 성적에서 만족해야 하고, 스태프들도 힘 안 빠져야 하고 그 모든 선에서 공통분모를 찾았어요. 드라마 대본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작업해요. 모두 성공해야 하고 손해를 봐서는 안 되죠. 그러려면 작가가 혼자 예술 하고 있으면 안 되죠.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으면 좋지만, 전 둘 다는 안 돼서 재미 쪽에 방점을 둔 거죠.”

 

 

“죽어도 임팩트 있게”

 

-그 재미가 갈수록 ‘센 설정’들로 가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자극에 민감하고 둔해지면서 갈수록 더 센 것을 원하니까요. 계속 변화를 줘야 해요.” 그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신기생뎐> 장면도 당시 방송사 간부가 “시청률 25%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에 고민하다가 넣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29.5%를 찍었죠.”

 

-센 설정이 꼭 빙의나 독특한 죽음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전 의외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 장면이라도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기발한 설정이 나와야 시청률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신기생뎐>은 힘든 결정이었어요. 처음에는 고민했어요. 그게 말이 안 되거든요. 드라마가 기생전으로 가는데 뜬금포로 빙의가 나오니까. 재미는 있지만 맥락에서 벗어나는 거니까, 작가로서는 아쉽고 쉽지 않죠. 하지만 이걸 하면 시청률이 오를 걸 알았어요. 작정하고 한 회차에 다 집어넣었어요.”

 

-작가가 작품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시청률 요구를 받아들이긴 쉽지 않은데요?

“드라마 작가는 자존심이 두개인데, 하나는 실력의 자존심이 있어요. 또 하나는 숫자의 자존심이죠. 시청률 25%를 부탁하는데 그 결과를 못 내면 그때도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요. 전 숫자에 대한 자존심이 더 앞선 거예요. 말도 되면서 시청률 오르면 최고인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어요.”

 

-독특한 죽음도, 재미를 위한 선택인가요?

“<하늘이시여>에서 개그프로그램을 보다가 웃다 죽는 장면도 이왕이면 임팩트 있게 죽어야 하니까, 일반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전 재미를 위해 시청자와 밀당해요. 시청자가 왼쪽으로 생각하면 오른쪽으로 틀어버려요. 거기에서 재미가 와요. 예상한 대로 흘러가면 재미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 <오로라 공주>를 할 때 모든 캐릭터가 다 죽고 떡대만 남겨 놓을 거라고 추측하기에 떡대를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죽였어요.” 

자신에 대한 비판에 계속 “괜찮다”면서도 억울하다는 심정도 살짝 내비쳤다. “이 이야기는 그대로 살려줬으면 좋겠어요. 방송의 기능은 재미인데, 지금 ‘먹방’ 하잖아요. 내가 어렸을 때는 먹는 거 쳐다보면 ‘거지처럼 먹는 거 쳐다보냐’고 했어요. 근데 지금 방송사들은 모두 먹방을 하고 시청자들은 그걸 봐요. 삶에 지친 사람들이 30~40분 현실 잊고 잠시 드라마 속 캐릭터에 빠져들도록 한 게 뭐가 그리 큰 죄냐는 거죠. 그 속에 세상도 있고 인간도 있고 지혜도 있는데 말이죠.”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는 사람의 페이소스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고고한 척하고 있지만, 니들도 속물이라는 점을 까발리는 놀라운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드라마에서 ‘난장판’으로 펼쳐진다. <압구정 백야>에서 당시 자신을 버린 엄마와 딸의 다툼 장면이 한회 내내 나온 사례 등이 그렇다.

 

-어깨에 힘 들어간 사람들의 리얼한 실상을 자주 보여줘요. 의도한 것인가요?

다들 우아하고 고상한 척하는데 재벌들 생활 나오는 거 보면 더 막장으로 살고 있잖아요. 일반인들이 입에 담지 않는 쌍욕을 해가면서 싸우고요. 전 사람들의 본성, 속성을 잘 알아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제 드라마 대부분은 현실 사회가 모티프에요. <압구정 백야>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버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버려진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기획했어요.”

 혹자는 그를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작가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의 드라마가 단순히 자극적 설정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욕하면서 보게 하는 힘’은 필력에서 나온다. 임성한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작가였다. 1997년 <문화방송> 공모 당선작 <두 여자>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전라도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는 충청도 며느리와 사는 이야기로,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교본처럼 사용된다. <문화방송> 공모에 당선된 뒤, 습작처럼 써놓은 단막극을 피디들이 한 달 내내 방영한 적도 있다. <문화방송> 출신 한 피디는 “한 작가의 작품만 내리 내보낼 수 없어서 임 작가의 작품을 가명으로 한달 내내 내보냈다”고 말했다. <보고 또 보고>는 공모 당선 전에 이미 혼자서 3분의 1을 써놓았다.

 

 

“글 쓸 때는 세상을 끊어요”

 

-어려서부터 글 쓰는 재주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백일장에 당선된 적도 한번 없었고요. 비결은 노력이에요. <문화방송> 공모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6~7년간 완전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어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드라마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그 뒤에도 작품 쓸 때마다 세상을 잘 끊었어요. 하하. 세상을 버리고 친구도 버리고 여행, 즐거움 다 버렸잖아요. 그 하나에만 매달렸어요. 그러니 그 결과가 오더라고요. 드라마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대본이 안 나와요.”

 

-주말드라마 두편을 제외하고 모두 일일 연속극을 썼어요. 

“<보고 또 보고> 이후에 미니시리즈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국장님이 그러더라고요. ‘성한씨 미니 할 작가는 많아. 근데 연속물 쓸 작가는 없어.’ 그래서 미니를 못 했어요. 제가 미니 대본을 주면, 그걸 쪼개서 연속극으로 내보내겠다고도 하셨으니까요. 길게는 1년 가까이 작업해야 하는 일일연속극은 작가라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미니를 했더라면 드라마를 더 썼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뭐든 괜찮았어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과 위안을 주고 싶어서니까요.”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들은 어떻게 쓰나요? 

“상상으로 써요. 작가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고전도 읽고, 식민지 시대 책도 읽고, 책으로 습득한 지식을 갖고 있다가 캐릭터를 잡으면 그에 걸맞는 정서가 따라 나와요. 물론 직업 취재는 따로 하죠. <두 여자>를 쓸 때는 전라도 말을 몰라서 <태백산맥> 열 권을 읽고 썼어요.” 그는 20여년 작가생활 동안 <보고 또 보고> 때 아파서 5일간 보조작가를 둔 것 외에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했다. “작가는 직접 취재를 해야 해요. 그래야 더 사실적으로 담을 수 있죠.”

임성한 작가는 회사 컴퓨터 강사 1년, 초등학교에서 8년간 컴퓨터 강의를 하다가 어떤 드라마 작가의 잡지 인터뷰를 본 뒤 “여자가 오랫동안 평생 할 수 있는 직업같다는 생각”에 진로를 바꿨다. “이후 작가를 해볼까 싶어 잘 보지 않던 드라마를 봤는데, 하필 그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어서 내가 쓰면 더 잘 쓰겠다는 생각에 작가교육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기초반 6개월을 다녔다. 그리고 임영란(본명)은 그렇게 임성한이 됐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어때요? 

“20여년간 대본 쓰다보니 예순이 코앞에 와 있네요.(임 작가는 60년생이다.) 밥 먹고 오로지 대본 생각만 하느라 남들 다 하는 여행도 마음껏 못했어요. 고스톱도 못 배웠고요. 하하.” 그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좀 더 놀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영화 시나리오와 책을 쓸 생각입니다.”

 

-혹시 영화도 막장일까요? 하하. 

“센 가족 이야기도 있고, 아닌 것도 있겠죠. 하하. 저 멜로도 코미디도 잘 써요.”

임성한 작가는 28살 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사비나. 강아지도 좋아한다. “엄마는 개성, 아빠는 황해도 해주 출신이라 우린 친척이 없어요. 엄마가 우리를 위해 강아지 9마리를 키웠죠. 돌쇠(화이트 테리어)를 지금 조카가 돌보고 있는데, 개를 키울 수 있는 집에서 개와 산책하면서 책 읽고 쓰고 그게 제 마지막 삶의 로망이자 목표예요.”

 

한겨레
임성한 작가의 서재. 책상과 책장은 20여년 세월을 함께 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