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8년 12월 28일 20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8일 20시 31분 KST

미국 무역적자와 중국 : 트럼프의 이길 수 없는 전쟁

트럼프의 오랜 '꿈'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Newspix via Getty Images
2011년 9월22일, 호수 멜버른에서 열린 'National Achievers Congress'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엄청난 국가안보 위협 중 하나다. 공정한 무역을 할 때다. 우리는 우리의(미국산) 제품들을 만들어야 한다.” 

2011년 11월, 부동산 재벌이자 TV쇼 진행자였던 도널드 J. 트럼프는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산만하고 목소리 큰 셀러브리티는 느닷없이 대중 무역적자에 분통을 터뜨렸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는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진지하게 검토중이었다.) 

″올해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기록적인 5000억달러를 찍기 직전이다. 그 돈은 여기로 돌아와서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 2012년 8월22일 트럼프가 트위터에 적었다. 

2011년에 올린 그의 트윗은 고작 260번 리트윗 됐다. 2012년 8월의 트윗은 305회 리트윗 되는 데 그쳤다. 유력 정치인도 아니고 거물 경제학자는 더더욱 아닌 그의 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트럼프의 분노 

UniversalImagesGroup via Getty Images
라스베가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 마련된 연단에서 2012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밋 롬니(가운데) 지지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2012년 2월2일. 당시 공화당 경선 출마를 검토했던 트럼프는 롬니의 '강경한 대(對)중국 정책'을 추켜세우며 지지를 선언했다. 롬니는 트럼프가 '중국이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말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라고 화답했다. 

 

그럼에도 ‘분노의 트윗’은 계속됐다. 트럼프는 누가 귀를 기울이든 말든 꾸준히 무역적자를 언급하며 중국을 비판했다. 그 논리의 정합성을 떠나서, 그의 주장에는 나름의 일관성이 있었다.   

“2010년에만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56만6000개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이건 미국 노동자들에게 지속가능하지 않다.” (2013년 1월23일)

″우리 무역적자가 여전히 5000억달러를 넘어설 기세다. 이게 우리 제조업 분야를 죽이고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있다.” (2013년 5월2일)

“5월에 우리 무역적자가 ‘역대 두 번째 높은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자유무역이 아니라 공정한 무역(을 해야 한다). 내가 뭐랬나.” (2013년 7월3일)

″미국의 무역적자가 4월에 6400억달러를 찍어 2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는 더 잘 대응해야 한다. 중국이 우리를 강탈해먹고 있다. 일자리를 되찾아오라!” (2014년 6월4일)

여기까지는 그가 2015년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적었던 글들이다. 언론이 ‘가십’ 비슷한 뉴스로 다뤘던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다시 무역적자와 중국을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이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는 승리를 거두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이겨본 게 언제입니까? 예를 들면, 무역협상에서 중국을 이겨본 게? 그들은 우리를 죽이고 있어요. 저는 항상 중국을 이깁니다. 항상이요.

(중략)

중국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말을 여러분들이 들어본 게 언제입니까? 그들은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할 수준으로 통화를 절하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 기업들이 (그들과) 경쟁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불가능하게. 그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했어요.” (트럼프 대선출마 기자회견문, 2015년 6월16일)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서자 그의 주장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클린턴이 지지하는 끔찍한 무역 정책 덕분에 무역적자가 7년래 최고로 증가했다. 나는 이걸 빠르게 고칠 것이다 - 일자리!”  

트럼프가 출마 기자회견 당일인 2016년 6월16일에 올린 트윗은 4569회 리트윗 됐다. 

임기 14개월째에 접어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우리의 ‘매우 멍청한’ 무역 협정과 정책들 때문에 연간 800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고 적었다. 2만8576회 리트윗 된 트윗이다.

 

무역에 대한 트럼프의 오래된 시각  

KENA BETANCUR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2016 대선 공화당 경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5년 6월16일.

 

트럼프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완전 성공한” 사업가이며 ”신이 지금껏 창조한 가장 위대한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 멕시코, 일본, 많은 국가들로부터 우리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고 했다. 

무역과 일자리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은 꽤 오래 전에 정립(?)됐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과정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가 무역에 대한 시각을 형성하게 된 계기, 그 때 만들어진 그의 관점이 어떻게 30여년 뒤 미국의 무역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 기사에는 트럼프가 1987년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신문에 낸 개인 의견광고가 등장한다. ”수십년 동안,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30여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가 하고 있는 말과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그 때의 ‘일본‘을 지금의 ‘중국’으로만 바꾸면 말이다. 

″우리가 동맹국으로서 제공하고 있는 보호에 대해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그밖의 다른 나라들이 돈을 내게 하라. (...) 우리의 거대한 (무역)적자를 끝내고, 세금들을 낮추고, 그들의 자유를 지켜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돈을 낼 여력이 충분한 국가들을 지켜주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서 미국 경제가 성장하도록 하자. 위대한 우리나라가 더이상 웃음거리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말자.” 

이 광고가 나갔던 1987년은 훗날 베스트셀러가 된 트럼프의 책 ‘거래의 기술’이 출간된 해이기도 하다. 1988년 대선에도 ”잠깐 동안 추파를 던졌던” 트럼프는 당시 TV 토크쇼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신문 광고에서 했던 주장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우리나라가 당하고만 있는 걸 보는 데 질렸다”고 했고, 일본산 수입품에 15%~2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나는 무역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의 무역적자로 미국이 돈을 빼앗기고 있다고 불평했고, 자신이 ‘앞마당‘으로 여겼던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록펠러센터를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사들이는 것을 놀란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건 당시 많은 미국인들에게 꽤 큰 충격을 선사한 ‘사건’이기도 했다.)

경제계와 정치계 지도자들은 자유무역 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 확대, 중국의 WTO 가입을 통해 세계화를 촉진·가속화해야 한다는 막 생겨난 합의를 지지했다. 세계화는 늘어가는 경제적 불평등, 중산층 소득 정체,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중국산 수입품에 의한 미국 제조업 붕괴와 같은 시기에 진행됐다.

스스로의 경험, 친구 및 사업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에 근거한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은 무역에 대한 그의 오래된 관점에 새로운 급박성을 선사했다. 그는 자신의 빌딩에 사용하기 위해 미국산 제품을 찾아봤음에도 오직 중국산 유리와 가구들 밖에 찾을 수 없었다고 불평했다. 중국에서 부동산 계약을 맺으려던 트럼프그룹의 시도는 최소한 4번 실패했다. 그는 중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상표권으로 등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11월15일)

Jeffrey Asher via Getty Images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 북 파티에서 책에 사인을 하는 모습. 오른쪽은 권투선수 에반더 홀리필드, 가운데는 영화배우 말라 메이플스. 1989년 7월21일.

 

시간이 흘러 트럼프는 2012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그가 무역과 이민정책에 있어 의견을 같이하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만난 것도 2010년이다. 트럼프는 폭스뉴스에 출연하거나 정치 유세에 참여해 무역에 대한 자신의 세계관을 ”시험해보기 시작했다”고 WSJ은 적었다. 

″잘 들어, 이 씨**들아, 우리가 너희한테 세금 25%를 매길 거니까!” 트럼프가 2011년 4월 라스베가스의 한 집회에서 했던 말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곧 ‘반(反)자유무역’ 이론가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WSJ은 소개했다. 오랫동안 자유무역을 비판해왔던 경제학자 피터 나바로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트럼프와 연락을 주고 받기 시작했고, 책과 글들을 트럼프에게 보내줬다.

트럼프는 2012년 나온 나바로의 다큐멘터리 ‘중국이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의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이 인연으로 훗날 나바로는 트럼프 정부에서 국가무역위원장 겸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맡게 된다.

나바로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 정부의 ‘무역 매파‘로 불린다. 이들은 올해 초 알루미늄·철강 ‘관세폭탄’을 기점으로 서서히 정책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즉 트럼프와 ‘케미‘가 맞지 않는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은 경질설에 시달리고 있으며, ‘관세폭탄’을 막아보려 했던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끝내 스스로 물러났다.

트럼프가 마침내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 붙인 ‘무역전쟁’을 막아세울 만한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전쟁 

ASSOCIATED PRESS

 

요즘 트럼프 대통령에게 고민이 하나 있다면, 좀처럼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WSJ은 27일 올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거꾸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10월까지 벌써 5030억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510억달러보다 늘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감세 조치로 소비 여력이 늘어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면서 수입 제품 소비도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도 영향을 미쳤다. 수입 가격이 올라갈 것을 우려한 미국 기업들이 제품 수입을 서두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상황들을 볼 때 미국의 무역적자는 내년에도 줄어들기 어렵다고 이 매체는 전망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불황(이탈리아)과 반정부시위(프랑스), 브렉시트(영국)로 각각 몸살을 앓고 있고,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가 깊어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에도 여파를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세계 수요가 둔화되는 반면, 견조한 소비지출을 보이고 있는 미국 시장을 향한 수출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무역적자 축소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늘어날 때는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에 달러는 더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미국은 더 낮은 가격에 제품들을 수입할 수 있게 되지만, 거꾸로 미국 기업들이 수출하는 제품들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기 어렵게 된다는 뜻이다.

Artyom Ivanov via Getty Images

 

중국산 수입품에 막대한 관세를 매겨서 미국에서 비싸게 팔리도록 만들면, 미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사게 될까? 그러면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대개의 미국 소비자들에게 미국산 제품은 너무 비싸고, 중국산을 대체할 만한 값싼 다른 나라 제품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산 소재나 부품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미국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올라감에 따라 미국 제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도 낮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이 정말 끝까지 간다면 수입도 덜하고 수출도 덜하게 되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본다. 역시 무역적자 축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잃어버린 우리 돈=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지 모른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쓰이는 한, 미국에게 무역적자는 숙명과도 같다. 글로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역적자는 트럼프가 생각하는 것처럼 ‘잃어버린 돈’도 아니다. 그저 중국 소비자들이 미국산 제품을 사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이 중국산 제품을 더 많이 산다는 뜻일 뿐이다. 미국 경제가 좋을수록 무역적자는 더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미국에 제품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거나 이 돈을 미국에 재투자하기도 한다. 돈을 잃어버리기는 커녕, 미국으로 달러가 다시 흘러들어오는 셈이다. 

물론 무역적자가 무한정 확대되는 게 꼭 바람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GDP 성장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들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추세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는 무역적자 축소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레이건 정부 경제팀에 몸 담았던 스티브 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9월 CNBC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무역적자는 더 커질 것”이라며 트럼프가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쩌면, 올해 초 ‘강한 달러’를 둘러싼 약간의 소동으로 트럼프가 체면을 구겼던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자!’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