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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7일 11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7일 11시 52분 KST

이수역 폭행 사건,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혐오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36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은 이수역 폭행사건
huffpost

성별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상징적 사건

서울 동작경찰서는 성별혐오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이수역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련자 5명 모두를 기소의견(쌍방폭행)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26일 밝혔다. 이 사건은 폭행 이튿날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그 청원에 모두 36만 명이 서명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에 경찰은 여경 7명 등 총 19명의 전담수사팀까지 편성해 약 40일 간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당시 술집에 있던 여성 2명과 남성 3명에 대해 당사자 진술 및 폐쇄회로 영상(CCTV) 분석도 진행했다. 결국 경찰은 이들 모두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공동폭행) 위반, 모욕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당시 경찰이 신고 30분 만에 출동했다는 주장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기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사건의 시작은 주점에서 술을 먹고 있던 여성들이 큰 소리로 떠들자 근처에 앉아있던 커플이 이들을 쳐다봤고 여성들은 ‘뭘 쳐다보냐’고 대응하며 최초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후 커플은 주점을 떠났지만 이 여성들은 다른 테이블의 남성 일행과도 시비가 붙었고, 결국 여성 일행과 남성들과의 ‘쌍방폭행’이 발생하게 됐다. 이런 경우 보통 파출소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사건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관련글이 올라왔고 온라인상에서는 극심한 성별혐오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무려 36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혐오범죄라는 주장에 동조했으며,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 사건을 성별 대결 양상으로 몰고 갔다.

파출소가 제격인 사건을 청와대 청원으로

술집에서 술 먹은 사람들이 서로 시비가 붙었다. 취기 오른 욕설이 오갔고, 그 중 한 명이 좀 다쳤다. 이수역 사건을 단순화하면 이게 다다.

[여성 일행 중 한 명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 (경찰 출동 시간이나 분리조사 여부에 대해) 거짓말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경찰이 전한 바에 의하면, 남성들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도 남성들을 쳤다는 점 역시 인정했다고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하룻밤에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매일 수십 수백 건 벌어질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쩌다 한 번쯤 겪을 수도 있는 일이고, 다행히 자신에게는 이제까지 그런 일이 없었다면 참 감사할 일이다. 그저 별일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파출소로 가서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정리하면 된다는 말이다. 딱히 특이사항이 없는 한 굳이 언론에서 취재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 내막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수역 사건’은 그 당사자들의 성별이 나뉘어졌다는 것 하나 때문에 큰 논란이 됐다. 그저 술집에서 술먹고 시비가 붙은 것일 뿐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여전한 불평등, 그리고 특권감수성

우선, 한국은 성평등 수준이 점점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라는 걸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인데, 사회의 권력은 남성들이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페미니즘 운동도 있는 것이고, 현실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클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설 것이다. 다른 모든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

그래서 ‘인권감수성‘처럼, 남성들에게는 ‘특권감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불평등한 한국사회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서구 중심사회에서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으로 태어나는 것, 또 미국에서 유색인종이 아니라 백인으로 태어나는 것, 그리고 백인 중에서도 남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모두 일종의 특권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인생에 이런 특권들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자신의 성공과 안락한 삶이 이런 특권들에 기반한 것이 아닌지를 항상 생각하는 게 바로 특권감수성이다.

이러한 특권감수성을 키워나가다 보면, 불평등한 사회에서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권을 가진 자신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도, 상대방에게는 굉장한 장벽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본인 스스로 점점 불편해진다. 몸은 편하더라도 마음은 불편하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에 자꾸 신경이 쓰이게 된다. 그래서 백인이면서도 유색인종의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성이지만 성평등을 위해 애쓰는 이도 있다.

정체성은 무기가 아니다

일부 남성들 중에는 마치 남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자신이 뭔가 우월한 이유인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백인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유색인종들을 노예로 부렸듯이,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무기로 삼아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과연, 동양인인 우리가 보기에 서구 중심사회에서 서양인으로 태어난 것이 우월의식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유색인종인 우리가 보기에 그저 백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뭔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가?

여성들이 보기에도 아마 똑같을 것이다. 단지 남성들이 사회의 권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뿐,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그냥 그 사람을 설명하는 몇 가지 요소 중 하나일 따름이다. 고작 정체성을 무기로 삼는 것만큼 못난 짓도 없을 뿐더러, 상식적인 사회라면 그저 정체성에만 집착하는 이가 가져야 할 건 자부심이 아니라 부끄러움이고, 그들에게는 환호성이 아니라 비웃음이 돌아가야 한다는 걸 통념으로 삼을 것이다. 21세기에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가 비판을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다양성 존중은 인류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점은, 강자가 정체성을 무기로 삼아서도 안 되지만 약자 역시 정체성 하나에만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태생적으로 그 정체성에 속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구분하는 일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연대’의 가치를 놓칠 수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정체성에만 몰입하며 세상 모든 일을 오직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하는 ‘자폐성‘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다. 이렇게 되면 그 누구든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진실’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도외시한 채 그저 정체성에 빠져 허우적대는 외눈박이 집단이 되기 쉽다.

이수역 사건과 관련해서 속속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괜히 경솔하게 어느 한 쪽을 두둔했다가 욕 먹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한들,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한 가지 문제로만 사태를 몰아가는 정치인이나 언론인도 신뢰를 얻기는 힘들 것이다(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녹색당의 ‘신지예’ 공동운영위원장이 이수역 사건을 성별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데에 가담했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그후 신지예 위원장은 적절한 해명을 했는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나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필요하다.

‘혐오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수역 사건처럼,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냐?”는 얘기가 나오면 우리는 성별 나눠서 싸우기만 한다. 그 어디에서도 진지한 고민을 찾기가 힘들다. 사실, 이 질문은 출발점부터 잘못됐다. 여성의 군복무 문제는 따로 떨어진 독립적인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진짜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문제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 뻔하고, 남북관계가 변하고 있는) 한국은 향후 어떤 군대를 원하는가?”이다. 이 결론에 따라 여성의 군복무 문제는 자연스럽게 쟁점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한국이 앞으로 모병제를 지향한다면,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냐?”로 싸울 이유는 전혀 없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동일하게 그냥 자신이 지원해서 직업군인이 되면 그만이다. 그리고 혹시 한국이 징병제를 유지한다면, 급격히 줄어들 것이 확실한 징병 인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당연히 전체 군인 수는 크게 줄이고 ‘첨단 정예’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테고, 그러면 군인들의 처우 문제도 함께 논의하게 된다.

군대의 복지와 근무형태, 복무기간 등등이 모두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라질 것이다. 20년 전 병사 월급과 현재의 병사 월급은 받아들이는 게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어떤 군대를 원하는가에 따라 이런 엄청난 변화가 불을 보듯 뻔한데, 현시점에서 단순히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하냐?”는 문제로 편 갈라서 싸우는 건 지극히 무의미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수역 사건도 우리는 좀 냉정하고 예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술 먹고 시비 붙는 일에 성별이 따로 있지 않다. 남자들은 남자하고만 술을 마시고, 여자들은 여자하고만 같이 술 마시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그때그때 다르게 남녀노소가 이리저리 어울려 마신다. 그러다가 시비가 붙기도 하고, 그래서 파출소로 가기도 한다.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과도하게 커질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예민하면서도 냉정한 판단, 그리고 반성과 해명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고 썼고, 에르네스토 게바라(Ernesto Guevara, 체 게바라, Che Guevara, 1928~1967)는 괴테의 전기를 읽으며 특히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예민하게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도 물론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가지고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건 언제나 유용한 삶의 태도다. 이수역 사건은 그저 파출소가 제격인 문제였다. 우리가 좀 더 예민하고 냉정하게 판단했다면 성별 편 갈라서 싸울 일도 없었을 테고, 쓸데없는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경찰이 전담수사팀까지 꾸려서 수사할 일도 전혀 아닌데, 이 얼마나 사회적 낭비인가?

그리고 잘못된 주장에 동조했던 36만 명의 서명자들도 스스로 좀 조심하고 앞으로는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이런 어이없는 주장과 서명이 반복되면, 결국에는 기껏 만들어놓은 제도도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폐지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한, 이수역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이때다 싶어서 온갖 추측성 기사와 성별 싸움 구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한 기레기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여기에 편승해 갈등 증폭에 가담한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이라도 적절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함량미달의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놀아나야 하나? 이수역 사건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성별혐오를 그대로 드러냈으니,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반성과 해명은 꼭 필요하다.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