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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6일 15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6일 15시 27분 KST

국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부쳐

뉴스1
민주노총과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 추모제를 하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가족 등이 묵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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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24살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다 이 기계에 끼여서 숨졌다. 2년 전, 19살 김 군은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매년 평균 2000 명이 넘은 노동자가 우리도 모르게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어서 목숨을 잃는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산재(산업재해) 사망률은 10만 명당 7.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항상 1, 2위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 경제력 10위권에 있고 국가 민주주의를 이룬 우리나라가 어째서 10년 넘게 산재 사망이라는 고질적 병폐를 끊어 내지 못하는 것일까? 산재 사망은 몸이 떨어지고 기계에 끼이고 뭉개지고 타고 부서지는 가장 끔찍한 죽음이다. 참혹한 기억으로 가족들은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고통에 시달린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 친구들, 알고 지냈던 모든 사람들이 평생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으며 살게 된다. 산재 사고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의 큰 아픔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모두가 방치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만을 앞세운 경제활동이 일상화되어 사회를 심하게 병들게 하는 탓이다. 지금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하에서는 노동자의 산재 사망 문제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 뻔하다.

국회에서 몇 개월째 잠자고 있던 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김용균 씨 사망으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계 측에서 과거 일관되게 주장한 대로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 때문에 연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가 죽어야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28년 만에 처음으로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이지만 산재 사고를 줄이기에는 턱도 없다. 지난 10월 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업주에 대한 처벌 하한선이 빠지고 위험 작업 예외조항이 신설되는 등 누더기 법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사고라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라는 의의는 있다.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산안법에는 쟁점이 되고 있는 내용 중 다음과 같은 것들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첫째, 일하는 사람 모두를 보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를 ‘균열일터’라고 정의했다. 공장과 회사를 낱낱이 쪼개 노동자의 임금, 복지, 안전, 환경 등을 모두 하청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킬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하청, 다단계 하청, 소사장제, 자영업, 프랜차이즈, 도급, 파견 등의 다양한 노동형태가 이를 잘 나타낸다. 누가 내 직장의 진짜 사업주인지 알 수 없는 일터가 수도 없이 많다. 원청 기업은 하청 기업이 지켜야 할 품질 기준 등에는 철두철미한 반면 이러한 기준을 시행하는 공정에서 일어나는 임금, 복지, 노동조건, 위험, 사고 등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균열일터가 가져온 사회적인 결과는 근로기준, 노동자의 안전 및 보건, 나아가 소득 분포와 양극화까지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산안법의 보호 대상에 빠진 택배기사, 배달원처럼 다양한 유형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비정형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포괄해야 한다. 유럽연합과 영국의 산안법에서도 법적 보호 대상을 일하는 사람(person at work)으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 조처를 취해야 할 곳을 일부 위험 장소에서 사업주가 지배하는 사업장 공간 전체로 넓혀야 한다. 현재 산안법에서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책임져야 할 사업 종류는 달랑 22개다. 위험 작업을 단순히 다양한 형태의 기계, 장소, 업무로 특정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정작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에 대해서는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가 빠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두 청년이 사고를 당했던 스크린도어는 사고 당시에 제외되어 있었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작업은 지금도 제외되어 있다. 안전보건책임의 경계를 특정 장소나 기계로 한정할 수 없다.

셋째, 악의적인 산재사고는 징벌적 의미를 더해 처벌해야 한다. 김용균 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에서는 비슷한 사망 사고가 10건 이상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산안법에서 징벌적 규제가 있었다면 김용균 씨는 보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벌금 때문에 기업이 파산한다고 해도 이것은 불행하지만 필연적인 결과다.” 2011년 영국 기업살인법의 첫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의 말이다. 지질환경측정회사 노동자가 샘플을 채취하다 웅덩이에 빠져 사망하자, 영국 법원은 연간 매출액의 250 %에 달하는 징벌적 벌금을 부과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벌금의 하한은 있어도 상한은 없다. 벌금 액수가 징벌적이어야 하고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영국, 캐나다 등 산재 사망 사고가 최저 수준인 나라에서 제정되어 있는 법의 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안전보건책임을 게을리 하여 반복적으로 사망 사고가 일어나도 징벌적 규제가 불가능했고 사례도 없었다. 2007년에서 2016년까지 2만여 건이 넘는 산안법 위반 사건 중 유기징역이 내려진 판결은 0.5 %에 불과했다. 2016년 사망 사고에 대한 벌금의 평균은 고작 432만 원에 불과했다. 지금 산안법은 대부분의 사업주가 비용이 들어가는 안전보건책임 대신 불과 몇 백이나 몇 천의 벌금을 선택하게 하는 구조다. 선진국의 사업주가 사람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안전보건책임을 자발적으로 짊어지지 않을 것이다. 징벌적 성격의 처벌은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업주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임계점이다. 때로는 법적 제도가 인간의 지나친 욕망을 통제하고 당연히 따라야 할 규범으로 만든다.

넷째, 유해·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가 위험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영업 비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비율이 60 %를 넘었다. 허술한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의 성분과 함량을 숨기는 것이다.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자가 직접 위험한 정보를 작성하고 영업 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심사받는 것은 당연하다. 노동자의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로 유럽연합, 미국 등에서 진즉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사람과 환경에 위험한 물질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안전보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 위험한 노동환경을 피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다. 어떠한 불이익도 받아서는 안 되는 실질적 권리여야 한다. 절대 약자인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에게까지 실질적 작업중지권이 작동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생활 때문에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회사는 없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일상화된 비정규직, 도급, 하청, 다단계 하청, 파견, 시간제, 인턴 등은 노동자의 안전을 결정하는 거대한 몸통이다. 산안법 개정만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온전히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고의 실질적인 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안전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번 산안법 개정안은 악의적인 사고를 막고 기업이 떳떳하게 안전보건 책임을 지는 최소한의 장치다. 국회가 이를 인지하고 하루빨리 통과시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글 : 박동욱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전 산업보건학회장) 

* 이 칼럼의 발췌본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