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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6일 14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6일 17시 08분 KST

스카이캐슬은 학종이 아니라 학종도 무너뜨릴 수 없는 욕망을 말한다

huffpost
JTBC

연일 시청률 상하가를 경신 중인 JTBC의 드라마 ‘SKY캐슬‘을 두고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문제의식은 ‘예서 엄마’로 등장하는 한서진(염정아 분)이 자신의 남편 강준상(정준호 분)에게 ”당신 학력고사 때와는 달라요”라고 말하는 대사로 집약된다. 마치 한국 교육의 기이한 왜곡 현상이 학생부종합전형 도입 이후 벌어진 현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대사다. 이 때문에 드라마가 상위 1%의 교육 현실로 한국 교육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착시 효과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정말 학종 혹은 현행 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만든 작품일까? 학종 논란 뒤에 숨겨 둔 이 드라마가 드러내는 진짜 이상한 욕망을 살펴봤다.

공부 잘하면 무조건 의사

‘SKY 캐슬‘의 이름은 노골적으로 서연고의 대학 서열화 최상층을 표방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지속해서 강조하는 건 대학이 아니라 직업이다. ‘의사‘를 향한 욕망을 강조한다. 유일하게 실명으로 언급하는 대학과 학과는 ‘서울의대’고 ‘3대째 의사 가문’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입시 경주에서 줄곧 1등을 달리던 강예서는 엄마 한서진에게 뒤에 못이 박히도록 소리친다. ”엄마가 나 서울의대 못가면 책임 질거야?”.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감성 ‘돋는’ 어른은 없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어른도 싫지만, 아이의 꿈이 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는 부모는 정말 문제다. 꿈이 뭔지 묻지 않는 세계는 뭐가 잘못된 걸까?  

아이의 대학이 부모의 꿈

아이들에게는 꿈이 없지만, 다 늙은 부모에겐 꿈이 있다. 아이들에겐 꿈을 묻지 않지만, 등장하는 부모들은 누가 묻지 않아도 크게 외치고 다닌다. 내 아이가 학생회장 선거에서 이기고,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서울 의대에 가는 게 꿈이다. 꿈을 이루려는 욕망의 정도는 다르지만, 강교수, 차교수, 박교수 할 것 없이 ”예서 반만 따라가 봐라”라고 말하고 ”강준상이 딸이 서울의대를 왜 못가”라고 말한다. 박영재(송건희 분)의 아빠 박수창(유성주 분)이 그 꿈을 이뤄 준 아들을 껴안는 장면은 다시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들에게 총구를 겨눴던 아빠가 아닌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악마적 캐릭터로 그려지는 김주영이 자신의 딸이 뇌 손상으로 누워 있는 장면에서 역시 비슷한 대사를 날린다. ”내 아이 아니야.” 몇몇 포유류 중에는 유전적 결함이 있는 새끼를 죽도록 내버려 두는 종이 있다. 

엄마를 넘어서는 아이의 욕망

서울의대에 합격하고 등록을 포기한 박영재와 고1 강예서의 캐릭터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에서 박영재는 가을이 누나를 쫓아낸 부모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수험생으로 나온다. 영재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떨어진 성적을 바라보는 부모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택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작)의 ‘이은주’(이미연 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예서는 다르다.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부가 서울의대에 들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잘해야 해서 한다. 엄마 한서진의 욕망과 완벽하게 방향이 일치하고 심지어 그 크기는 엄마의 욕망을 넘어선다. 김주영(김서형 분)이 예서의 코디를 그만뒀을 때 예서가 외친다. ”엄마가 나 서울의대 못 가면 책임질 거야?”라고.

JTBC

강예서의 욕망은 잘못된 걸까?  

이 그로테스크한 집안은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라고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더 깊은 회의가 든다. 강예서의 세계가 정말 잘못되긴 한 걸까? 강씨 집안의 욕망을 두고 잘잘못을 따질 수 있나? 그동안의 드라마에서 부모의 욕망에 억압받는 아이는 피해자로 그려졌다. 그러나 부모와 아이의 욕망이 일치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차교수의 두 아들 기준이와 서준이, 박교수의 아들 영재에겐 피해자로 감정이입할 수 있지만, 한서진과 강예서 사이에는 피해자가 없다. 피해자가 없는 욕망에 삿대질을 할 수 있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이 기괴한 세계의 논리에 설득당해서 진정한 교육을 말하는 이수임의 도덕을 ‘욕망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욕망’으로 보게 된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각 매체들은 학종이 이 지옥을 만들어낸 원흉인 것 마냥 공격하고 있다. 마치 학종만 사라지면 천국이 올 것 처럼 말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금 달라 보인다. 학력고사도, 학종도, 수능도 그 어떤 입시 제도도 무너뜨리기 힘든 이 욕망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주제는 아닐까? 완전히 이해하고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