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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 세운 파인텍 노동자들의 이야기(사진)

75미터 굴뚝 위에 오른 두 사람이 농성 409일을 맞았다

  • 박수진
  • 입력 2018.12.25 12:31
  • 수정 2018.12.25 12:55
'파인텍 굴뚝농성' 408일째를 맞은 24일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사람들의 성탄 축하 인사에 불빛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파인텍 굴뚝농성' 408일째를 맞은 24일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사람들의 성탄 축하 인사에 불빛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뉴스1

한국 노동자 두 명의 굴뚝 농성이 크리스마스인 25일, 409일째를 맞으며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세웠다.

그 다음으로 긴 고공농성 기록은 이들과 같은 회사 소속 노동자가 2015년 세운 ’408일’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75m 높이 굴뚝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씨와 박준호씨의 이야기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왼쪽부터)과 길벗한의사회 오춘상 한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홍종원 의사가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굴뚝에서 64일째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의 건강과 안전 등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확인하러 현장을 찾았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왼쪽부터)과 길벗한의사회 오춘상 한의사,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홍종원 의사가 지난 1월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굴뚝에서 64일째 고공농성 중인 민주노총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의 건강과 안전 등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확인하러 현장을 찾았다. ⓒ한겨레

앞서 2014년,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은 사측이 매각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한 데 반발해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구미에서 굴뚝 농성을 벌였다. 차 지회장은 굴뚝에 오른 지 408일째에 단체협약 체결과 새 회사에서의 고용승계를 약속 받고 농성을 중단했다.

하지만 모회사인 스타플렉스는 몇 년 동안 단체협약을 진전시키지 않았다. 이에 반발해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정하자 사측은 다시 공장을 폐쇄했다. 그러자 다른 파인텍 노동자 두 명이 다시금 고용승계와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항의 농성을 시작했다. 2017년 11월 12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파인텍지회 소속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오른 것이다.

차광호 지회장은 지난 10일부터 연대 단식투쟁 중이다.

2014년 6월 8일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고공농성을 하던 경북 구미산업단지 스타케미칼의 모습.
2014년 6월 8일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고공농성을 하던 경북 구미산업단지 스타케미칼의 모습. ⓒ한겨레21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등 지지 단체들은 목동 농성 408일째이자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밤 집회를 열었다.

오후 7시쯤부터 ‘공동행동’ 등은 두 번의 408일 고공농성을 의미하는 ’408+408 행동’ 집회를 열고 단식농성장과 고공농성장을 차례로 찾았다.  

 

이들은 먼저 차 지회장이 15일째 단식농성 중인 농성장에 모였다. 농성장에 모인 이들은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약속을 지켜라”, ”노동자가 죽어간다 문재인 정부가 해결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이어 공동행동은 오후 7시20분쯤부터는 양천구 목동의 굴뚝농성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의 이름을 부르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CBS 사옥 앞을 지날 때는 큰 함성을 지르기도 했다.

 

오후 8시22분쯤 굴뚝농성장에 도착한 공동행동은 굴뚝 위 두 사람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크게 외쳤다. 이 소리가 들리는 듯 홍 전 지회장과 박 사무장도 75m 높이에서 불빛 2개를 흔들며 성탄 인사에 화답했다.  -뉴스1

2018년 12월 24일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모인 시민들과 노동단체가 두 명의 고공농성자들을 위로하는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12월 24일 파인텍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모인 시민들과 노동단체가 두 명의 고공농성자들을 위로하는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차 지회장은 ”문재인 정부는 민중과 노동자를 배척하고 있고, 규제프리존특별법을 통과시켰다”며 ”단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동일한 사업장에서 농성기록을 갱신하다니 믿을 수 없다”며 ”올해 연말이 가기 전에 반드시 (두 사람이) 땅에 내려오게 하고, 단식하는 동지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힘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후 9시10분쯤부터는 지상에 있는 단식농성자들 및 공동행동 측 사람들과 굴뚝 위 두 사람이 통화를 하기도 했다. 

 

박 사무장은 ”오늘은 식사를 두 끼를 했고, 약을 잘 챙겨먹고 있다”며 ”함께 해준 시민들이 반갑고 고맙다”고 전했다. 홍 전 지회장은 ”내려가면 동지들과 회를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따뜻한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도 했다.

 

농성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점등하고 박수와 환호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뉴스1

 

2018년 12월 9일 서울에서 진행한 오체투지 집회.
2018년 12월 9일 서울에서 진행한 오체투지 집회. ⓒ뉴스1

농성 409일째이자 크리스마스인 25일에는 오후 2시부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와 길벗한의사회가 굴뚝 위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시작 이래 6번째의 건강검진을 한다.

올초부터 5차례에 걸쳐 이들의 건강검진을 진행한 의료진에 따르면, 고공농성자들은 좁은 공간으로 인한 운동제한과 수면장애, 심리적 스트레스로 건강악화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

 

건강검진 이후에는 나승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박승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의 집전으로 굴뚝방문 기도회도 열린다. -뉴스1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난 9월7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국장이 지난 9월7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박준호 사무장은 농성 1년을 넘긴 지난 11월,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 인터뷰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이유를 밝힌 바 있다.

◇ 정관용> 그런데 이제 1년을 맞이하네요. 어떤 분들은 그럽니다. 이 고생 하느니 다른 일자리 찾는 게 나은 거 아냐, 이런 분들에 대해서 한 말씀 하시면요. 

◆ 박준호>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좀 많이 받았었는데요. 그런다고 해서 기존에 노동자의 삶이 지금 현재 조건이 안 좋은 상황에서 해고가 되고 투쟁하는 저희들뿐만 아니라 여타 사업장들이 많지만 그런 노동자들이 그거를 당장에 힘듦을 면피하기 위해서 다른 직장에 간들 그게 옳은 직장일 수 없을 뿐더러 그다음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노동 환경도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희들은 왜 해고가 되고 이렇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히 정당성이 있는 거거든요. 사측의, 재벌들의 일방적인 해고를 통해서. 그런데 그런 부당한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힘드니까 나 하나 이 일에서 벗어나면 되지’ 하는 식으로 다른 직장을 얻어간다고 해도 그 문제들이 다른 데로 옮겨가는 만연해 있는 노동자들의 문제들이 다 똑같은 입장이 되는 거거든요, 반복되게. 

........

당연히 많이 힘들죠. 하지만 뭐 저희들 5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주위에서 연대해 주시는 동지라든지 함께 저희들을 해 주시는 동지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 힘으로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엄청나게 큰 힘이 되는 거죠. -CBS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열병합발전소의 굴뚝 자료사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열병합발전소의 굴뚝 자료사진. ⓒ뉴스1

마지막까지 남은 파인텍 해고노동자 5명과 지지 단체들은 장기 투쟁 사업장들에 대한 정치권의 해결 의지 부족을 비판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정부는 ‘노사 간의 문제’라며 파인텍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투쟁 사업장의 해결을 논의하는 ‘투쟁사업장 해결을 위한 노정 협의체’를 꾸렸으나, 협의는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지난 1월 말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 천막을 방문하고 노사 간 논의 자료를 만들었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는 김세권 스타플렉스 사장이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세권 사장은 자회사인 파인텍에는 사장이 따로 있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모기업 스타플렉스로의 고용승계 요구도 전달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굴뚝 합의’ 불이행은 민사상의 문제여서 정부가 함부로 제재하기 어렵죠.”

.....

(홍기탁) “투쟁사업장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해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09일 동안 우리가 굴뚝에 있었다는 것은 정부가 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의지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투쟁사업장 문제’는 ‘노사 간의 문제’라는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해결 가능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겨레

정의당은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낸 논평에서 “2018년 예수가 한국 땅에 온다면 마구간이 아니라 409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지상 75m 높이의 굴뚝이 아닐까 싶다”며 파인텍 장기투쟁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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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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