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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밤 185명의 '무연고 사망자' 추모제가 열렸다

그들의 마지막 주소지는 고시원이나 쪽방, 혹은 '거주지 불명'이다

ⓒ뉴스1

매해 밤이 가장 긴 동지, 서울역 광장에서는 무연고(無緣故) 사망자를 위한 추모제가 열린다. 연고자 없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게 세상을 뜬 이들의 죽음이 이 자리에서 기려진다. 

추모객은 ‘나눔과 나눔‘, ‘홈리스행동’ 등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단체와 홈리스, 시민들이다. 작년에는 155명 망자의 이름이 눈밭에 누였다. 이를 지켜보던 홈리스 한명이 ”죽어서까지 바닥에 있어야겠냐”고 했다. 

동지를 하루 앞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은 ”그 말을 듣고 올해부터는 형식을 바꿨다”며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계단 위에 세워뒀다”고 밝혔다. 귀인을 위해 까는 레드카펫도 준비했다. 외롭게 눈을 감았지만 한때는 빛났을 이들의 ‘화양연화’를 기억하기 위해 붉은 장미꽃도 같이 두었다.

서울역 광장 한편에 마련된 추모제단에는 홈리스들이 자주 들러 추모의 예를 갖춘다. 박 사무국장은 ”머잖은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며 절하는 분들이 많다”며 ”나랑 같이 살던 사람의 이름이 혹시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며 찾아보는 분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185명. ‘나눔과 나눔‘이 올해 추모한 이들의 숫자다. 무연고 사망자 중에서도 지난해 동지 이후부터 올해 11월까지 서울에서 세상을 떠난 ‘홈리스 무연고 사망자’들이다. 이들의 마지막 주소지는 고시원·쪽방·시설이거나 거주지 불명이다. 이런 이들이 지난해 155명에서 올해는 185명이 됐다. 비율로는 20%에 가까이 늘었다.

나눔과 나눔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5년부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지원하던 중 무연고 사망자들은 변변한 빈소 하나 없이 시신이 화장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 사무국장은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장례를 지원해 마지막 길을 존엄하게 지켜주자고 결심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 당장 각 지자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의 명단을 넘겨받는 것부터 여의치 않아 장례식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찾아낸 이들을 위해 작은 빈소를 마련하고 종교 의식도 갖춰 장례를 치렀다.

4년 동안 이 일에 매달린 끝에 서울시는 지난 3월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안’을 만들었다. 5월부터는 무연고 사망자 전용 빈소와 장례 절차가 제도로 보장됐다. 그동안 소리 없이 화장돼 묻힌 이들이 최소한의 존엄한 죽음을 맞는 첫발을 내딛게 된 셈이다.

서울시가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기 시작한 건 큰 진일보지만, 박 사무국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장례를 치를 가족이 있어도 경제적 사정 때문에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 사무국장은 ”무연고 사망자의 나이대는 50대에서 6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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