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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0일 14시 1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20일 14시 30분 KST

[뉴디터의 신혼일기] 상냥하던 여친이 결혼 후 잔소리쟁이 마누라로 바뀐 것 같은 이유

결혼생활에서 책임은 아주 큰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스틸컷
huffpost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결혼에는 사랑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겠으나,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서로에 대한 책임’일 것이다. 너무 과한 책임이 신혼의 달콤함을 묻어버려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결혼이 마냥 달콤하기만 해도 이상하다.

결혼을 해 보니까, 둘 사이에 책임은 아주 큰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굉장히 사소하고 자잘한 문제에서도 필요했다. 예를 들어 ‘빨래 널기’ 같은 것.

Anna Bizon / EyeEm via Getty Images

연애 시절부터 신랑은 빨래에 좀 둔감했다. ”오빠 빨래 다 됐다. 널어야지.” ”응 조금만 있다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 돌아간 빨래는 자연스럽게 다음날로 이월됐다. 당시 남친이었던 신랑은 태연하게 빨래를 다시 돌렸다. ”에잉 어제 깜빡했네.” 나도 그때까진 신경쓰지 않았다. 거긴 그의 옷만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옷에 곰팡이가 펴도 내 옷 아니니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잖아!!!

얼마 전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데 오빠 오늘 혼자 빨래 좀 널어줘. 부탁할게”하고 아주 정중하게 말한 뒤 먼저 거실에 스르륵 누워 잠든 날이 있다. 신랑은 자신만만하게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9시쯤 잠들었다가 몇 시간 안 돼서 갑자기 뭔가 찬물 맞기라도 한듯 번뜩 깨버렸다. 잠귀가 얇은 내겐 종종 있는 일이긴 한데, 뭔가 불안했다. 시간은 새벽 1시, 고개를 돌렸는데 빨랫대에는 내가 잠들기 전 그대로 마른빨래만 널려 있었다.

콧김을 뿜으며 일어나 안방으로 갔더니 신랑은 곱게 이불을 덮고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전날 대학원 과제를 하느라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해서) 빨래 널라고 시켰던 걸 깜빡한 게 분명했다. 불안이 분노로 바뀌었다. 어차피 지금 깨워서 뭐라고 해 봤자 비몽사몽 해가지고 ”미안해 미안해요 여봉 같이해용” 하면서 힘도 안 주고 너는 척 하고 제대로 안 할 것이 분명했다.

빨래 널기에 큰 협동심이 필요한 건 아니기에 꼭 같이 할 필요는 없다. 굳이 지금 깨워서 함께 빨래를 널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꼭 부탁까지 하고 잠들었는데 그걸 쌩까고 저렇게 자버린다니.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 책임감의 부재를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그냥 내일 아침까지 저걸 냅둬서 버릇을 고쳐볼까...? 그러기엔 내 빨랫감들이 너무 걱정됐다. 혹시 옷에 쉰내가 배는 건 아닐까? 설마, 곰팡이라도 피는 건 아니겠지...?

결국 옷에 대한 걱정이 이겼다. 일부러 쿵쾅쿵쾅쿵쾅 세탁기로 걸어가 빨래를 꺼내서 쿵쾅쿵쾅쿵쾅 널었다. 잠귀가 어두운 이 인간은 내가 아무리 쾅아콰코아코카아캉 대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다음날 뭐라고 해도 그냥 한 순간 ”여봉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용” 하고 콧소리를 내겠지. 그리고 신랑은 내 이상형의 외모를 갖췄기 때문에 나는 또 그 모습을 보고 실없이 웃게 되고 할말이 없어지고 지금 나의 이 분노는 흐지부지되겠지.

자,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남녀가사노동시간 격차가 시작되는 것이다. OECD남편 가사분담률 꼴찌의 멍에는 이런 책임감 없는 행동에서부터 나오는 거라고. 어떻게 빨래를 안 너는 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하게 생각할 수가 있지? 왜 남자들이 기안84에 그렇게 동질감 느끼고 좋아하는지 알겠다. 다 조금씩은 기안84 같기 때문이다. 세상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봤지만 내 일상이 너무 기안84스럽다는 여자는 본 적이 없다. 볼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지금 내 말이 너무 성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진작 빨래를 똑바로 널었어야지! 내가 하자고 안 하면 안 하고 그냥 넘겨버리고 그냥 그렇게 잠들어버리고 그랬다가 내 옷에 쉰내 나고 만에하나 곰팡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떻게 할꺼야!!!!!!! 그럼 신랑은 연달아 ”여봉 미안해용 내가 미안해용 앞으로 안그럴게용” 이라고 미안무새처럼 사과하고 또 까먹고 또 반복되겠$%^#%#$#*&(*(#@!@(분노로 말잇못)

문득 옛날에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책 ‘당신의 요일은 몇 개입니까’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고,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외간 여자는 남편에게 친절하고 상냥할 것이다. 양말을 세탁기에 뒤집어 넣지 말라고 잔소리하지도 않을 것이고, 제발 휴지를 다 썼으면 화장실에 채워 놓으라고 잔소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 그러니까 외간 여자는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겠지. 그저 상냥한 미소로 남편을 대하기만 하면 되니까.]

뇌내에서 그 구절의 BGM은 조정석과 신민아가 리메이크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OST 조정석 파트였다.

[미녀에서 마녀가 된 너, 바가지만 긁어요. 상냥했던 나의 여신은 어디로 간 건지🎶]

내가 결혼을 한 건지 입양을 한 건지... - 신민아 파트

아니, 하라는 것만 제대로 하면 누가 잔소리를 하겠어? 장가가기 전에 안 그랬어도 결혼하면 나와 더불어 내 빨래와도 평생 함께하게 될 건데 당연히 마음가짐 고쳐먹고 유념유상한 인간으로 다시태어날 각오를 했어야지. 외간여자를 아내로 만들었으면 그정도, 아니 그이상의 결행을 보여야지. 난 뭐 잔소리가 하고 싶어서 할까. 자잘해 보이는 빨래에서부터 책임감을 갖고 행동하면 나도 충분히 연애시절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냥하게 행동할 수 있어.

제발!!!!!!!

PS. ”내가 언제 여보한테 잔소리쟁이라고 했엉. 난 그런 말 한 적 없짜나아앙. 사실 잔소리도 좀 듣고 해야지 그게 결혼생활의 활력이지이잉. 군데 여보 나 내일 약속 있어. 웅 그 형이랑. 아니야아앙 술 많이 안마실꺼야아앙. 일찍 올꺼야아앙. 갔다 와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