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라 팔아먹었다" : 판사가 '러시아 스캔들' 마이클 플린을 꾸짖었다

플린은 트럼프 정부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 허완
  • 입력 2018.12.19 12:46
  • 수정 2018.12.19 16:07
18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선고공판 장면 스케치. (Dana Verkouteren via AP)
18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선고공판 장면 스케치. (Dana Verkouteren via AP) ⓒAssociated Press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18일(현지시각),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에밋 설리번 판사가 말했다. 피고인석에는 트럼프 정부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마이클 플린이 앉아 있었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범죄다.”

3성장군 출신인 플린은 위증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단순한 위증이 아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24일, 백악관에서 연방수사국(FBI) 수사관들에게 거짓 진술을 했다.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년 12월18일.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년 12월18일. ⓒAssociated Press

 

플린과 러시아의 접촉

플린은 트럼프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 여러 차례에 걸쳐 당시 주미 러시아 대사였던 세르게이 키슬략과 대화를 나눴다. 물론 개인적인 접촉은 아니었다. 그는 인수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일찌감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상태였다. 트럼프의 맏사위이자 훗날 백악관 선임고문을 맡게되는 재러드 쿠슈너가 두 사람의 회동에 동석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임기를 마무리 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를 상대로 대대적인 제재를 단행했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외교관 35명을 추방했고, 러시아 시설 2곳을 폐쇄했다.

사실 ‘대대적인 제재‘로 발표되긴 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훗날 드러난 사건의 전말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의 대선개입 시도를 파악하고도 몇 개월 동안 전전긍긍했고,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 이건 ‘상징적 조치’일 뿐이었다.

트럼프는 제재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재가 발표된 2016년 12월30일, 트럼프는 ”더 크고 좋은 일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플린은 키슬략과 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하면서 ‘보복조치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러시아는 흔쾌히 동의했다. 

다른 주제도 논의됐다. 플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서안 정착촌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협조해 달라고 러시아에 요청했다. 반대표를 던지거나 트럼프 취임 이후로 표결이 연기되도록 도와 달라는 것.

오바마 정부는 이스라엘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왔다. 곧 출범할 트럼프 정부는 달랐다. 트럼프는 오바마 정부에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러시아는 찬성표를 던졌다. 플린의 노력은 실패했다. 트럼프는 ‘내가 취임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제재 해제도 성사되지 못했다. 플린과 러시아의 접촉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의회는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트럼프는 지난해 8월 약간의 불평을 덧붙여가며 이 법안에 서명한 바 있다.

사진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2017년 2월1일.
사진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2017년 2월1일. ⓒASSOCIATED PRESS

 

플린의 위증

플린과 키슬략의 접촉은 곧 바깥으로 드러났다. 미국 정보당국이 키슬략의 통신 내역을 감청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소문이 퍼지며 미국 정계는 뒤숭숭했다. 플린은 곧 FBI 수사관을 대면하게 된다. 2017년 1월24일의 일이다. 

플린은 러시아 측과 제재 해제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17일(현지시각) 공개된 검찰의 기소장을 인용한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심지어 제재가 단행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주장했다. 제재가 발표됐을 때 자신은 TV도 없고 정부가 지급한 블랙베리 스마트폰도 없이 도미니카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유엔 결의안에 대해 러시아의 협조를 요청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조서를 작성한 ‘요원 302’에 따르면, 플린은 자신이 러시아에게 구체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한 적이 없으며, 단지 ‘러시아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더 버티기는 어려워졌다. 결국 그는 3주만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플린은 기소 면책을 대가로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맡은 로버트 뮬러 특검에 유죄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플린의 혐의는 기소된 것 말고도 더 있었다. 트럼프 대선캠프에 몸 담고 있는 동안 터키 정부를 위한 불법(미등록) 로비활동을 벌인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터키 반체제 인사 페트라 귈렌의 송환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이날 공판에서 설리번 판사는 ”당신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하는 동안 계속해서 해외 정부를 위해 불법 (로비) 에이전트로 일했다”고 호통쳤다. ”이곳에 있는 이 깃발(성조기)이 상징하는 모든 것을 해친 것이나 다름 없다. 당신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설리번 판사는 이후 자신의 실수를 정정했다. 플린이 터키 정부를 위한 불법 로비를 벌인 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마이클 플린. 그의 뒷편으로 한 시위자가 '그를 가둬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플린은 2016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 한 연설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겨냥해 '그녀를 가둬라(Lock her up)'라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는 마이클 플린. 그의 뒷편으로 한 시위자가 '그를 가둬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플린은 2016년 대선 선거운동 당시 한 연설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겨냥해 '그녀를 가둬라(Lock her up)'라는 구호를 외친 것으로 유명하다.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선고 연기

이날 선고공판을 앞두고 뮬러 특검은 플린의 징역형 면제를 요청하는 서한(PDF)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가 그동안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으며, 그의 증언이 ”특히 (수사에) 중요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범죄행위가 중대하다는 사실마저 뮬러 특검이 부인한 건 아니었다. ”(당시) 현직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전직 정보기관 수장이자 퇴역 중장으로서, 또 군에 33년 몸 담았던 베테랑으로서, 연방 수사관들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가 몰랐을 리 없다.”

뮬러 특검의 이같은 지적은 플린 측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FBI 수사관들이 조사 당시 ‘위증은 죄가 된다’는 경고를 고의적으로 누락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덫’을 놓았다는 논리다. 이는 트럼프 변호인의 논리이기도 하다. 검찰은 이같은 주장을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고, 판사도 검찰의 말을 받아들였다. 

설리번 판사는 플린이 ”대단히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상기시켰다. ″이 범죄 행위에 대한 나의 역겨움, 나의 경멸을 숨기지 않겠다.” 18일 설리번 판사가 플린을 향해 말했다. ”백악관에서! 웨스트윙에서! (어떻게 위증을 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범죄 사실의 중대함을 ”축소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플린도 이날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FBI 수사관에게 거짓 진술을 하는 게 범죄행위라는 걸 알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플린은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트럼프는 이날 공판 직전 ”행운을 빈다”는 트윗을 올렸다.

설리번 판사는 플린을 향해 ”오늘 공판이 속개되면 법정 구속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검 수사에 계속해서 협조하고, 협조가 마무리된 뒤에 선고를 받는 옵션을 제안했다. 휴정 뒤 법정에 돌아온 플린은 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선고공판은 내년 3월로 연기됐다.

플린의 변호를 맡은 로버트 켈너는 플린의 수사 협조가 ”대부분 완료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고에 앞서 법원으로부터 ‘완전한 인정’을 받을 때까지 특검 수사에 추가 협조하겠다는 게 플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정부에서 공직에 임명된 이들 중 유죄를 인정한 건 현재까지 플린이 유일하다. 트럼프 대선캠프 관계자들 중에는 폴 매너포트, 릭 게이츠, 조지 파파도풀로스 등이 유죄를 인정했다. 오랫동안 트럼프의 ‘집사’이자 개인 변호사로 일했던 마이클 코언도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러시아 #마이클 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