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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인사말도 가려서 해야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 업데이트를 하자.

 

 

ⓒPhotographer is my life. via Getty Images
ⓒhuffpost

얼마 전 여대에 강연을 갔다가 나눈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외부 연사가 여럿 오는 수업이었는데, 담당자가 외부 연사들, 특히 남성 연사를 초청할 때 자꾸 ‘당부의 말씀’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어색함을 깨려고 꺼내는 ‘창찬과 인사말’ 때문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여대에 오니까 설렌다”거나 “남자만 있는 곳과는 냄새부터 다르다”는 말을 칭찬이랍시고 하면 서로 아주 어색해지는 시대에 우리가 도착했다는 걸 아직 눈치 못 챈 남성이 많다.

연말연시이다 보니 무언가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자리가 많다. 이런 데서 서로 아주 어색해지는 칭찬이나 인사말을 하지 않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여성이 중심인 한 단체에서 크게 축하할 일이 있었는데, 나도 운좋게 그 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여성 성비가 압도적인 자리였고 이 자리에서는 마이크를 주기 전 이른바 ‘당부의 말씀’ 같은 것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했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한 남성분은 “예전엔 ‘인명재천’이라 하여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렸다고 했으나 요즘 저는 ‘인명재처’이며 제 처에게 목숨이 달려 있다”는 농담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지기를 바라고, 축하하는 자리였고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혹은 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취지의 농담이었다. 그런 좋은 취지라는 것은 알겠지만 맘 편히 웃을 수가 없어서 참 곤란했다.

정확하고 건강한 칭찬의 말. 자리를 여는 좋은 인사말. 이런 것들이 어려운 일상 기술이고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전에는 몰랐다. 칭찬을 할 때 사람들은 ‘상대방을 추켜세운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이상한 말을 한다. 예를 들어 습관적으로 듣게 되는 나쁜 칭찬은 이런 것. 남성들이 자신보다 여성을 높여주려고 할 때 자꾸 외모 칭찬을 하고, 자신이 ‘설렌다’는 말을 하면서 추켜세우는 경우. 자신이 ‘설렌다’는 것이 진정한 호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고백을 시도하는 급성 로맨티시스트가 사회에 이렇게 많을 리는 없다. 여대에 와서 자신이 ‘설렌다’고 말하며 그걸 상대방을 추켜세워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연애 시장에서 가치 있는 이성이란 부분을 칭찬하는 거다. 상대가 그 연애 시장에 추호도 관심이 없는 상황일 때 이런 말은 유해한 말이 된다.

자신을 낮추는 농담이나 인사말도 자주 쓰이지만, 참 어렵다. ‘인명재처’는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는 재미있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아내나 딸로만 불리지 않기를 바라는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적절하지 않았다. 이 농담처럼 상대방을 아주 가까운 사적 관계, 이를테면 딸이나 자신의 처로 비유하며 친해지려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마치 딸 같은 분들이 모여 있는’ 또는 ‘우리 아내 젊은 시절 보는 것 같은’ 말들이 오히려 그 자리를 유해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무해하고 적당한 거리이며 서로 호감을 가진 인간관계. 이런 것은 만들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듯하다. 이걸 어렵게 하는 ‘칭찬’ 또는 ‘인사말’에 대해 돌이켜본다. 무의식적으로 ‘오랜만이야’ 뒤에 붙는 질문들. 외모나 살 이야기, 직장 이야기 말고도 다른 좋은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나? 습관적으로, 인사처럼 하는 이야기를 돌아보고 우리 모두 업데이트를 하자. 연말을 앞두고 ‘하지 않으면 더 좋을 말’ 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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