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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6일 17시 03분 KST

한국의 히딩크처럼~베트남 축구신화 쓴 박항서

이제는 히딩크가 네덜란드의 박항서

“박항서, 나랑 동기예요. 선수 때 같이 대표팀에 있었는데 별명이 ‘밧데리’였죠. 기술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링커(미드필더)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독종이었어요. 곱슬머리에 경상도 사투리를 많이 썼는데, (상대 선수를 괴롭히는 경기 스타일이) 아주 지긋지긋했죠.”

 

ASSOCIATED PRESS

 

축구해설가로 활약해온 신문선 명지대 교수(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15일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 신화를 쓴 박항서(59) 감독의 선수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신 교수는 박 감독과 ‘77학번’ 동기(신 교수는 연세대, 박 감독은 한양대)로 당시 축구대표팀 ‘충무’에서 같이 뛴 적이 있다고 했다. 이번 스즈키컵 결승 2차전 관전을 위해 직접 하노이에 간 그는 “여기 와보니 대단하다. 경기 중 도심에 차가 하나도 없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때의 한국과 똑같다. 박항서를 당시 히딩크로 보면 된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FC서울 단장을 지냈던 한웅수 한국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도 박 감독의 초창기 한국프로축구 럭키금성 선수 시절에 대해 “성실했고 열심히 했다.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는 선수였다. 테크니션은 아니었고 저돌적인 스타일이었다”며 “국내 지도자로서 그동안 인상적인 기억이 없는데, 베트남 가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은 토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인데도 국내 지상파 사상 처음으로 생중계됐고(SBS), 전국 시청률 18%(수도권 19%)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많은 축구팬이 같은 시간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대신 ‘박항서 매직’을 즐긴 것이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박항서 신드롬은 그가 우리나라와 정서가 비슷한 베트남 대표팀을 맡은 점과 그의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가 결합해 만들어진 현상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박 감독은 축구 인생에서 오랜 ‘그늘’ 끝에 베트남의 축구 영웅으로 거듭났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서울 경신고와 한양대에서 공을 찼다. 축구대표팀이 ‘화랑’과 ‘충무’로 이원화돼 있던 1970년대 말 2진급인 충무팀의 링커로 뛰며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 등에 출전했다. 전두환 정권 때이던 1983년 국내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됐는데, 1984년 럭키금성의 창단멤버로 들어가 선수로 뛰었다. 은퇴 뒤엔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를 거쳐 경남FC, 상주 상무 감독을 맡았으나 별다른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결국 그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3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에서 10개월 남짓 감독을 하다가 지난해 10월 베트남의 제의를 받고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에서도 하위급인 동남아 무대에서 지도자로 대성공을 거두며 뒤늦게 꽃을 피웠다.

이를 두고 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팀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 아래에서 수석코치를 하면서 전수받은 노하우를 베트남 축구에 잘 접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 성적을 내지 못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히딩크식 파워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특히 조직력을 강조했다. 체력 강화를 위해 베트남인들이 좋아하는 쌀국수보다는 하루 한번은 고기를 먹도록 독려했다.

여기에 럭키금성(현 FC서울)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이영진(55) 전 대구FC 감독을 수석코치로 데려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이 코치는 국가대표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로 1994년 미국월드컵에도 출전했고, FC서울 수석코치를 거쳐 2년 동안 대구FC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한 축구인은 “박항서의 성공은 ‘보석 같은’ 이영진 수석코치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쌍둥이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배명호 피지컬 코치도 든든한 밑돌이 됐다.

박 감독은 다혈질 성격인데 냉정한 이 코치와 잘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상대 반칙으로 베트남 선수가 그라운드에 나자빠졌을 때 박 감독이 벤치를 박차고 나와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자 이 코치가 이를 말리며 벤치로 몰고 간 모습이 그 단면이다.

그러나 박 감독은 선수들한테는 아버지같이 포근한 존재다. 훈련 뒤 언어 소통이 잘 안되는 베트남 선수들에게 직접 마사지 서비스까지 해주는 등 마음으로 소통했다. 그래서 ‘파파 리더십’이라는 말이 나온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8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오른 뒤 “저는 베트남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 즐겁게 일하고 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노하우를 최대한 선수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항상 ‘나’가 아닌 ‘우리’를 베트남 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이를 잘 따라준 결과”라고 했다. 4강전에서 한국에 1-3으로 져 결승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4개월 만에 10년 만의 동남아 축구 제패로 베트남 축구 역사를 새롭게 썼다.

박 감독은 우승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근 두달 동안 우리 선수들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베트남 국민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면서도 “저를 사랑해주시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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