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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리] EU가 영국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 수정 제안을 일축했다

아일랜드 국경 '백스톱'에 관해 메이 총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 허완
  • 입력 2018.12.14 17:53
  • 수정 2018.12.14 18:10
ⓒThierry Monasse via Getty Images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 줄 이 합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함께 노력해봅시다.”

호소는 간절했다. 13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 앞에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간절하게 말을 이었다.

″백스톱(backstop)이 영국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꿔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 이 합의안, 우리의 합의안은 (무산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메이 총리는 불과 몇 주 전에 EU와 타결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영국 내의 우려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EU의 반응은 차가웠다. 메이 총리는 빈 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브렉시트는 점점 더 암흑 속으로 돌진하는 분위기다.

ⓒPAUL FAITH via Getty Images

 

백스톱이 뭐길래

백스톱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연방 소속인 북아일랜드 사이의 물리적 국경(하드 보더)을 피하기 위한 장치다. 브렉시트 전까지는 같은 EU 회원국이기 때문에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지만 이제 서로 남남이 되는 만큼 검역이나 통관, 출입국 관리 등을 위한 장치가 필요해진다. 지금과 같이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 내용의 무역 합의가 새로 체결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일랜드섬에 물리적 국경을 세우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과의 통합을 원하는 신교(프로테스탄트)와 아일랜드로의 통합을 원하는 구교(가톨릭)가 30여년 간 유혈 충돌을 벌였던 곳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지 이제 겨우 3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드 보더’가 생기면 양측의 갈등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협상안인 ‘탈퇴 합의(Withdrawal Agreement)’에 백스톱 조항을 집어넣었다. 이에 따르면, 전환기간(2020년 12월)이 끝날 때까지 양측이 무역 합의 체결에 실패할 경우 영국 전체는 사실상 EU 관세 동맹에 남게 된다. 여기에 더해 북아일랜드는 EU 단일시장에도 일정 부분 잔류하게 된다.

ⓒCharles McQuillan via Getty Images

 

백스톱은 이것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다. 일종의 보험 같은 성격이다. 영국과 EU는 브렉시트 이후 무역 합의를 조속히 타결해 백스톱이 적용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적용되면 영국이 이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수 없고, 종료 시점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사실상 EU에 꼼짝 없이 남게 되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름만 브렉시트일 뿐 이건 EU를 탈퇴하는 게 아니다’라는 논리다. EU에서 발언권을 잃은 상태에서도 EU의 관련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영국이 EU의 ‘속국’이 된다는 격한 표현까지 쓴다.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다른 이유를 들어 거세게 반발하는 중이다. 영국-아일랜드 통합주의 정당인 이들은 백스톱이 적용되면 북아일랜드가 영국 보다는 아일랜드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본다. 당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DUP가 연정을 깰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배경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메이 총리의 굴욕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안 발효를 위한 핵심 단계였던 의회 인준 표결을 하루 앞둔 10일, 표결을 전격 연기한 바 있다. 자신이 가져온 합의안이 ”큰 격차로 거부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메이 총리는 백스톱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EU 지도자들에게 추가 확답을 받아오겠다고 공언했다.

불신임 위기에서 살아남은 메이 총리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곧바로 EU 정상회의가 열린 브뤼셀로 향했다. 준비한 메시지는 간단했다. ‘EU가 백스톱 부분에서 양보를 해(주거나 그런 척이라도 해)줘야 내가 돌아가서 반대파 의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합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브렉시트가 위험해진다.’

메이 총리는 백스톱 적용 시한을 최장 1년으로 못 박고,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EU의) 정확한 확답만 있다면 이 합의안은 통과될 수 있다”고 읍소했다.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해야만 ”질서있는 브렉시트”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호소했다. 프리젠테이션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메이 총리의 호소는 통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각) 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FT), BBC 등은 EU 지도자들이 메이 총리의 간절한 요청을 일축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벨기에 등은 메이 총리가 이것으로 반대파를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의견을 표했다고 한다.

ⓒThierry Monasse via Getty Images

 

메이 총리가 프리젠테이션을 마치고 퇴장하자, 남은 회원국 정상들은 2시간 넘게 회동을 벌여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결과는? 영국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EU 정상들은 회의 결과 발표문에 ‘EU는 영국에 백스톱 관련 추가 확답 조치를 줄 수 있을지 검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문장을 넣으려다가 통째로 지워버렸다.

뿐만 아니라 ‘백스톱은 EU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며, 필요한 상황이 오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에만 적용될 것’이라는 수준의 선언적 문구조차도 삭제됐다. 한 관계자는 메이 총리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실제로 정상회의 직후 나온 발표문은 EU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3. 유럽이사회는 아일랜드섬 내 하드 보더를 피하고 (EU) 단일시장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예방 정책의 목적으로 백스톱이 마련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환기간 종료일인) 2020년 12월31일까지 대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차후 (무역) 합의를 신속하게 진행해 백스톱이 적용될 필요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 EU의 강력한 의지다. 

4. 유럽이사회는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스톱이 발동된다면 이것이 하드 보더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추후 합의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와 같은 상황이 오면 EU는 백스톱을 대체할 추후 합의를 협상하고 매듭짓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고, 영국도 그럴 것이라 기대하며, 따라서 백스톱은 오로지 필요 기간 동안에만 시행될 것이다.

또한 EU는 백스톱을 비롯한 브렉시트 합의안은 ”재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덧붙여 EU는 ”모든 가능한 결과들을 염두에 두고” 후속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안 통과가 무산돼 끝내 ‘노딜(no deal) 브렉시트’가 벌어지더라도 큰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뉘앙스다. 영국 입장에서는 야속하게 들릴 만 하다.

ⓒThierry Monasse via Getty Images

 

기울어진 운동장

″우리 영국 친구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게 뭔지 말해줬으면 한다. 우리가 뭘 원하냐고 우리한테 묻는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영국 친구들이 몇 주 안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제시해줬으면 한다. 토론이 흐릿하고 모호할 때가 있는데, 나는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회의가 끝나고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한 말이다.

EU 측은 메이 총리의 제안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EU 측 대표로 나섰던 미셸 바르니에는 메이 총리가 ‘의회 설득’을 명분으로 이미 협상 과정에서 거절됐던 아이디어를 다시 끄집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EU 외교 인사는 ”메이 총리가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영국 총리실은 14일 끝나는 EU 정상회의 이후에도 막판 협상을 추가로 벌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메이 총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내년 1월21일 전까지는 의회 표결을 실시하겠다고 했던 총리실 측은 “1월 중 가능한 빠른 시일”에 표결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설령 메이 총리의 요구를 EU가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의회 통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EU 순회 의장국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다음달 정상회의에서 양측이 합의점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의안이 영국 의회를 통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건 어려운 질문입니다. (영국 의회 내) 일부 반대자들이 합리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가디언은 이게 바로 ”다른 EU 외교관과 정부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내비쳤던 우려”라고 설명했다. 메이 총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EU 지도자들이 여전히 반신반의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융커 집행위원장은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대책을 19일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굳이 따지자면 다급한 건 영국이지, EU가 아니다. 브렉시트 협상이 막판으로 갈 수록, 메이 총리와 영국은 이 냉혹한 현실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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