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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3일 21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13일 21시 17분 KST

택시기사 사망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며 마음이 씁쓸해졌다

뉴스1
huffpost

한 택시 기사가 카풀 사업에 반대하며 분신하였고,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뉴스 댓글은 대부분 택시 기사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택시의 난폭운전이며, 불친절, 택시로 인한 교통체증에 화가 나있었다. 나도 평소에 운전을 하거나 택시를 이용할 때면 겪는 불편함이었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카풀이나 우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확장되면, 소비자들은 편리해질 것이다. 새로운 사업 영역이 생기는 셈이니, 경제에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택시 기사들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 어려움은 단순히 술한잔이나 담배 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힘겨움은 아닐 것이다. 생계를 박탈당하고, 삶이 훼손되며, 일상을 무너뜨리는 어려움일 것이다. 그들의 삶은 확실히 붕괴될 것이고, 대신 공유경제를 이끌 인프라와 자본이 있는 대기업은 확실히 이익을 누릴 것이고, 소비자들은 다소 편리해질 것이다.

당연히 나도 편리함을 원한다. 편의적인 것들이 좋고, 그것들이 삶에 보탬이 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편의성들이 누군가의 삶들을 완전히 박살내고 나서야 얻는 것이라면, 그 편의성을 양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종류의 산업들의 진입을 영원히 막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새로움이, 시장이, 자유가 누군가의 삶들을 완전히 붕괴시키면서 도래해야 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 진행을 완화시킬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 고속도로를 하이패스를 통해 자동화하려던 사업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업은 톨게이트 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해 유보되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던 일은 가능하면 사람이 하면서 천천히 바꾸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새로운 기술들이 기존의 것들을 대체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적응할 시간을 주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파괴 당하지 않을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삶을 파괴해야할 만큼 선진적이지는 않아도 된다. 조금 늦어도 된다.

잘못은 절박한 사람들에게 있다기 보다는, 그들을 절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들에 더 있지 않을까 싶다. 절박하고 싶어서 절박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절박함은 엄청난 이기심, 탐욕, 끝도 없는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단지 생존 때문에, 책임져야 할 것들 때문에, 생 때문에 절박해지는 것이다. 그런 절박함을 향해 일방적인 비난과 증오 밖에 할 수 없는 사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곤 믿지 않는다.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