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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만든 영리병원

영리병원의 정치가 성공할수록 큰 정치는 실패하니 문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5일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5일 제주도청 브리핑룸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 허가 방침을 밝히고 있다. ⓒ뉴스1
ⓒhuffpost

먼저 오해 한가지. 영리병원은 그냥 돈을 버는 병원이 아니라, 돈을 남겨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병원을 말한다. 냉혹한 투자의 법칙을 피할 수 없으니, 위험을 감수할 만큼 이익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나 미래에 실현될 수익, 또는 여러 사람의 환상에 기초한 주식 가치.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큰 그림까지 그리며 영리병원 허용을 결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법이 제정되었으니, 자신은 유산을 이어받아 뒤치다꺼리한다고 여길 것이다.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고 제주도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했다며 사명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 공허한 경제 이익도 제주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제주 영리병원의 ‘빅 픽처’를 이해하면 좋겠다. 일자리, 세수, 의료관광 수입으로 경제효과를 주장하지만, 도 차원의 문제면 국가적 관심사로 등장할 이유가 없다. 단언하지만, 제주 영리병원은 시범사업이나 마찬가지다. 다음 단계로, 모든 지자체가 영리병원 투자를 유혹하며 경쟁하는 시기, 보건의료와 영리병원이 국가화하는 시기가 닥친다.

영리병원은 건강정책도 의료정책도 아니다. 경제정책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누구도 도민이나 국민의 건강을 돌보거나 의료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이라 말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늘리거나 성장률을 높이는 지름길이라 확신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서비스 산업 육성, 국제 경쟁력 확보, 환자의 선택권, 성장동력…. 기계처럼 되풀이하는 목표는 차라리 욕망을 표현한다. 결과에 이르는 논리를 갖추지 못했으니 손익 계산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나는 영리병원을 의료와 경제가 아니라 정치 프로젝트라 생각한다. 도지사나 중앙정부가 장기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은밀하게 추진한다는 뜻이 아니다. 영리병원을 밀어붙이는 정치는 한국 자본주의 경제의 앞날을 도모한다는 그 정치(들)와 완전히 같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결국 선진에 이른다는 환상을 만들고 설득해야 하는, 구조 또는 ‘국가이성’으로서의 경제 정치. 영리병원과 이로써 꽃필 의료산업이 새로운 먹거리라는 국정 이념.

성장이라는 신기루 속에 의료의 상품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일, 이를 위해 체제로 진입하는 교두보를 쌓는 것이 이 정치의 논리이자 역할이다. 물꼬가 트여 많은 지방정부와 병원, 직원, 주민이 이해관계에 얽히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이동하고, 영리병원이 안착할수록 국민의 인식과 문화가 바뀐다. 지방과 국가 제도 또한 이런 변화에 적응하며 탈바꿈한다. 바로 모든 것의 민영화, 영리화 과정이다.

영리병원의 정치가 성공할수록 큰 정치는 실패하니 문제다. 나는 모든 시장과 성장을 반대하지 않는다. 영리병원으로는 경제적 성과를 보기 어렵고, 설사 효과가 있다 해도 기존 경제체제의 모순과 고통을 더할 뿐이어서 반대다. 환자는 소용없이 비용을 더 부담하고 기필코 남길 이익은 투자자가 전유하는 경제, 이를 성장이라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 환자 부담을 줄이자고 국민건강보험까지 동원해야 하면, 병원 영리화를 둘러싼 부담과 이익의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차마 도덕 경제라 할 수 없으니, 그 정치는 마땅히 실패라 불러야 한다.

영리병원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아니라 정치가 만든 인공물이다. 고칠 수 있지만 갈수록 어렵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이제라도 멈추는 것이, 그러며 이유를 드러내는 것이 제주 영리병원의 역설적 가치가 아닌가 싶다.

하나 더, 중앙정부 또한 주역이니 코치 노릇 정도로 책임을 다했다 하지 말 것.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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