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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뒤 직장에서 '아싸'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정치인만 모르는 저출산의 비밀

ⓒhuffpost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미만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호들갑 떨 필요 없다. 그럴 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한 아이의 엄마인 나부터도 더 낳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에선 (통과되지 못했지만) 내년 10월부터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 250만원을 주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역시나! 무책임하고 영혼 없는 대책이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저출산 대책에 135조원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이런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 조금 더 나아지리란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 못하고 내 얘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꼭 10년 전 나는 첫아이를 출산했다. 그때만 해도 이왕 시작한 거 아이 셋을 낳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출산 후 3개월 출산휴가에 이어 1년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기간이 끝나가는데도 아이를 보낼 곳이 마땅하지 않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3년간 육아를 전담했고, 육아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접속한 재미로 '태평육아의 탄생'이라는 책도 썼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남편의 적극적인 양육, 친정엄마의 도움, 이웃의 품앗이 돌봄으로 겨우 어린이집을 졸업할 수 있었다. 물론 나에게는 ‘나쁜 엄마’라는 별명이 남았다.

새로 다닌 직장에 적응하느라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많았고, 남들이 보기에 엄마의 손길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사회적 인식에 조금만 못 미쳐도 쉽게 ‘나쁜 엄마’가 되고, 아빠는 대한민국 평균보다 조금만 높아도 ‘멋진 아빠’가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뭐, 그런 별명쯤이야 애교로 생각하여 기꺼이 받아들였다.

초등학교에 가니 어린이집까지는 양반이었다. 어린이집은 오전 8시에 맡기고 저녁 7시에 데려올 수 있었기 때문에 ‘9 to 6 근무’라도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낮 12시에 끝나고 학교의 방과후 돌봄도 오후 5시까지만 가능했다. 퇴사도 고민했지만, 마침 시행된 유연근무제라는 카드를 쓰기로 했다.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으로 시간대를 바꾸면 5시에 아이를 데려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연근무제가 가능한 새로운 부서로 이동해서 일을 계속했다. 이제 새로운 수식어가 은밀히 따라붙었다. ‘이기적이다.’ 유연근무제는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특별한 혜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난 뻔뻔해서 유연근무제라는 혜택을 누렸지만, 현실에서 유연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연근무를 하더라도 승진 포기, 부서 변경, 그리고 매 순간 불편함과 죄책감을 감당해야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오후 4시 정각에 퇴근하기가 어려워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고, 눈치를 보다가 일어나지 못해 아이 픽업이 늦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직장에서 시쳇말로 ‘아싸’(아웃사이더) 될 각오도 해야 한다. 저녁에 하는 회식은 물론 5시에 팀 회의를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찍히기도 했다. 점점 많은 기회에서 배제되고 있었다.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돌봄 문제를 잘 이해할 거라 생각했던 상사에게 ‘우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세상 참 좋아졌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듣기도 했다.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이 짓눌렀다. 아이를 재우고 집에서 일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출장을 가거나 일이 많은 시기엔 멀리 사는 친정엄마를 호출해야 했다. 육아문제로 남편과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육아 문제에 적극적이던 남편도 아이가 초등학교 가면서는 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학교에서 학부모 참여는 곧 엄마 참여라는 인식 때문이다. 학교 일을 위해 엄마는 휴가를 내서라도 참여하지만, 아빠는 시간이 있어도 참여하지 않는다. 부모 지원이 필요한 일에서는 일하는 엄마와 전업주부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일하는 엄마는 참여하지 못해 죄인이 되고, 허구한 날 불려다니는 전업주부는 ‘내가 이러려고 일을 그만두었나’ 자괴감에 시달린다. 엄마들이 학교 참여 문제로 서로 신경 쓰고 시름시름 골병드는 사이 아빠들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고 하기도 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런 현실을 감당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다.

겨우 한명 키우면서 이렇게 너덜너덜해졌는데 둘째를 낳을 엄두가 나겠는가? 내가 유별난 건가? 대한민국 평균 이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남편이 있고, 급할 때 도움을 주는 친정부모와 마음 착한 이웃들이 있다. 출산휴가에 육아휴직도 하고, 유연근무제까지 제도적 권리란 권리는 다 행사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가?
자책도 해본다. 나도 이런 지경인데, 제도적 혜택이나 사회적 도움을 못 받는 엄마들은 어떨까? 최근 미셸 오바마가 여성 계발서 ‘린인’을 언급하며, “여성이 일과 가정을 동시에 양립할 수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일에 몰두하면 다 된다는 말은 개똥같은 말”이라고 했다고 한다. ‘집에서 놀면서’라는 말을 듣는 전업주부의 고충은 또 어떤가? 사회문화, 결혼제도는 평등하지 않다.

얼마 전 정부가 저출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출산 장려 위주 정책에서 육아부담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했다. 천번만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당장 초등 3학년부터 학교 돌봄도 없는 긴긴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나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되지 못한다. 친정엄마에게 SOS를 치든,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원 뺑뺑이를 돌리든, 그도 안 되면 회사에 데리고 다닐 생각도 해본다. 할 말은 많지만, 딱 하나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말 저출산이 걱정이라면, 아이를 국가가 책임지고 키운다는 생각으로 빈틈없이 완전한 돌봄을 디자인해보길 바란다. 아이 돌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일 없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려고 여성이 만신창이가 되는 일 없게, 아이 돌봄 때문에 시골에 사는 할머니가 동원되고, 사랑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에 부부가 다투는 일 없게 말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진정성을 가지고, 진득하게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출산파업을 풀고 1에서 2로 갈 의향이 있음을 밝혀둔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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