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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다시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정우성을 만났다.

  • 김도훈
  • 입력 2018.12.13 13:31
  • 수정 2019.03.19 11:43
ⓒHuffpost Korea/Lee kyungjae

정우성은 우리가 속내를 잘 아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잘생긴 영화배우, 거대한 스타였다.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정치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길이 없었다. 그는 말을 아끼는 대신 눈빛으로 스크린 위에서 말을 건네는 남자였다. 과묵하다고 표현하지는 않겠다. 그건 스타로서 살아가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이었다. 어느 날 정우성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먼 옛날 무성영화 스타들이 유성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던 것처럼 놀라웠다. 그는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내놓기 시작했다. KBS 파업에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영화 시사회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다. 그리고는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UNHCR Goodwill Ambassador)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저 난민이 있는 곳에 가서 사진이나 몇 장 찍고 오는 홍보용이 아니었다. 정우성은 정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정우성은 종종 인터뷰에서 정우성으로 산다는 것의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스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온당 겪을 만한 불편함이다. 정우성으로 산다는 것의 불편함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최고조에 올라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사들에는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제주 예멘 난민과 함께해달라고 호소하자 인터넷은 폭발했다. 정우성은 악플이 거의 없는 배우였다. 대중의 인기를 안고 살아가는 배우에게는 조금 곤란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우성은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익명성에 대한 갈구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나라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불편함보다는 나로서 생활할 수 있는, 또 이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찾아가고, 그런 것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Huffpost Korea/Lee kyungjae

정우성의 어린 시절은 잘 알려져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종종 언론에 털어놓았다. 그의 어린 시절과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에는 어떤 링크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우성은 “제 불우한 어린 시절의 환경이나 생활이 친선대사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대변할 것이다’라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제 불우했던 환경으로 인해 내가 사람들에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인식 제고’ 같은 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떤 어려움은 저와 닮아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어려움은 저보다는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와 닮아있는 것 같아요”

그는 배우로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사려깊게 한국의 역사를 되짚는다. 그리고 난민에 대해서 우리 모두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제국주의를 지나서 냉전 시대를 거치고, 동족 간의 전쟁도 치렀죠. 일제 강점기부터 많은 난민과 실향민들이 형성이 됐던 나라에요. 아직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난민의 역사와 더 닮아있어요. 결국 난민이 생겨나는 국가들의 역사를 보면 제국주의, 냉전 시대의 그늘이 있습니다. 그런 내전은 세계열강들의 패권으로 인한 대리전 양상이기도 하죠. 이런 것들이 다 보이기 때문에 제 개인의 역사를 난민에 빗대서 호소하기보다는 우리 역사와 닮아있는 난민들의 역사를 우리 국민들이 잘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바로 한국의 미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Huffpost Korea/Lee kyungjae

 하지만 그로서도 무력감을 느낄 법하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일어나고 있다. 난민에 대한 혐오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불안하고 불안하고 또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사로 활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여론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그런 순간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요, 국가의 위기를 지켜냈던 건 결국 시민의 힘이에요.”

그는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으로 인한 반난민 정서와 지금 한국의 반난민 정서는 조금 다르다고도 생각한다. “일부 시민들이 난민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보이는 게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국가가 시민의 안전과 소득과 기본생활에 대해서 제대로 돌봐왔는지를 되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방 이후 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국가의 리더와 기득권이 시민들에게 얼마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는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런 역사 때문에 광장의 혁명을 겪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열망이 책임감 있는 기득권의 모습을 요구하는 거지요.”

정우성은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으로 일어나는 반난민 정서를 읽어냄으로써 한국이라는 국가가 난민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유럽은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이민자 정책을 실행했죠. 충분히 이민자들을 이용은 했지만 사회적 융합에 있어서 정책적인 고민은 없었죠. 그리고 열강의 대리전으로 파생되는 지금 난민들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냥 외면을 하고 있거든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해요. 그러니 유럽의 반난민 정서는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은 형식적인 민주주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면서, 특히 소득분배가 골고루 이루어졌느냐라는 것을 물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유럽의 경우와는 분리해서 바라보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Huffpost Korea/Lee kyungjae

그래도 염려되는 건 있다. 20대의 반난민 정서다. 리얼미터가 지난여름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와 60대 이상에서 제주도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이 높았다. 20대에서는 반대가 무려 찬성의 3배로 나타났다. 이걸 우리는 20대의 보수화라고 말해도 좋은 것일까? 정우성은 “조사를 보면 분명히 우려와 걱정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20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항변한다. “이건 무조건적인 반난민 정서가 아니에요. 지금 20대가 처해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국가가 어떤 자세로 대처를 하고 있느냐는 문제죠. 대처를 제대로 못 하는 와중에 갑자기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왔고, 난민 제도와 그들에게 주어지는 혜택과 상대적인 비교를 하면서 박탈감을 호소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20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단지 20대에서 기인한 게 아니거든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시스템의 부작용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거거든요. 20대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요.”

이것은 확실히 진짜 어른의 이야기다. 몇몇 기성세대는 왜 20대는 보수적이 되어가냐고 일갈한다. 왜 난민을 반대하냐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충고한다. 하지만 20대의 반난민 정서를 만들어낸 건 기성세대다. 정우성은 기성세대가 그들을 설득해야한다고 생각한다. “20대는 ‘대학 가서 공부 제대로 하면 다 취업할거야’라는 말을 믿고 따라온 친구들이에요. 제도권 안에서 키워지고 생산된 인간형이란 말이죠. 그러니 반난민 정서 역시 ‘믿고 따라왔는데 우리한테는 뭐가 있냐’는 기성세대에 대한 항변인거죠.”

ⓒHuffpost Korea/Lee kyungjae

그러고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할리우드는 직접 정치 운동에 뛰어드는 배우들이 있다. 조지 클루니는 때로 대선 출마설이 나돌 정도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한다. 수단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를 워싱턴 주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마크 러팔로는 환경, LGBT, 페미니즘 같은 주제에 대해 늘 자기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유명하다. 수잔 서랜든은 지난 미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활동했다.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다. 셀러브리티와 배우들은 극도로 정치적 의견을 아낀다. 촛불 혁명 이후 스타들의 정치적 발언은 늘어났지만, 아직은 모두가 몸을 사린다. 스스로를 검열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우성은 지금 가장 희귀한 스타 중 하나다.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정치와 시민을 단절시킨 걸 알 수 있어요. 시민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죠.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작은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결국 정치 활동이거든요. 정치는 아주 특수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 하는 게 아니라 시민이 필요한 것을 최대한 크게 요구하는 목소리 그 자체에요. 그러니 정치 활동에 대한 관념 자체를 깨야 할 것 같아요. 다음 세대는 생활화된 정치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정치가 아니라 시민의 정치사회를 만드는 데 지금 제 세대들이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Huffpost Korea/Lee kyungjae

물론 정우성은 여전히 배우다. 정치적인 발언을 하고 난민 대사로서 활동을 하는 것이 배우로서의 영화를 고르는 윤리적 인식에도 영향을 끼칠 지 모른다. 우리는 그런 것을 종종 ‘캐릭터의 윤리성’이라고 말하곤 한다. 정우성은 여기서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시대적인 영화 ‘비트’를 다시 일깨운다. “저는 ‘비트’라는 영화를 하고 나서 영화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이 정도구나,하는 걸 운좋게 빨리 깨우친 배우 중 하나죠.” 그래서 그는 90년대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들에 출연하지 않았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파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그런 원칙을 지키고 싶었어요. 나와 내 영화를 보는 청소년, 혹은 제 세대에게 조금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싶었고, 캐릭터를 고르는 데 있어서도 선을 지켜야겠다는 배우로서의 직업의식을 얻었죠.”

하지만 그것이 배우로서의 정우성을 어떤 틀 안에 갇히게 만든 것은 아닌가,라는 다소 무심한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망가져야 좋은 배우가 된다’는 오래된 한국 영화계의 편견 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배우가 그런 걸 신경쓰면 어떡해.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다 해봐야 하잖아’라고 말합니다. 물론 망가진 캐릭터를 통해서 사고의 고민을 충분히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걸 굳이 ‘연기의 자유’라는 막연한 단어를 통해 무책임한 활동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Huffpost Korea/Lee kyungjae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 정우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문득 배우로서의 다음 행보도 궁금해졌다. 가만 생각해보면 정우성이라는 배우는 한국 영화 로맨티시즘의 어떤 정상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꼭 껴안아 주는 연인으로 스크린에 등장할 때 가장 빛이 나는 남자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정우성은 눈치채기 힘들 만큼 옅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우리는 이제 낭만을 이야기해야죠” 생각보다 꽤나 낭만적인 대답이다. “영화에서 자꾸 사회의 부조리만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도 관객들은 힘들 겁니다. 사회가 조금 더 빨리 안정되면 영화에서 시덥지 않은 개인사를 확장해 인간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오겠죠. 관객들은 여유가 있을 때 극장에서 로맨틱한 영화를 찾더라고요. 관객들이 마음의 여유를 찾는 그런 시대가 오면 자연스럽게 그런 영화들이 나올 겁니다. 저 역시도, 로맨틱한 영화를 하고 싶고요”

우성은 말한다. 당신에게 말을 한다. 영화로만 말을 하지 않는다. 눈빛으로만 말을 하지 않는다. 함께 해달라고 한다. 세계의 일원으로서 함께 살아가자고 말을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눈을 보며 기꺼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낭만의 힘을 묻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애석한 일이다. 정우성은 아마도 그 시절을 좀 더 앞당기기 위해 정치적 발언을 하고 난민을 꼭 껴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서도 결국 낭만을 이야기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Huffpost Korea/Lee kyungjae

김도훈 편집장 dohoon.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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