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12월 12일 17시 35분 KST

초등생 아들과 꾸준히 ‘성적(sexual) 대화’를 해온 페미니스트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인터뷰)

”우리는 애들에게 ‘다른 사람 때리지 말라‘, ‘물건 빼앗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왜 ‘타인을 성적으로 침해하지 말라‘고 하는 건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일’이 될까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김서화(여성학 연구자)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부터 꾸준히 ‘성적 대화‘를 해왔다. 시험 점수에 대한 대화가 아니다. ‘성적’(性的, sexual) 대화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아들의 성장과정에 맞춘 눈높이 대화이지만 주제는 자위, 생리, 성폭력, 가사노동, 권력관계, 남자다움 등등 사회의 젠더 담론을 종횡무진한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뭘 그런 걸 하느냐”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김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적(性的) 존재”로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은 젠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해 발간된 책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는 김씨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초딩 아들, 영어보다 성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을 모아 다듬은 것이다.

김씨가 책 제목에서 성교육이라고 하지 않고 성적 대화라고 표현한 이유는 ”애들한테 (일방적으로) 가르칠 게 아니라,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대화하면서 성장해나갈 문제”이며, 성교육이라는 단어 만으로는 아들과의 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성교육이 성폭력 예방교육 혹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만들어진다’ 정도로 한정된 상황에서, 어른인 우리는 과연 아이보다 얼마나 더 많이 알까? 젠더 편견을 뿌리 깊게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김씨는 ”부모가 먼저 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나 역시도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한 게 굉장히 많다는 걸 깨달았다”며,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더 많이 성장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KWAKSANGAH/HUFFPOSTKOREA

책에는 엄마와 아들이 등장하지만, 엄마가 아들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별 구분 없이 양육자와 아이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나누는 대화로, 술술 읽힌다. 훗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이들,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들을 비롯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귀 기울여볼 만한 이야기다. 아래는 김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제목에 굳이 성교육이라 하지 않고, 성적 대화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 사실, 한국에서 성교육이라는 건 매우 좁은 의미의 교육이죠. 성적인 행위에 대한 교육 정도만 인식되고 있잖아요. 각종 성, 젠더 문제에 대한 아들과의 대화가 성교육이라는 단어로는 잘 표현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양육자를 너무 교육자의 위치에 두게 되면, 가르치는 사람이 되잖아요. 상대방을 미약하고, 덜 성숙한 존재로 전제하는 게 되니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너와 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니?’ 하는 차원에서 성적 대화라고 한 거죠. 그런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성적(시험 점수)에 대한 대화인 줄 알더라고요.(웃음) 도대체 페미니스트 엄마는 아들과 시험 점수에 대한 대화를 어떻게 하느냐고 궁금해하고.

- ”처음에 아들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성폭력 가해자 부모들의 태도, 특히 엄마들의 복잡한 태도 때문이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요?

= 제 생각에, 일명 아들이 사고 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아버지는 양육자로 잘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대부분 판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이 되면, ‘내 아들이 그랬을 리 없다‘거나 아니면 대놓고 ‘내 새끼가 아니다‘가 되거나. 그런데 많은 경우, 엄마들은 훨씬 더 복잡한 심경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내 아들 어떡해요’ 하다가, ‘저게 내 아들인가’ 싶다가, ‘난 저렇게 안 키웠는데’ 등등. 복잡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차이가 돌봄이라는 역할에 엄마들이 너무나 깊이 개입돼 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돌봄은 곧 가족 내에서 엄마가 맡는 역할이고, 그걸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엄마의 인생 전체가 평가받으니까. 아이가 잘못했을 때, 엄마 탓이 정말 쉽잖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아들과 엄마가 만나는 상황 자체가 젠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 그런데 초등생부터 성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무조건 어릴 때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초등학생한테 어떻게 그런 걸 가르쳐요?‘라는 건, 성교육을 섹스에 대한 교육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등학생도 아닌데 뭔 성교육이냐’ ‘알면 (섹스)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적인 존재’라고 말씀드리곤 해요.

여기서 말하는 성적 존재란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섹스한다’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우리가 사는 방식, 옷 입는 방식,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 우리에게 주어지는 역할 등등.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포함해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젠더 담론과 뗄 수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성적 존재라고 말씀드리는 거죠.

사실 우리는 그걸 성교육이라고 인식하지 않지만, 아기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성을 기반으로 한 메시지를 전해 듣잖아요. 낳기 전부터 딸인지 아들인지 알려주고. 그럼 그걸 전해 들은 양육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기를 위한 물건들을 사죠. 딸이라고 하면 핑크색 옷을 준비하고, 아들이라고 하면 파란색을 준비하고.(웃음) 그런 건 왜 성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우리는 성교육을 받고 있는걸요. 그것도 나쁜 방식으로.

인간은 모두 달라요. 그런데, 아이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아이의 성별에 먼저 주목하는 게 문제의 근원 같더라고요. ‘너는 축구를 왜 하니?‘라는 질문은 사실 굉장히 이상한 말이에요. 축구를 왜 하냐니요? 그런데 그 앞에 여자를 붙이면, 마치 그게 맞는 말(‘여자가 왜 축구를 하니?’)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문제라는 거죠.

Milkos via Getty Images

- ”피해를 줄이려면 가해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게 우선돼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가해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거든요. ‘내 아들을 가해자로 보는 거냐’ ‘모든 남자들이 그럼 잠재적 가해자냐’라고 하시는데..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애들에게 ‘남의 물건을 빼앗지 말라’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물리적 폭력이든 강탈이든, 타인을 침해하지 말라고요. ‘내가 나중에 이 물건을 빼앗길지 모르니까, 아무것도 사지 말아야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요.

그런데 왜 ‘타인을 성적으로 침해하지 말라’고 하는 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요. 왜 최소한의 매너를 가르치는 것이,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게 될까요? 아마도 모든 성적인 사안을 위험한 것으로 상상하거나, 그래서 사법적인 틀 안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가져온 문제 같아요.

성적인 상황이나 젠더 관계에 있어서 피해자, 가해자 틀에 갇히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들 중 어떤 것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지, 반대로 누군가를 환대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면 좋을지, 그런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책 말미에 아들이 ‘혹시 나에게 야동 보여줄 수 있어?’라고 묻는 대목이 나오는데, 야동에 대한 대화는 이후에 나누었나요?

= 네. 아이가 집 컴퓨터로 (19금) 웹툰을 몰래 봤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언제부터 어느 정도를 봤는지, 어떤 내용을 본 것인지, 정확히 확인한 후 아이에게 물었죠. ‘주인공이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하는 장면이 있던데, 너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라고.

아이는 ‘내가 봤을 때는 그 남자가 이 여자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웹툰을 보는 게 좋았니?‘라고 물어보니, ‘(잘못된 것은 알지만) 그래도 계속 생각은 난다. 자극적이라서.’라고 대답하고요.

왜 생각이 날까. 뭐가 궁금했던 걸까.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가다가, 아이에게 사춘기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궁금한 거는 너무 자연스러운 거고, 그렇지만 저런 저렴한 정보로 호기심을 채우려고 하면 심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고요.

(폭력적인 내용의 19금 웹툰에 대해) 현실적이지 않고, 그런 걸 실행하면 안 된다는 걸 정확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지만, 한번에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는 이미 저보다 더 큰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저 혼자 한다고 되는 일도 당연히 아니고요.

하지만 저는 아이에게 ‘너는 어떤 문제든 엄마/아빠와 이야기할 수 있다’ ‘어떤 문제가 벌어지더라도, 너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고학년들에게는 이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아이가 모든 생활을 저에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고, 저 역시 모든 상황에 개입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KWAKSANGAH/HUFFPOSTKOREA

- 성적 대화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게 느껴진 장벽은 어떤 것이었나요?

= 제 안의 편견이요(웃음). 생각보다 편견이 되게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아이에게 성적 행위에 대한 부분을 알려주는 게 가장 어렵고 껄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그건 차라리 쉽고요.

제일 어려운 게 가족관계에요. 굉장히 깨기 힘든 방식으로 젠더 편견이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소위 말해서, 아빠는 아빠 역할을 하고 엄마는 엄마 역할을 하고 할머니는 할머니 역할을 하는 모습들이요. 이건 그냥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들이잖아요.

예를 들어,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면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과일을 깎고, 남자들은 소파에 앉아있고.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죠. 음식 준비를 할 때 남자들이 좀 참여한다 할지라도, 결국 뒤처리는 여자들에게 맡겨진다든지.

그전에도 남편과 조금씩 노력했지만, 잘 안되는 것도 있었고 각자 습관화된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들 교육을 두고, 남편과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됐고.. ‘아 이러면 안 되겠는데?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들도 똑같은 삶을 살겠는데?’ 싶어서 일상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예를 들어 저희 가족 내에서는 남편과 제가 가사노동, 아이 양육을 절반씩 나눠요. 요일별로 나눠서 전담을 맡기는 방법으로.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밥은 엄마가 하는 거다’와 같은 생각들이 점점 깨지는 것 같더라고요. 답답한 것은 여전히 많지만, 조금씩 전진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 권력관계 속에서 힘센 이를 두려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비판했더니, 아들이 ”엄마도 할아버지한테 ‘네, 네, 네’만 하고 맨날 할머니랑 부엌에만 있으면서”라고 반박했다는 책 속 일화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웃음)

= (웃음) 맞아요. 너무 힘든 거예요. 엄청 당황했죠. 제 딴에는 시부모님 눈치 보는 걸 내색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애들 눈에는 정말 정확히 보이는구나.. 애들은 엄마가 평소 안 그러는 사람인데, 할아버지 집에만 가면 그런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웃음). 

저희 집은 친정어머니가 어떤 점에서는 편견이 더 강하기도 하거든요. 근데 제가 친정 어머니랑은 대놓고 싸워요. 그럼 또 아이가 저에게 그러죠. ‘엄마는 할머니가 만만한가 봐. 할아버지(시아버지)가 할머니(친정어머니)보다 더 심한데, 할아버지한테는 못 대들잖아‘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렇지? 오늘 엄마가 좀더 할아버지(시아버지)에게 말을 할 걸 그랬나?’ 하면, 아이는 ‘그럼 파탄 나니까 이렇게 이야기해봐’라고 조언해주고.(웃음)

-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 책이 나온 후 여러 곳에 강의를 다니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이런 식의 질문을 많이 하세요. ’애가 자위하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요. 몇 가지 테크닉을 이야기해드릴 수는 있지만, 저는 객관식처럼 해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질문을 들어보면 이미 그 상황 자체에 양육자의 편견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가 거꾸로 물어보죠. 왜 그 상황을 문제라고 생각했는지요. 이야기를 해나가다 보면, ‘아 제가 성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네요’ ‘저는 당연히 여자라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요’라고 양육자가 스스로 깨닫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성교육에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식 답변이 아니라, 양육자인 어른들이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곽상아 에디터 : sanga.kwak@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