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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연합 동아리 남성 회원들이 '전통'이라며 여성 동료를 경매했다

문제가 되자 남성들은 "페미 아니냐"며 피해 여성들을 손가락질했다.

ⓒ한겨레

“이 방의 존재도, 남자끼리 모인다는 것도 비밀이다. 여자애들한테는 말하면 안 돼.”

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글이다. 그리고 지난 8월3일 저녁, 서울 왕십리의 한 술집에 이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 있는 남성 11명이 모였다. 이들은 1969년 창립한 대학생 연합 요들 동아리 ‘알핀로제’의 남성 회원들이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공연 준비로 바쁘던 가운데 이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동아리의 ‘오래된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 전통이란 다름 아닌 공연에 같이 설 여성 회원 9명을 상품으로 건 경매였다.

먼저 참가자들은 각자 쪽지에 동아리 여성 회원 이름을 하나씩 적었다. 이름이 많이 나온 여성일수록 순위가 높은데, 경매는 순위가 낮은 여성부터 진행됐다. 여성 이름이 호명되면 참가자들은 손을 들어 술잔을 걸었다. 두 잔, 네 잔, 여섯 잔…. 가장 많은 술잔을 건 남성은 여성을 ‘낙찰’받은 뒤 자신이 건 술을 모조리 마셨다. 이들은 단순히 술자리 장난으로 여성 회원을 ‘낙찰’받은 게 아니었다. 경매 뒤 행동 지침도 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성이 낙찰받은 여성에게 사적으로 말을 걸거나 동아리 밖에서 만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식이었다.

“그날 ‘자고 싶은 여자’ 순위를 매기기도 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남성 회원들의 경매 피해자인 ㄱ씨는 포털 사이트 한 카페에서 ‘요들 동아리’ 신입생 모집 글을 보고 “새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에 가입을 결심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더없이 좋은 곳” “학교 밖 인연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홍보 문구도 ㄱ씨의 마음을 끌었다.

ㄱ씨가 우연한 계기로 경매에 대해 알게 된 건 8월3일 경매 당일이었다. 하지만 ㄱ씨가 ‘여성 경매’를 문제 삼고 공론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ㄱ씨는 그 뒤 3개월 동안 이 사실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ㄱ씨는 “경매를 알자마자 화가 났고 모든 것을 알린 뒤 당장 동아리를 나가고 싶었지만 최소 20년 동안 이어져온 동아리 전통이라고 하니까 섣불리 말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되겠구나 싶었다”며 당시 복잡했던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11월이 되면서 피해자 모두가 알음알음으로 남성 회원들의 경매 사실을 알게 됐다. 11월4일께 피해자들이 입수한 남성 회원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는 ‘8월3일 금요일 경매’ ‘남자 비밀 모임’ 같은 표현과 경매 뒤 ‘개꿀잼’ ‘마지막이 아닌 거로 하자’와 같은 후기도 발견됐다. ㄱ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동안 우정을 쌓았고 경매 앞뒤 2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며 “친구, 선배, 후배 또는 애인에게 경매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배신감, 수치심 등의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가해 남성들에게 사과를 받기도 전에 되레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손가락질을 받고 심각한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점이다. 11월10일 일부 남성 회원들은 모임을 열어 피해자들을 겨냥해 “생각이 잘못됐다”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지 않다”고 비난하고 “(페미니스트 느낌이) 있다”고 몰아간 것이다. ‘탈 코르셋’ 운운하며 피해자들의 외모를 비하하고 “올바른 생각으로 페미니스트 한다고 하면 ×× 머리 자르고 이 ×× 안 해”와 같은 막말을 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이 자리에서 한 남성 회원이 “페미는 눕혀놓고 밟아버려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자신들 사이에서 내부 고발자를 찾는 것보다 여성을 비난하는 데만 몰두하는 것을 보고 (상황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한달이 지난 지금껏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사과와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1월11일 피해자들은 동아리 단체 대화방에 성명서를 올려 경매에 참여한 남성 회원들의 사과문과 동아리 공식 사과문, 동아리 반성폭력 내규 마련 등을 요구했다.

‘다시는 경매를 하지 않겠다’는 사과문이 잇따라 올라왔지만, 피해자들은 “진정성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과문이 올라오던 바로 그 시기에 오간 이른바 ‘비상대책위원회’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유출되면서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본 탓이다. 비대위 관계자들은 이 대화에서 “경매가 잘못된 문화긴 하지만 이슈가 되기엔 사안이 약하지 않냐” “실제로 추행이나 폭행이 일어났으면 모를까”라는 등의 말로 상황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일단 동아리가 거의 망했다는 투로 가고…”라며 피해자들 몰래 동아리 활동을 지속할 계획을 짜기도 했다. 외부 공론화를 준비하는 피해자들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는 이야기도 오갔다. 이에 대해 동아리 핵심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에 “개인 성명서와 단체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동아리는 현재 무기한 활동 중단 상태이며 폐쇄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남성 회원들과 계속 함께할 수 없어 동아리를 나가지만, 누군가 어떠한 정보도 없이 이 동아리에 들어와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10일 동아리 이름을 공개하는 성명서를 내고 공론화를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 ㄱ씨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여성 회원들이 들어오는 방식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며 “표면적인 사과 대신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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