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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1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11일 14시 37분 KST

누군가는 승부조작이 범죄가 아니라고 답했다

프로야구 승부조작은 왜 계속될까

bernie_phot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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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한국체육학회지 제54권 6호에는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승부조작에 대한 의식과 예방교육 전략 연구> 논문(정영열·김진국 고려대 강사 외)이 실렸다. 조사에 응한 현역 프로야구 선수 65명 중 1명(1.5%)이 승부조작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으며, 13명(20.0%)은 동료 선수들로부터 승부조작 방법에 대해 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더욱 주의 깊게 볼 사안은 65명 중 5명(7.7%)이 “승부조작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는 점이다. 박현준, 김성현(당시 LG 트윈스) 등 2012년 승부조작 당사자들에게 가해진 일벌백계(영구제명)의 학습효과가 무색하게 1회 볼넷 등을 단순 경기조작으로 치부하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선수가 적지 않았다. 이런 안일함은 지난 2016년, 4년 만에 터진 승부조작으로 입증됐다.

2016년 당시 이태양(전 NC 다이노스), 문우람(전 히어로즈)이 승부조작에 연루돼 기소됐고 ‘제2의 류현진’으로 불렸던 유창식(전 기아 타이거즈)은 승부조작을 자진 신고했다. 이태양은 야수인 문우람의 소개로 2015년 네 차례 승부조작을 한 혐의를 받았고 유창식은 한화 이글스 소속이던 2014년 4월1일 홈 개막전인 대전 삼성전에서 1회초 3번 타자 박석민에게 일부러 볼넷을 내주는 등 두 경기 승부조작을 통해 인터넷 불법 스포츠 도박 브로커로부터 300만원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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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김성현, 이태양, 유창식의 공통점은 보직이 선발투수였다는 점이다. 프로야구는 경기 전날 선발투수가 예고되기 때문에 선수와 브로커의 사전 모의가 가능하다. 승부조작에 야수를 끌어들이기에는 상대 투수의 구질이나 심판의 볼 판정 등 예측 불가능한 돌발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이미 등판이 예정된 선발투수라면 단 한 명만 매수에 성공해도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1회는 선발투수들이 몸이 덜 풀린 상태라는 이유를 댈 수 있어 조작하기가 가장 쉽다.

유창식에게 유혹의 손길을 보낸 이는 4~5년 전 은퇴한 전직 야구선수였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야구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운동기계’로만 길러져 인간관계가 제한적이고 폐쇄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소위 ‘아는 형님’ 식으로 잘못된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이 짙고, 이 과정에서 도덕적 판단의 거름막 없이 유혹에 넘어갈 확률이 높다. 이태양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한 브로커 또한 먼저 문우람에게 팬이라고 접근해 술값을 계산하고 고액의 선물을 안겼다. 브로커의 사전 로비는 치밀하고 은밀하다. 당시 이태양의 법률대리인은 “(이태양이) 나이 어린 선수라서 판단력이 떨어진 것 같다. 운동만 열심히 했을 뿐 정신적으로 성숙도가 떨어진 상태에서 브로커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힌 바 있다.

승부조작은 프로 스포츠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범죄다. 대만프로야구가 좋은 예다. 한때 11개 프로팀으로 승승장구하던 대만 프로야구는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거듭된 승부조작 파문으로 현재 구단이 4개 팀으로 축소된 상황이다. 한국야구위도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선수들을 상대로 승부조작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십조원 규모의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이 존재하는 한 승부조작의 유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전 경기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프로야구는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아무리 교육을 해도 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기관이나 구단이 선수들 사생활까지 일일이 감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의 자각만이 해마다 800만 관중을 끌어모으는 프로야구를 지속 가능케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영하(21·두산)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이영하는 지난 4월 한 브로커에게 선발 등판 날 첫 볼넷을 허용하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제의를 받자 거절하고 곧바로 구단에 신고했다. 미래를 저당 잡힐 수 있는 유혹을 당당히 뿌리친 것이다. 선수협회는 2018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선수상’ 수상자로 뽑기도 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보복 위험을 감수하고 승부조작 제안을 신고한 그의 용기가 타 선수들에게 모범이 됐기 때문이다. 야구위 또한 이영하에게 포상금 5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영하는 “포상금은 모교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라고 밝혀 더 큰 칭찬을 받았다.

문득 궁금해진다. 2015년 프로야구 선수 대상 조사에서 “승부조작이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응답했던 7.7%(65명 중 5명)의 인식은 지금 바뀌었을까.

*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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