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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식 인권정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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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날이자 세계인권선언 제정 70주년 기념일인 12월10일, 고 노회찬 의원이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직하게 걸었던 평생의 족적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사람의 격과 훈장의 격이 이렇게 제대로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권과 관련해 노 의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작년 국감장에서 신문지 위에 누웠던 모습이다. 수감된 전직 대통령을 둘러싸고 인권 논란이 일자, 일반 수용자들이 신문지 2장 반도 안 되는 좁은 면적에 수용되어 있는 실태를 통렬히 풍자하고 증언한 퍼포먼스였다. 대중에게 자유권의 실태를 이보다 더 생생하게 각인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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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유엔의 권고를 따르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할 수 있게 하자는 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사회권을 주류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 제안이었다.
정치인 중에 자유권에 대해 정통하고 열정이 있는 이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사회정책과 복지에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 의원만큼 자유권과 사회권을 종횡으로 일관되게 주장하고 실천한 입법가는 드물었다.

그는 노동권의 직접적 영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비정규직 차별, 산업재해,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손배청구, 장애인과 여성과 야구 선수의 인권 등 자유권과 사회권의 고삐를 양손에 바짝 쥐고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내달았다.

그의 인권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인권의 출발점으로서 자유권을 십분 존중한다. 그런데 경제·사회적 바탕 없이 자유권만 말할 순 없다. 자유권이 형식적 타당성 이상의 적실성을 가지려면 사회권이 받쳐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재분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보편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선 부유층의 자유권 중 재산권 일부를 제한하고, 노동계급의 사회적 대항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 권리의 확대가 긴요하다.

이런 정견은 1993년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세계인권대회 이래 확립된, 모든 권리를 유기적 통합체로 봐야 한다는 ‘인권의 상호의존성’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양식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유권과 사회권을 황금비로 결합시키려 했던 노 의원의 탁견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는 인권의 원형질에 가장 근접한 국회의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편적 인권에 수렴되는 진보정치를 표방했다는 점에서 진보정치권 내에서도 흔치 않은 포지션에 있던 경세가였다. 시민대중이 쉽게 이해하는 언어로 정치 소통을 극대화해 커뮤니케이션 인권을 실천한 선구자의 면모도 분명했다.

그가 추구했던 자유권과 사회권의 통합에 더하여, 연대권의 확장까지 고민하는 후배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생태 위기의 시대를 맞아 이런 이슈가 인간 실존적 차원의 인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인들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노회찬식 인권정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저널리즘이 활발해져야 한다. 진지하게 사회발전을 고민하는 공익적 정치인의 활동은 무시하고, 억지 쓰고 선동하는 반사회적 정치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하는 상업적 미디어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인권정치는 요원하다. 선거제도의 개혁도 필수다. 통상적인 선거방식으로 연대권까지 다룰 수 있는 21세기형 정치인이 자리를 잡긴 어렵다. 제2, 제3의 진화된 노회찬 의원이 나올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 과제도 그의 유지를 계승하는 길이 될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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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인권 #진보 #국민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