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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승차자에 대한 혐오가 우려스럽다

ⓒkieferpix via Getty Images
ⓒhuffpost

최근 여가부가 주최한 ‘다양한 가족(동거가족) 간담회’에 참석했던 방송인 허수경 씨는 엄청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7년째 동거부부로살고 있는 허 씨는 “동거가족이 자녀를 낳게 되면 엄마 아빠가 다 있는데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이를 증빙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고통을 받는다”라며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면 동반자로 인정해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결혼에 따른 책임은 회피하고 권리만 누리겠다는 건 모순”이라는 요지다. 동거가족·비혼 커플이 기존 결혼제도의 어려움은 피하면서 권리만 챙기려 하는 ‘무임승차자’라는 것이다.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는 올 초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때도 나왔다. 남한 선수들의 개인적 희생을 딛고 별 노력 없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하는 북한 선수들에 대해 특혜, 불공정 시비가 나왔다.

최근 무임승차자 논란은 특혜 시비를 넘어 고통분담을 면제받은 이들에 대한 단죄로 번지는 것 같다. 이른바 ‘고통의 평등주의’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허용되면서 대체복무제 논의가 한창인데, 이건 무임승차니 징벌에 준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여혐의 고정 레파토리인 ‘여자도 군대 가라’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시선은 최근 2030 남성들 사이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질 만큼 파급력이 크다. 2030 남성들은 “문재인 정부가 여자만 위한다. 우리 할머니라면 모를까 요즘 여자가 무슨 차별이냐, 남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그 억울함의 기저에도 군 문제가 있다. 어떻게든 보상받아야 한다는 심리 체계가 작동한다. 사실 한국에서 군, 병역만큼 뜨거운 감자가 없다. 웬만한 비리 연예인이 다 컴백해도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받은 가수 유승준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사이버 테러의 원조 격인 1999년 ‘이화오적’ 사태 때도 군 가산점 폐지가 이슈였다. 당시 헌법소원 끝에 군 가산점이 폐지되자 분노한 남성들은 소원을 낸 이화여대 졸업생 5명의 신상을 털며 사이버 테러를 가했다. 

“2000년대 한국사회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을 자기피해자화”로 꼽는 『한국, 남자』의 최태섭 평론가는 “군 복무 경험은 한국 남자들이 가장 크고 넓게 공유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라며 “이 집단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의 남성성은 지금의 남자 문제를 그러안은 채 고착되고, 군의 개선도, 사회의 진보도 어렵다”고 썼다. 또 “해법은 군의 더 철저한 민주화이고, 인권을 부수적이고 어색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병영문화를 뜯어고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도 “여자도 군대 갈 수 있지만, 지금 문제 제기는 너도 당해보라는 심리다. 군 문화 개선이 먼저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사회를 수년째 지배하고 있는 공정성 담론이 무임승차자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이어지는 데는 그만큼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제 몫은 알아서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숨어 있다. 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군 트라우마’, 비리와 불공정이 난무해온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형평의 외피를 입고, 결혼이든 병역이든 기존 룰을 깨려는 사람들을 무조건 무임승차자로 낙인 찍는 일각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지금 무임승차자 딱지가 붙여진 사람들 대부분은 그저 고통을 회피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와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미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임승차의 반대말은 공정성이지, 다원주의·다양성이 아닐 것이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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