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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한 사회의 ‘홀로 여성’이 처한 공포와 절망

ⓒ영화사 피어나
ⓒhuffpost

<숨바꼭질>의 성공 이래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부동산 스릴러의 연장선상에 있는 <도어락>은 아시다시피 2011년 스페인 영화 <슬립 타이트>(Mientras Duermes)의 리메이크다. 하지만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는 여성, 그 일상을 파고드는 은밀한 공격, 그리고 그 구체적 수법 등의 기본 아이디어와 몇가지 세부 설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둘은 전혀 다른 영화에 가깝다.

결정적인 대목은 시점의 차이다. <슬립 타이트>가 가해자-남성의 시점을 따라가는 반면 <도어락>은 그 건너편, 즉 피해자-여성의 시점을 취한다. 그 차이가 모든 차이를 낳았다.

관련하여 당부 한말씀 드리면, <도어락>의 관람을 고려하고 계신 독자께서는 <슬립 타이트>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시길 바란다. 심지어 <슬립 타이트>의 시놉시스를 읽는 행위조차도 셀프 스포일러가 된다. 왜냐. <도어락>은 3분의 2가량이 지날 때까지 ‘범인’의 신원을 비밀에 부쳐두는 반면 <슬립 타이트>는 ‘범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그의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시작을 끊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의 ‘범행 과정’을 내내 줄거리 삼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어락>은 관객이 범인을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위장도 몇가지 깔아두고 있을 정도인데(오히려 더 티가 나는 역효과가 없지 않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주변 누군가’ 같은 주인공, 감정이입의 통로

그렇다. 이는 주인공의 뒤틀린 내면세계를 파고드는 데 초점을 맞췄던 <슬립 타이트>와는 달리, <도어락>은 스릴러적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관객과의 게임에 일차적인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뜻하는바, 그렇다면 이 게임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제목을 통해서도 능히 짐작되듯 <도어락>은 일단 우리가 일상에서 늘상 보는 사물들을 게임의 주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혈흔, 족적, 디엔에이(DNA) 샘플, 검시, 법의학 같은 ‘시에스아이’(CSI)스러운 뭔가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도어락, 카드키, 칫솔, 변기 커버, 편의점에서 파는 ‘3200원짜리’ 상품, 추억의 빈티지 디지털시계 같은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물건이 이 영화를 풀어가는 결정적인 키워드들이다.

그러니까 이건 198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미드 <맥가이버>(그게 뭐냐고? 흠, 그런 게 있었다)의 주인공 맥가이버가 첨단 장비 따위의 도움 전혀 없이 껌, 은박지, 고무줄, 클립, 그리고 그 유명한 ‘맥가이버 칼’ 등으로 당면 액션과제들을 해결하던, 그 친근하고도 아기자기한 정취를 스릴러 장르에서 구현해낸 형국이라 하겠는데, 스포일러 우려로 상세한 말씀을 드리긴 어렵겠으나 <도어락>의 관객들은 예컨대, 그저 카드키로 도어락이 열릴 뿐인 장면을 보면서 화들짝 놀라거나, 또는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생활쓰레기를 보면서 단말마의 비명(최소한 신음)을 흘리는 어이없고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 내내 이런 높은 장력의 긴장을 유지해가는 페이스메이커는 일차적으로 배우들의 고루 좋은 연기, 그리고 절제, 거리두기, 완급조절의 묘미를 잘 살린 연출이다.

<도어락>은 인물과 상황에 대한 지나친 밀착 개입을 피함으로써 긴장감을 확보한다. 영화는 주인공 ‘경민’(공효진)에 대해 도시에서 혼자 생활하는 여성, 그리고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매몰차게 끊지 않고 끝까지 받아주는 여성이라는 점 외에 특별히 그의 배경을 파고들지 않는다. 즉 <도어락>은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흔히 취하는 자양강장제 광고풍의 묘사법(고된 일상, 피곤한 하루,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따스한 친구가 있으니,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같은 식의)을 따르지 않는다. 이렇게 확보된 ‘우리 주변의 누군가’와 같은 현실감은 감정이입을 위한 통로를 트는 데 성공한다. 그것이 이 영화뿐 아니라 수많은 상업영화의 뜻하는 바임은 물론이겠다.

또한 어두운 실내 장면에서 시인성이 낮아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관습적인 광원을 투입하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동일 상황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조명이라든가, 작위적인 ‘깜놀’ 효과음이나 음악을 배제한 채, 일상적 사운드로 오히려 긴장을 끌어올린 사운드(예컨대, 경민이 ‘결정적 단서’가 되는 빈집에 들어갔을 때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시계 초침 소리뿐이다. 물론 이는 전혀 놀라운 것은 아니나, 어찌된 일인지 최근 한국 상업영화에서 이런 것들은 꽤 희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등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효과적이다.

우리 사회 갈등 반영…마무리엔 아쉬움도

그러나 <도어락>의 가장 큰 힘은 뭐니 뭐니 해도 시나리오에 있다. 핵심적인 대목 두세곳의 편의적, 우연적 처리를 빼고 얘기한다면, <도어락>의 시나리오는 적어도 올해 개봉된 한국 장르영화 중에서 가장 밀도 높은 짜임새를 보인다. 일상의 아이템들을 이용해 퍼즐을 이어나가는 재치는 이미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은데, 특히 도어락, 폐회로텔레비전(CCTV), 웹캠, 폰카 같은 기기를 이용해 긴장감과 공포감을 증폭하는 장면들은, 영화에서 비용과 효과가 반드시 정비례 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한다.

물론 정색을 하고 뒤져낸다면 이 이야기에서 논리적인 빈틈들을 찾아내기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몇군데에선 장르 특유의 인공적인 트릭도 쓰이고 있다. 예를 들면, 긴장감만으로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해도 좋을 “여기서 뭐 해?”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대목의 트릭이라든지. 결말 또한 예견된 목적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도어락>을 보는 동안 대부분의 관객은 그런 것들에까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애써 부르짖지 않음으로써 더욱 잘 들리도록 하는 <도어락> 화법의 장점은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경민을 공격하는 것은 ‘범인’만이 아니다. 고객에서 스토커로 돌변하는 남성만도 아니다. 그의 동료들(그는 계약직이다)과 경찰들(남성들이다)도 무관심과 짜증과 의심으로 그를 공격해 온다. 이 상황에서 경민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스스로 공격자가 되어 고양이를 무는 것뿐. 그의 유일한 조력자인 동료 ‘효주’(김예원)의 조언처럼.

하지만 그 공격에는 물론 상응하는 것 이상의 대가가 따르고, 결국 경민은 목숨을 건 싸움에까지 내몰린다. 누구 한명 죽기라도 하지 않으면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이 무표정한 사회의 그 암담한 터널에서 차곡차곡 누적 체험되는 공포와 절망감은 그 자체로 스릴러임과 동시에 메시지다. 이것은 확실히 자신의 메시지를 플래카드 내걸듯 웅변하는 최근의 한국 상업영화들에서는 찾기 어려웠던 화법이다.

물론 <도어락>은 이를 위해 단순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단순화가 그렇듯, 그것은 양날의 작두다.

예컨대 주인공의 보호 요청에 대해 처음부터 대뜸 불친절과 짜증으로 대응하는 경찰 같은 설정은, 설사 그것이 현실의 주류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편의적이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설정보다는 영화 속에서 잠시 등장하는, 전혀 안심스럽지 않은 길바닥에 전혀 안심되지 않게 적힌 ‘여성안심 귀가길’ 같은 문구가 훨씬 더 우리를 분노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은 <도어락>이 이제까지 한국 영화 사이코패스의 주요 공급원이었던 ‘부유층/특권층 스포일드 차일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고 있는 ‘남성’들에서 주요 가해자를 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이 현재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계층 갈등을 반영하고, 또 최근 저질러진 현실 범죄들의 양상을 반영한다. 나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계에서 서로를 적대시할 듯한 분위기가 팽배한 지금 한국 사회의 분위기 역시.

하지만 어떤 식의 보상이나 상승 없이 그런 지형을 그대로 ‘반영’하기만 하고 끝내는 것은 못내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영화 스스로 자신을 좁은 시야 안에 제약해버린다는 면에서 말이다. 우리는 <패닉룸>에서 포리스트 휘터커가 연기했던 ‘번햄’ 캐릭터를 기억한다. <도어락>에는 그런 감압밸브가 없다. 이 밀도 높은 스릴러가 남기는 개운치 못한 뒷맛은 그래서다. 물론 고작 이 영화 한편에 그 뒷맛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대단히 불공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도어락>은 오랜만에 그런 것까지 기대하게 했던 스릴러였다.

덧붙여서, 이 영화에서 얻는 작지만 확실한 교훈 두가지. 하나, 디지털이 아날로그보다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둘, 침대 밑 공간은 놀리지 말고 수납공간 등으로 활용하자.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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