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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원이 일본에서 부른 한국말 노래의 의미

팬덤 내외부의 염려가 불식됐다

  • 윤광은
  • 입력 2018.12.07 16:58
  • 수정 2018.12.07 17:06
ⓒhuffpost

 

올여름 음악방송 Mnet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48’을 통해 선발된 걸그룹 아이즈원이 지난 12월 5일 일본 후지 TV가 주최하는 연말 가요제 ‘FNS’에 출연했다. 후지 TV는 일본 공중파 채널이다. ‘FNS 가요제’는 NHK ‘홍백가합전’, TV 아사히 ‘뮤직 스테이션 슈퍼 라이브’, TBS ‘일본 레코드 대상’과 함께 4대 연말 가요제로 꼽힐 만큼 인기와 위상이 크다. 이런 무대에서 한국 데뷔 한 달에, 일본에선 앨범을 내지 않은 그룹이 일본 데뷔 무대를 가졌다. 전 세대 한류 아이돌을 통틀어 일본 연말 가요제에 출연한 이들은 손 꼽힌다. 이번 FNS에는 한류 아이돌로 역사적 입지를 지닌 보아가 아이즈원과 함께 출연해 자리를 빛냈다. 반향은 대단했다.

FNS가 방영된 직후, 아이즈원의 데뷔곡 ‘라비앙로즈’는 일본 라인 뮤직 차트 5위, 케이팝 차트 1위에 올랐다. 일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검색어 순위 3위, 5위, 7위, 10위가 아이즈원에 관한 키워드로 채워졌다 . 글로벌 그룹, 한류 아이돌로서 이보다 센세이션 할 수 없게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선 글로벌 그룹 론칭을 목표로 기획된 프로젝트의 힘이다. ‘프로듀스 48’은 한일 합작 오디션으로 치러졌다. 일본 가요 기획사 ‘AKS’가 비즈니스 파트너로 참여했으며, 일본의 대표적 걸그룹 ‘AKB48’ 멤버들이 연습생으로 참가했다. 경연 과정을 거쳐 최종 멤버 열두 명이 선발됐고, 한국인 연습생이 아홉 명, 일본인 연습생이 세 명이다. 케이팝 아이돌에 일본인 멤버가 합류할 때 현지 시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시너지는 이미 입증된 바 있다. ‘프로듀스 48’은 그 스케일을 글로벌 오디션으로 확장했고, 한일 아이돌이 만나 협동하고 경쟁하는 과정을 석 달에 걸쳐 펼쳤다. ‘프로듀스 48’은 일본에서 화제를 일으켰고, 케이팝을 소비하는 계층에게 새로운 콘텐츠로 제공됐다. 때문에 아이즈원은 데뷔 직후, 별도의 현지 활동 없이도 일본에 직수입된 앨범이 오리콘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하는 등 최단기간에 최대 성과를 거뒀다. 또한 일본 굴지의 기획사를 통해 활동 채널이 마련되며 연말 가요제 같은 큰 무대에서 데뷔한 것 같다.

아이즈원 자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수의 멤버가 지닌 고르고 다양한 비주얼과 캐릭터가 스펙트럼을 이룬다. 첫눈에 시선을 붙잡는 한편 눈길이 머물수록 새로운 경치가 발견되는 흡입력을 자아낸다. 상이한 문화적 이력과 활동 배경을 지닌 한국인 멤버들과 일본인 멤버들의 공존은 그룹 내부에 독특하면서 풍요로운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일본인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와 야부키 나코, 혼다 히토미는 일본 현직 아이돌이 아시아 글로벌 뮤직의 중심, 케이팝 리그에 진출했다는 흥미로움을 일으켰고, 이들은 아이즈원으로 선발된 직후부터 각종 일본 매체와 인터뷰하며 그룹을 알려왔다. 한국인 멤버 장원영과 김민주는 FNS 방영 직후 일본 네티즌들의 화젯거리가 됐고, 센터를 맡은 장원영은 일본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 7위에 올랐다. 한일합작 프로덕션과 매니지먼트의 화단 위에 역량이 풍부한 인적 자원을 지닌 그룹의 잠재력이 개화한 것이다.

그러나 FNS 출연에서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건 아이즈원이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한국 역시 비슷한 상황이지만, 일본 방송에서는 자국에 진출한 해외 가수들이 일본어로 노래 부르는 게 원칙이다. 몇몇 음악 방송에서 케이팝 가수가 한국어 노래를 부른 예외가 있지만, 가사를 번안해 국내 활동 트랙을 다시 녹음하든가, 일본 진출용 트랙을 새로 작업한다. 후지 TV 역시 마찬가지다. 역대 FNS에 출연한 케이팝 가수는 예외 없이 일본어로 공연했다. 아이즈원 출연 소식이 보도됐을 때 ‘프로듀스 48’ 때 부른 일본어 경연곡이나 일본어로 번안한 ‘라비앙 로즈’를 부르지 않겠냐는 관측이 대세였다. 하지만 공연 당일 첫 소절을 떼는 장원영의 입에서 ‘라비앙 로즈’ 한국어 가사가 흘러나왔다. 후지 TV 개국 이래 초유의 사건이다. 이 사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팬덤 내외부의 염려가 불식됐다. ‘프로듀스 48’은 한국 음악방송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한일합작으로 진행된 탓인지 여기서 탄생한 그룹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는 소소한 구설수가 있었고, 인터넷 음지에서는 일본 측 총괄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의 정치성향에 관한 억측이 유포됐다. 그러나 한일 외교가 악화되고 일본 우익세력이 한류 보이콧을 외치는 가운데, 아이즈원의 소속사 오프더레코드와 AKS는 흔들림 없이 협약을 이행해 일본 진출을 성사했고, 국민 각계각층이 시청하는 보수적 무대에서 한국말로 노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 어떤 전례보다 케이팝 그룹의 이미지를 공공연히 각인하며 출발한 것이다. 이는 일각의 구설수에 관한 가장 본질적이고 명료한 대답이다. 또한 한일 기획사 양측이 이 프로젝트에 따른 한국 내부 상황과 정서를 인지하고 있으며 그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고 읽힌다.

나아가 외교 상황의 경색에도 불구하고 케이팝의 일본 진출은 계속될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에 방문하며 한일관계가 악화됐을 때 일본 외무상이 카라의 CD를 버렸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한류도 끊어졌다. 그러나 현재 재개된 한류는 SNS를 매개로 젊은 세대에 착근해 자생적 네트워크로 엮여있다. 연이은 외교적 악재에도 문화교류는 단절되지 않았다. 한일합작으로 탄생한 아이즈원은 이 면면한 교류의 상징으로서, 한국적 정체성을 감추거나 눅이지 않은 채 떳떳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큰 호응을 끌어냈다. 일본 시장에 진출 중이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여타 케이팝 기획사들에게도 좋은 징조이면서 그들이 통과할 문호를 넓혀주는 기폭제다. 또한 일본 기획사와의 합작을 통해 일본에 진출하는 강력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아이즈원의 FNS 무대는 이런 사회 정치적, 문화산업적 배경 속에 기록돼 남겨질만한 사건이다.

케이팝의 세계화가 국위선양의 차원에서 칭송되고 있지만, 만약 공동체에 구체적으로 기여되는 가치가 있다면,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절단과 매개체의 역할일 것 같다. 바다 건너 온 아이돌을 접하고, 또 다른 문화를 알게 되며, 그를 통해 그 나라 언어와 유행, 삶의 양식에 호감을 갖고 이끌린다. 상대를 톺아보는 눈이 돋아나고 상대의 말을 담아 듣는 귀가 열리는 마술이다. 악화되는 외교 상황 속에, 케이팝은 한일 양국의 사회적 단절을 막아주는 방파제로 서있다. 이런 교류가 바탕이 되어 양국 국민은 언젠가 더 깊은 가치 또한 원숙하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인생은 짧으며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그리고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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