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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06일 13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06일 13시 50분 KST

순례 도보 여행은 우리를 바꿀 수도 있다

멀리 카오가 보인다.
huffpost

포도밭에 숨겨진 비밀 정원, 카오

아침 6시에 르 페크를 출발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잿빛 하늘, 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발의 통증은 없지만 습도로 인해 쉽게 지친다. 아뿔싸! 순례자에게 문제가 없는 날은 결코 없다. 인간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순례자 저마다 크고 작은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삶 가운데 지칠 때면 때때로 우리는 현실을 피하고자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으로 보상받진 못한다. 우리를 바꾼다는 건 더욱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알게 해준다. 그런데 순례 도보 여행은 다르다. 우리를 바꿀 수도 있다.

여름비 때문에 입은 우비 속은 사우나와 다를 바 없다. 귀찮지만 판초 우비를 자주 벗고 휴식을 취해야 했다.

순례자와 문명의 랑데부

카오Cahors에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주 특이한 다리가 있고 포도주로도 유명하다. 카오에 가까이 갈수록 포도밭이 많아지는 이유다. 전형적인 화강암으로 지어진 외딴 돌집을 지나 논둑길을 걸었다. 무심코 걷다가 갑자기 나타난 버스 정류장에 깜짝 놀랐다. 영화 〈부시맨〉에서 부시맨이 발견한 코카콜라 병만큼은 아니겠지만 좀 오버하면 그와 비슷했다.

오랜 시간 길을 걸으면 산업 기술 문명에 길들여진 자신과 멀어진다. 순간 과거의 희미한 기억처럼 문명을 마주쳤을 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명제를 새삼 생각한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이 길의 큰 특징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이 나타나면 도시의 변두리란 뜻이다. 소박해 보이는 집들을 주마간산으로 보면서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순례자의 속도에 내 육체가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도시 중심에 다다르자 먼저 다리를 건너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받은 안내서를 들고 계획을 세워 도시를 관광했다. 아주 오래된 도시답게 카오는 오묘한 옛것들로 가득했다. 공룡 시대만큼이나 오래된 것 같은 특이한 집, 물시계, 건축물 등을 보며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애석한 마음도 들었다. 건축물 내부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우리만큼 아름다운데 그대로 방치해둔 것 같았고 신속히 공사가 필요한 부분도 많아 보였다. 프랑스는 유산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안타까운 건 이 도시뿐만이 아니다. 보물도 너무 많다보면 우선순위가 없을 수 없고 이 도시처럼 버려진 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곳도 있는 것이다.

카오의 특이한 물시계.
“기쁨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고 써진 낙서.

역사 깊은 도시 카오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유스 호스텔이 있는 카오는 순례길에서는 제법 큰 도시였다. 르 페크에서 카오까지 줄곧 내리던 가랑비는 아예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발이 묶여 숙소에서 세찬 빗줄기만 바라보았다. 파리는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고 겨울이 우기인데 르 퓌 길은 여름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게오르그 잠피르의 팬플루트 연주 〈여름비〉와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귓전에 들려오는 듯해 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카오는 케르시Quercy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트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섬에 가깝다. 3개의 탑으로 유명한 발랑트레 다리Pont Valentré는 생 테티엔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프랑스 정부가 뽑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선정되었다. 교황 요한 22세의 출생지며 그가 1331년에 세운 유서 깊은 카오 대학이 유명했지만 18세기에 파괴되었다.

BC 4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이곳은 역사가 깊은 만큼 외부 침략도 많았다. 사라센, 잉글랜드, 헝가리, 바이킹의 침략이 있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비밀의 정원’으로 알려진 카오는 검은색 병에 검은색 상표가 붙은 검은 포도주, 검은 버섯 트뤼프, 푸아그라 같은 것들이 미각을 자극한다. 친환경 재래시장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카오에는 다리가 많은데 순례길에서도 다리를 건너서 도시로 들어가며 다른 다리를 통해 도시를 빠져나간다. 예로부터 순례자를 안내했던 순례자 사무소가 다리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갔을 때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지만 창을 통해 내부
를 볼 수 있었다.

숙소로 정한 곳은 유스 호스텔인데 옛 대학생 기숙사를 개조한 곳이다. 그런데 그 젊은 분위기가 바로 문제였다. 밤새 젊음을 불태우는 이들이 볼륨을 높인 음악 소리가 끊이질 않아 클럽에서 잠을 청하는 꼴이 되어 귀청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유스 호스텔 입구에서는 한 동양인과 마주쳤다. 카오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입양아였다. 대학생인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난다면서 신기해했다.  그는 한국을 알고 싶어 했다. 그에게 한국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 잠깐 쉰다는 게 그만 소음 때문에 깨어났을 때는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다행히 다른 순례자가 그와 저녁 식사를 했다. 청춘들이 젊음을 소비하는 소리에 나의 밤은 지옥이었지만 습기를 말려버릴 만한 쨍한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 프랑스 도보 여행 에세이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꼼지락)’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