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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06일 09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2월 06일 09시 58분 KST

FA, 쩐의 전쟁

두산베어스 포수 양의지 선수
huffpost

“000는 얼마나 받는 거야?”

“모르지. 그걸 어떻게 아냐.”

한국시리즈까지 끝나면 남편과 내가 으레 나누는 대화다. 자유계약선수(FA)가 닷새 후 공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몸값은 소위 ‘며느리도 모른다’. 2010년까지만 해도 얼추 계산이 섰는데 2011년 이후 거침없이 총액이 오르면서 짐작 가능한 수준을 넘었다. 몇몇 선수는 총액 기준 30억원 안팎이 적정선인 듯한데 덜컥 50억원 계약 발표가 되기도 했다.

FA 몸값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때는 2011년 말이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는 자금난 타개를 위해 현금트레이드로 엘지에 보냈던 이택근을 재영입하면서 50억원의 거액을 이택근에게 안겨줬다. 야구계 안팎에 놀라움을 안겨주는 계약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FA 최대어는 60억원, A급 외야수 몸값은 30억~40억원에 형성돼 있었으나 이택근을 계기로 50억원으로 상향조정됐다. FA 협상 테이블에서 선수들이 자주 하는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말은 “○○○보다 많이 달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FA 인플레이션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기아가 통산 타율 0.279의 김주찬을 영입하며 금액(50억원)을 맞춰줬고, 2013년 이종욱(50억원·NC), 올해 김강민(56억원·SK), 박용택(50억원·LG)으로 이어졌다.

투수 쪽 거품은 더욱 심해졌다. 타고투저와 외국인 투수 득세 현상에서 보듯이 국내 리그에서는 안정감을 주는 괜찮은 토종 투수가 그리 많지 않다. 장원준은 20대 좌완 선발이라는 희귀성 탓에 롯데, 두산 등이 경쟁하면서 몸값이 84억원까지 치솟았다. 장원준과 같은 시기에 FA시장에 나온 우완선발 윤성환은 80억원, 구원투수 안지만은 65억원을 받았다.

구단들이 앞 다퉈 FA 선수 영입에 거액의 돈을 쏟아 붓고 있으나 실제 효과는 투자만큼 나오지 않는다. 2005~2006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은 외부 FA 선수 영입과 거의 무관했다. 2007~2008년, 2010년 우승한 SK나 2011~201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삼성은 당해 전년도에 외부 FA 계약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2009년 기아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중상위권 성적을 올려온 두산도 그렇다. 장원준 영입 전까지 두산은 2014년까지 외부 FA(홍성흔, 이혜천)를 두 명 영입했을 뿐이다. 이들은 원래 두산에서 데뷔한 선수들이었다. 그런데도 두산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5시즌 동안 5차례만 제외하고 10차례 가을야구를 했다.

프로야구단은 FA 몸값을 감당할 만큼 재정적 기반이 있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야구단 연간 운영비(400억원~500억원)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B구단을 예로 들면 운영비 중 100억원은 관중 수입, 100억원은 중계권료를 비롯해 구장 및 유니폼 광고 수입, 나머지 150억~170억원은 광고료 명목으로 모그룹의 지원을 받는다. FA선수 영입 등 목돈이 들어갈 상황이 되면 모그룹에 손을 벌려야 한다.

FA 인플레이션은 내부 구단 사정과도 맞닿아 있다. 2013년 롯데가 강민호에게 75억원이라는 거액을 쥐어준 이유는 과거 이대호, 홍성흔, 김주찬을 차례대로 놓치면서 강민호만은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강민호마저 계약에 실패할 경우 롯데는 엄청난 여론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었다. 2014년 말 86억원의 잭팟을 터뜨린 최정(SK)도 마찬가지다. SK는 최정 이전에 이진영, 정대현, 이호준, 정근우 등 팀 주축 선수를 놓쳤다. 박용택 또한 LG팬들이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거세게 요구했다. 야구단은 모그룹 이미지와 맞물려있어 팬들의 요구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FA 선수를 잡지 않으면 ‘투자에 인색한 구단’, ‘가난한 구단’이라고 낙인찍히는 것도 시장의 과열을 부추긴다. 과열 경쟁에 뛰어들게끔 여론몰이가 생기고, 모그룹의 ‘자존심’상 구단은 보여주기 식이라도 FA 영입이 불가피하다. ‘가난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모기업이 성적보다 더 중시하는 것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룹 이미지 제고를 위해 뜬금없이 돈보따리를 푼 사례는 여러차례 있었다. FA선수 영입에 ‘회장님’의 의중이 들어가기도 한다.

3~4년 짧은 임기의 야구단 경영진도 한몫 거든다. 장기적 판단 아래 구단을 운영하기보다는 당장 내년도 성적에 연연하면서 선수 투자가 실패했을 때는 후임 경영진에 책임을 미룬다. “FA 몸값 폭등은 구단의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뒤늦게 KBO와 10개 구단은 ‘FA 총액 상한제(80억원)’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선수협회가 수용할 리 만무하다. 총액 상한제와 더불어 FA 취득연수(대졸 8년, 고졸 9년)를 1년씩 줄이는 것도 함께 입길에 오르고 있다. 구단과 선수협희 간의 이견은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FA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면 한국 사회와 얼추 닮았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점점 극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80억을 넘어 100억 이상의 FA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1~2억원 계약도 힘들어서 반강제적인 은퇴 상황에 내몰린다. 야구 인생 한 번 갖게 될 ‘권리’의 사용에 있어서도 차별화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꿈의 무대지만 현실의 잔혹성을 보는 것도 같아 씁쓸해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프로야구 구단은 모기업에 종속(히어로즈는 제외)된 만년 적자구조다. 최근에는 타고투저의 기저 속에 야수들이 주루, 수비 등 기본기는 무시한 채 타격에만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FA계약을 할 때 타격 지표가 더 많이 고려되기 때문이다. 리그 질이 하락하는데도 선수 몸값은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올해는 15명 선수가 FA를 신청했다. 최정(6년 106억원), 이재원(4년 69억원), 모창민(4년 20억원)에 계약을 마쳤다. 최정, 이재원은 나름 프랜차이즈 대우를 받으며 목돈을 쥐게 됐다. 나름 흡족한 계약을 이끌어내며 따뜻한 겨울이 된 선수들이 있는 반면 협상 테이블에서 실망감만 안고 돌아서는 FA 선수들도 적지 않다. 나이 든 노장의 경우는 더욱 시린 겨울이다. 여차하면 보상선수와 보상금이 족쇄가 되어 미아선수가 발생할 분위기다.

‘야구’라는 동화는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FA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이익이 맞물리면서 해피엔딩은 극히 일부 주인공에게만 국한된다. 문득 궁금해진다. 모두가 해피엔딩인 제도는 진짜 없는 것일까.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