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07일 15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 시간 전

트럼프 백악관의 대혼돈을 만든 기자, 밥 우드워드

그는 44년 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매우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늘 성실하고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간부들에게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그에 못 미쳤다. 늘 뭔가 음울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류 언론을 경멸했으며 물밑에서 적들을 감시하고 공격하려는 시도를 곧잘 했다. 그리고 너무도 잘 알려진 바이지만 19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이 모든 것이 탄로나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하는 대통령이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백악관과 닉슨 재선위원회의 주요 당직자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발각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맡았던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독립적으로 발생한 단순 도청사건이 아니라 권력을 잡으려는 닉슨 정부의 거대한 음모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보도한다.

불법도청뿐 아니라 거짓 정보 누설, 유세일정 교란시키기, 선거운동 기밀자료의 탈취, 다수의 민주당 선거운동원 사생활 조사 등. 워싱턴포스트와 밥 우드워드는 백악관의 압력에도 진실을 집요하게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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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 대통령.

#‘정치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워터게이트 사건

워싱턴 포스트 9개월 차 신입이었던 밥 우드워드는 자신에게 배당되었던 이 사건이 지금까지 취재해 온 비위생적인 음식점이나 경찰의 시시한 부정행위에 대한 폭로 기사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상대 민주당 본부를 불법적으로 도청하고 이를 은폐하려는 백악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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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빌딩.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빌딩에 불법 침입한 현행범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석연찮음을 느꼈다. 체포된 현행범 중 한 명이었던 제임스 매코드는 전직 CIA 요원이자 닉슨 재선 운동본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압수된 수첩에는 닉슨 대통령의 자문관이었던 하워드 헌트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밥 우드워드와 그의 동료 칼 번스타인은 이러한 단서들을 토대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닉슨 재선 운동본부와 연관되어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백악관은 ‘더 이상 논평할 가치가 없는 3류 좀도둑 사건’으로 정리했다.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닉슨이 재선에서 초압승을 거두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는 듯했다. 하지만 1973년 1월 워터게이트 사건의 일곱 명의 피고인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를 입증하는 언론 보도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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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불법침입범 제임스 매코드.

그리고 그해 7월 백악관의 결백을 뒤엎는 증언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대통령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닉슨이 직접 개입한 도청 장치가 있으며 사건의 은폐 공작에 관여하는 내용도 녹음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상원 위원회와 특별검사는 녹음 테이프의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닉슨은 이를 거절하고 특별검사를 해임하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 am not a crook)”라고 강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 8월 9일 닉슨은 탄핵 압박에 몰리자 자진 사임했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이 워터게이트 사건 폭로의 공로로 일약 전 미국인이 아는 전설적인 기자가 되었다. 이 둘은 무려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냈다. 그들이 만들어낸 심층 취재와 보도는 매일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속보 경쟁만 하고 있던 미국 신문, 방송에 일대 경종을 울리면서 탐사보도 저널리즘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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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왼쪽)와 칼 번스타인(오른쪽).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당신이 결코 몰랐을 사실

- 밥 우드워드는 혹독한 취재과정에 자신이 있었다.

밥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잊혀진 교훈을 소환하며 이렇게 말했다. “끈질긴 투지와 발로 뛰는 탐사 취재로 돌아가자”고 “온라인에서 답을 찾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고, 전화하지 말고 직접 찾아가 문을 두드리라”고 얘기했다. 우드워드는 닉슨 이후 취임한 모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심층 취재 내용을 책으로 냈는데 책을 내기까지 수백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후 사건을 재구성하는 식이었다. 이 끈질긴 취재 과정을 통해 지배 권력의 부패상을 파헤쳐 진실을 밝혔다. 이 진실을 파헤친 보도는 당대인으로 하여금 가장 높은 수준의 탐사보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줬다.

 

-진정한 언론은 게임이 지고 있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워싱턴포스트가 단독으로 보도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데스크였던 벤자민 브랜들리 편집국장은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를 탐사하는 순간마다 신문에 실음으로써 정부의 반격을 격파해 나갔다. 브래들리는 행여 있을지 모르는 사실관계의 오류를 편집해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도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가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편집국장의 든든한 지지로 젊은 두 기자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단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일개 지방 언론사에 불과했던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주류 언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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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전 편집국장 벤자민 브래들리(왼쪽)와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오른쪽).
워싱턴 포스트의 소신을 잘 보여주는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더 포스트’는 ‘워터게이트’ 폭로 이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1971년 ‘펜타곤페이터’ 특종 보도 사건을 다룬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한국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 스캔들은 워터게이트보다 더 크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 한 대를 발견함으로써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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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차 기자 밥 우드워드, 트럼프를 말하다

지금의 백악관은 언론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다.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지 무려 44년이 지났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CNN 기자의 질문을 중지키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닉슨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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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과 언론사 간의 기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밥 우드워드는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Fear : Trump in the White House)’ 책을 공개했다. 트럼프 정부 내부의 외교 및 국내 정책 결정 과정을 파헤친 내용으로 이미 올해 9월 워싱턴포스트와 CNN이 책의 일부를 공개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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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는 여전히 현장에 있다. 44년 전, 희대의 특종 보도 이후 한 번도 떠난 적도 없었다. 온라인 검색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고, 데스크에 앉아서 누군가 물어다 주는 소식만으로는 절대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믿음에서다. 우드워드는 책을 작성하기 위해 사안에 직접 관계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을 경험한 행정부 관리 등을 수백 시간에 걸친 ‘심층 백그라운드’ 인터뷰했다. 거기에 각종 회의자료, 개인 일기장, 정부 문서까지 그는 ‘트럼프’에 관련된 자료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집요하게 찾아내서 근거로 활용했다고 알려졌다.(‘[총정리] 전설의 ‘워터게이트 기자‘가 폭로한 트럼프 백악관의 대혼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그의 나이 75세라는 것이 무색하게 그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다. ”우드워드는 워싱턴의 정부기관과 같은 존재다. 다른 정부기구와 마찬가지로 늘 거기 있으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1인 기구’인 것이다.”는 평을 받을 정도. 이 책에는 오늘이 지나면 소용없는 인스턴트식 저널리즘이 없다. 밥 우드워드 특유의 단호함과 진실을 향한 투지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