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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집중화와 서열사회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에서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11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에서 경찰·소방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huffpost

최근 18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고시원 화재사건을 통해 드러났듯이, 고시원은 도저히 집이라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주거 조건이 극도로 열악하다. 고시원과 쪽방, 그리고 만화방이나 찜질방 등 다중이용업소와 같은 ‘집 아닌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많게는 228만가구로 추정하지만, 그 수가 많건 적건 이는 우리 사회가 외면해선 안 될 인권 문제로 보는 게 옳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라는 글에서 타워팰리스의 3.3㎡당 월세는 11만6000원이고 고시원은 13만6000원이라고 했다. 그는 고시원의 ‘존재 이유이자 경쟁력의 원천’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자리, 정보, 문화, 교류에서 소외되지 않고 짧은 출퇴근 시간이 보장된다면 개인공간이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있음은 문제가 아니다. 좋은 입지는 ‘강남’만큼 희소하고 저성장 및 1, 2인 가구 증가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에 고시원은 당분간 시장지배자일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일자리 접근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집 아닌 집’의 수도권 집중도에 대한 정확한 통계 역시 없지만, 고시원의 80%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수도권의 경제 집중도와 비슷하다는 게 우연일까? 수도권의 경제 집중을 해소하지 않고 이런 ‘신주거난민’의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수도권의 경제 집중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건 대학 집중이다. 대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대학이 아니다. 한국인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서열이 가장 철저하게 관철되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살벌한 입학전쟁이 벌어지는 서열 높은 대학의 8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다. 서울의 서열을 그대로 물려받은 덕분이다. 서울은 이 대학들을 빨대로 이용하면서 지방의 학생과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서울 학생의 35%가량을 점하는 지방 학생들이 주거 문제로 겪어야 하는 고통은 서열에 대한 대가치곤 너무 가혹하다.

경제와 대학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미디어 등 전 분야에 걸쳐 지방은 한국의 ‘내부 식민지’다. ‘식민지’라는 말이 듣기에 끔찍하다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는 지역의 문제라기보다는 계급의 문제다. 지방 여론을 지배하는 토호 계급은 서울에 집 하나쯤은 갖고 있기에 내부 식민지 체제에 열 올릴 필요가 없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뛰면 원정 투기나 투자에 나서고, 자식들은 서울로 보내 살게 하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정부가 추진한 대학 정원 감축의 75%가 지방대에서 이뤄졌지만, 지방에서 큰 반발이 나오지 않은 건 “내 자식 서울로 보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부 식민지 체제로 인해 죽어나는 건 수도권과 지방의 못사는 사람들일 뿐, 이걸 지역의 문제로 보면 답이 나오질 않는다.

기회균등 사회라는 당위엔 만인이 동의하는 척하지만, 한국은 기회균등을 억압하는 사회다. 어디에 사느냐 하는 것만으로 부와 권력과 사회문화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결정되는 사회를 당연시하면서 외치는 기회균등은 기만이다. ‘서열 사회’를 내장하고 있는 서울 초집중화는 상대를 눌러야만 내가 이기는 ‘제로섬 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승자 독식 사회의 온상으로 ‘전쟁 같은 삶’을 강요한다. 그런 삶에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출산마저 포기해 ‘악몽’이라던 출산율 1.05명은 올해에 0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건 이런 ‘전쟁 같은 삶’과 서울 초집중화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는 착각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수도권으로의 중앙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개탄했는데, 이 비극엔 그런 착각도 한몫했다. 이제 와서 지방분권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불균형 발전의 책임을 회피하는 ‘먹튀’의 가능성이 높다. 마강래 교수의 최근 저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를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서울 초집중화 사회에서 학교는 서열 결정의 수단일 뿐 사회적 가치의 함양과는 무관하다. 대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 초등학생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서열을 기준으로 낮은 서열에 속하는 사람을 차별하도록 배우며, 그 배움을 능동적으로 실천한다. 이런 상황에선 0명대의 출산율은 물론 ‘정치의 사유화’에서부터 ‘갑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서울 초집중화의 슬로건은 “억울하면 출세하라”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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