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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지워버린 증거 - 포항 흥해 시신 사건

조수진의 미제사건 노트

ⓒSakkarin Kamutsri / EyeEm via Getty Images
ⓒhuffpost

※ 2008년 6월 발생한 포항 흥해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은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수사전담팀(054-824-2655)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2008년 7월8일 오후 2시20분 무렵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금장리. 7월이었지만 낮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이었다. 70대 노부부가 왕복 2차선 도로 옆의 갈대밭에 들어갔다. 근처에서 살구를 따기 위해서였다. 마을과 꽤 떨어져 있어 낮에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갈대는 허리춤이 넘도록 자라 있었다. 그런데 한참 갈대를 헤치며 걷던 노부부가 뭔가를 발견했다. 악취가 나는 거뭇하고 길쭉한 덩어리였다. 긴가민가하며 그 물체를 살피던 노부부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다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노부부가 발견한 것이 사람의 오른쪽 다리인 걸 확인하고 즉시 수색에 나섰다. 그리고 1m 떨어진 곳에서 포대에 담긴 왼쪽 다리를 발견했고, 얼마 뒤엔 다시 포대에 담긴 두 팔을 각각 발견했다. 발견된 양쪽 팔다리의 상태는 참혹했다. 처음엔 포대와 비닐봉지 등에 넣어 유기한 듯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들짐승에 의해 포대가 뜯기고 시신이 훼손돼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오른손 손가락 끝은 모두 예리한 물체로 잘린 상태였다. 지문을 없애 피해자의 신원을 숨기기 위한 의도로 보였다. 왼쪽 손가락은 훼손 없이 온전한 상태였지만 이미 부패가 심해 지문을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발견된 것은 양쪽 팔과 다리뿐. 머리와 몸은 아무리 근처를 수색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공개 수사였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경찰은 시신의 나머지 부분을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2주 뒤인 7월22일 오후 2시30분쯤 양쪽 다리가 발견된 곳에서 1.2㎞가량 떨어진 음료 창고 근처에서 머리와 몸을 발견했다. 피해자는 키 163㎝, 몸무게 47㎏가량에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었다. 시신의 상태로 보아 사망한 지 1개월 이상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왼쪽 손가락에서 지문 일부를 채취하고, 대퇴골(넓적다리뼈)의 특징으로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는 팔다리가 발견된 곳에서 30㎞가량 떨어진 포항시 동해면에 살던 주부 박주연(당시 49살·가명)씨였다. 부검 결과 사인은 설골(목뿔뼈) 골절로 추정됐다. 설골은 턱 아래쪽에서 목을 감싸는 뼈로 손이나 끈 등으로 목을 졸랐을 때 부러지는 부분이다. 범인은 목을 졸라 살해한 뒤 톱을 이용해 시신을 다섯 부분으로 절단하고 머리와 몸, 팔과 다리를 각각 다른 장소에 유기한 것이었다.

주연씨는 당시 포항시 동해면에서 남편(당시 42살)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남편은 주연씨를 2008년 6월12일 새벽 4시경 마지막으로 본 뒤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6월11일 아내와 함께 낮술을 마신 뒤 자신은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경 눈을 뜨자 아내가 짐을 챙기고 있었고 12일 아침에 일어나자 이미 집을 나간 뒤였다는 것.

그런데 경찰이 조사한 실종 직전 주연씨의 행적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주연씨는 6월11일 밤 9시30분에서 10시 사이 택시를 타고 한 노래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시 주연씨를 태웠던 택시 기사에 의하면 돈이 없으니 좀 기다려달라며 노래방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주연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기사가 직접 노래방으로 들어가 찾아도 주연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 뒤 주연씨는 6월12일 새벽 2시30분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는 게 힘들어 술 한잔하러 간다’고 했다는 게 경찰이 밝혀낸 주연씨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노래방에 도착했을 때는 한 푼도 없었다는 주연씨에게 몇 시간 뒤인 새벽에는 술을 마시러 갈 돈이 생겼던 걸까. 혹은 술값을 내줄 일행이 생겼던 걸까. 6월12일 새벽 사라져 7월8일 오후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될 때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주연씨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은 주연씨가 마지막으로 친구와 통화한 6월12일 새벽 2시30분에서 남편이 아내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12일 오전 사이를 사망 시간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아무리 탐문과 수소문을 거듭해도 목격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시신을 포장했던 비닐과 포대 그리고 테이프에서도 지문과 유전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주연씨가 실종된 6월12일부터 발견된 7월8일 사이 포항에는 많은 비가 자주 내렸다. 특히 실종 직후 2주 동안은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혹여 있었을지 모를 증거도 씻겨 내려갔을 확률이 높았다.

경찰은 주연씨 주변 인물 300여명을 폭넓게 조사하는 동시에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사체를 유기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고 이동 경로의 차량 수만 대를 분석하는 한편 CCTV와 렌터카 업체들도 집중 탐문했다. 또 범행에 사용된 포대 사진 등을 담은 전단 수천장을 만들어 배포하고 주연씨 실종 시기를 전후로 포대, 청색 테이프, 톱을 판매한 상점들도 조사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제보나 단서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이 밝혀낸 사망 전 주연씨의 모습엔 평범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주연씨는 자주 술에 취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로 막걸리를 비롯한 술을 많이 사서 마셨던 주연씨는 때로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처음 주연씨의 남편을 주목했다. 첫째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주변의 증언이 있었고, 둘째 주연씨가 실종되고 12일이나 지난 24일에야 실종 신고를 했다는 점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셋째로는 주연씨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어서였다. 누군가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여러 곳에 나눠 버리는 이유는 범인이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 가장 먼저 주목받을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사망 추정 시간대 남편의 알리바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남편을 눈여겨보게 했다.

경찰의 조사가 거듭될수록 미심쩍은 부분이 점점 드러났다. 남편은 주연씨가 실종된 직후 친구에게 아내가 고향 제주도에 간 뒤 실종됐으니 비행기 탑승 명단이나 여객선 승선 명부 등에서 아내의 출입 기록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가 가출을 했으니 어서 포항으로 와달라는 상반된 얘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주연씨 실종 직후 남편의 행적에서 이상한 점을 더 포착했다. 주연씨가 실종된 뒤 욕실 세면대를 교체했고, 그 기간 동안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수돗물을 썼던 것이다. 주연씨와 둘이 살던 기간에 썼던 양은 월평균 15t가량. 남편이 한 달 동안 혼자서 쓴 양은 무려 9t에 달했다. 남편 혼자서 이 많은 물을 어디에 썼던 것일까?

게다가 경찰은 남편의 친구들로부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증언도 듣게 된다. 주연씨가 실종된 뒤 남편은 한 친구에게 해병대 장병들이 외박 나왔을 때 주로 이용하는 숙소에 온돌방 하나를 예약해달라고 했다는 것. 아내도 실종돼서 없는데 그 방이 왜 필요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남편은 별다른 이유를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는 남편이 자신에게 렌터카를 빌려야 하니 돈을 빌려 달라 했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남편이 이미 차를 가지고 있는 걸 알고 있던 친구가 렌터카는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물었는데, 다른 지방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납득하기 힘든 답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살던 아파트의 욕실 정밀 감식에서도 별다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교체한 세면대는 이미 수리 업자에 의해 폐기물로 처분된 뒤였다. 혼자서 한 달 동안 9t의 물을 쓴 것도 더워서 샤워를 자주 했다는 말에 더는 추적할 근거를 잃었다. 더 이상의 증거도 제보도 유력 용의자도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여러 프로파일러를 만났다. 그들 모두의 한결같은 지적은 이 사건이 낯선 소시오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에 의해 저질러진 게 아닐 거라는 점이었다. 시신의 절단면 곳곳에서 주저한 흔적이 보이는 점과 토막 살해 사건 대부분은 피해자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이 근거였다.

2008년 6월12일 새벽 이후, 주연씨를 살해한 이는 누구일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그녀)는 어째서 주연씨를 살해했을까. 가장 친밀한 사람인 주연씨의 시신을 훼손하면서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 이 사건은 경북지방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이 맡고 있다. 취재를 위해 경북청을 찾았을 때 경찰은 이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수사하고 있었다. 모두 8권 24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 기록과 증거물품들을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살피며 재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범인이 필사적으로 인멸한 증거들 사이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아 고군분투 중인 경찰. 거기에 더 필요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누군가의 제보일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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