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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국에서 유독 불타오르나

ⓒhuffpost

한 영화가 있다. 제작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일정이 몇 년이나 밀렸고,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던 배우는 중도 하차해버렸다. 감독조차 촬영 중에 떠났다. ‘망작’이 될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그 영화가 지금 한국에서 흥행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다. 평단의 반응은 썩 좋지만은 않지만,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해 이미 음악가 전기 영화로는 역대 최고 수입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 온도는 한국이 유독 뜨겁다. 싱얼롱(이라고 쓰고 떼창이라고 읽는다) 상영이 열릴 정도다. 1992년에 열렸던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을 90년대 내내 VHS 테이프로 수없이 돌려봤던 나 같은 사람이야 당연히 보러 가겠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내 어머니도 보셨다.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가 성공을 거둔 예가 드물었던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노래의 힘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어 퀸을 잘 몰랐던 관객도, 퀸을 자연스럽게 접했기엔 낮은 연령대인 10~20대 관객도(‘보헤미안 랩소디’는 12세 이상 관람가이며,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한 것은 27년 전의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아 저 노래~” 하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누구의 노래인지도 몰랐던 친숙한 곡들이 쉴 새 없이 나오니 즐거울 수밖에 없다. 베스트 앨범 한 장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밴드가 퀸이다. 멤버 전원이 히트곡을 써낸 특이한 밴드라 곡마다 다양한 색깔을 지녔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입맛에 맞는 곡을 몇 곡쯤은 찾아낼 수 있는 밴드이기도 하다.

재현의 힘

‘맘마 미아!’가 아바의 여러 히트곡을 코믹한 뮤지컬이라는 형식으로 담았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실제 음원을 깔고 비주얼을 재현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거의 통째로 보여주다시피 한다. 배우들의 외모와 무대 위 액션이 퀸 멤버들과 싱크로율이 워낙 높다 보니 실제로 퀸 공연을 보는 기분이다. 프레디 머큐리 외의 퀸 멤버들은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가수 애덤 램버트를 리드 싱어로 기용해 2014년에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지만, 퀸 내한 공연과 ‘보헤미안 랩소디’를 다 본 나의 입장에선 사실 어느 쪽이 더 퀸 콘서트 같았는지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결국,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퀸 콘서트 보러가기’에 가장 가까운 경험은 ‘보헤미안 랩소디 보러가기’인 셈.

스토리의 힘

인도에서도 소수인 파시(Parsi)였고 조로아스터교 신자였으며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영국의 양성애자 뮤지션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에 AIDS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간단히 소개만 하려 해도 이렇게 길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나오지만, 사실 저 긴 소개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 단어는 ‘뮤지션’이고, 온갖 편견을 극복하고 음악에 대한 동경을 품은 공항 짐꾼에서 월드 스타까지 가는 머큐리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물론 100% 실화는 아니고 상당 부분 각색되었음은 받아들여야겠다.

신청곡을 틀어주는 이른바 ‘LP 바’들의 DJ는 요새 밀려드는 퀸 신청곡을 트느라 몸살이 날 지경이다. MBC는 12월 2일 밤에 라이브 에이드를 33년 만에 재방송하기로 결정했다. 물 들어오니 노 젓는 이들이 여기저기 많다. 만약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면, 20세기 폭스 테마 팡파레를 브라이언 메이가 연주했다는 것만 알아두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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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 #라이브 에이드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