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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시선]

ⓒDragonImages via Getty Images
ⓒhuffpost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지만, 여고시절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맨 뒷쪽에 위치한 반신 거울 앞이 북적였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친구, 눈썹 정리를 하는 친구, 립글로즈를 바르는 친구. 지금 돌이켜보면 여자들끼리 모여 있는 교실에서 누가 자기를 그렇게 본다고 그 짧은 10분 동안 꽃단장을 멈추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의 화장을 고쳐주며, 그리고 서로에게 꼭 ”예쁘네”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그렇게 그 짧은 10분을 보냈다.

지금은 사무실 화장실에서 비슷한 장면을 접한다. 점심 시간이 끝날 때 쯤이면 화장품이 가득 든 파우치를 들은 여자들이 하나둘 화장실로 모여든다. 흐트러진 화장을 고치고, 옷 매무새를 다듬고 그렇게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자신의 외모를 다듬고 돌아간다. 재미있는 건 화장실에 들어가는 남자들의 손은 가뿐하다는 것이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본 건 아니지만, 그들이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말 딱 용변을 위한 시간만큼만 걸린다.

“오늘날 수많은 여성이 여러 영역에서 능력을 존중받기 위해 전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거울 앞에서 무너진다. 가끔은 외모를 완전히 바꿀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즉각 내려놓을 생각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프롤로그 중에서)”

외모 강박. 여성이 거울에 비친 모습에 너무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는 것을 의미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이자 지난 20여 년간 대학에서 여성 심리학과 젠더 심리학 등의 강의를 해온 여성 심리학자 러네이 엥겔른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외모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혹시 지금 ‘나는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다음 문단을 읽어보자.

지금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중요한 이벤트에 참석하는 대신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적 있는가? 다른 여자의 외모와 나를 비교하느라 회의에 집중하지 못한 적은? 미처 내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맞닥뜨려 빨리 그 순간을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만약 이 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당신은 이미 외모 강박 속에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외모 강박. 외모 강박은 아프다. 적게는 다운된 기분과 울적함을 겪지만 심해지면 우울증과 분노, 섭식장애 같은 심각한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앗아간다. 더 예뻐보이기 위해 거울 앞에 서성이는 시간, 그것을 위해 화장품, 옷, 성형수술 등에 들어가는 돈까지 생각한다면 그로 인한 손실은 크다.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 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외모지상주의가 수많은 여성들의 외모 강박을 낳은 원인이겠지만, 젠더 논쟁을 떠나 외모 강박은 결국 남들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의 감정, 필요, 욕망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반응을 감시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움과 행복함에 집착하는 우리들. 그 연기를 그만두어야 비로소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고, 동시에 외모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 예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외모를 가꾸는 것도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 다만, 외모에 신경 쓰느라 다른 중요한 목표들이 멀어지거나, 나의 감정, 에너지가 방해받는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의 방점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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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젠더 #외모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