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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7일 14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7일 15시 09분 KST

손뽕은 국뽕인가?

일주일에 손뽕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David Ramos via Getty Images
huffpost

자라면서 국뽕의 기운을 양껏 주입받았다. 집에서는 김치가 세계 최고의 발효음식이라고, 학교에선 국사 선생님이 발해를 꿈꾸며 만주 땅을 마음에 품으라고, 교회에서는 한민족이 유대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인종이라 가르치던 시대를 살았다. 그때는 뭐 이런 시각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잘 접할 수 없었다.

이런 교육 덕에 나는 오히려 ‘국뽕 증오자’로 자랐다. 지금도 증오해야 할 국뽕을 목격하면 소스라치게 싫어한다. 뉴욕타임스에 불고기와 비빔밥 광고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미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 기자가 ‘두유노 싸이’를 질문으로 던졌던 건 정말 악몽이다.

스포츠는 특히 국가주의가 단단하게 지배하는 영역이라 국뽕이 출현하기 좋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축구다. 알쓸신잡 시즌 3에선 국가가 개인에게 귀속감을 주입하는 방식 중 하나가 축구라는 의견이 등장한다.

소설가 김영하가 ”(예전에는 국민이 국가에 속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국민 문학이 있었지만, 이제는 필요가 없어졌다”라며 ”그걸 대신 축구가 한다. 축구 경기를 해주면 사람들이 자기가 독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대~한민국’하면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취지로 말한다.

국뽕 증오자에게 축구는 위험하다. 오래전인 2002년 여자친구의 강요에 못 이겨 광화문에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폴란드전을 보러 간 일이 있다. 쿨병 돋을 때라 ”무슨 축구를 보러 광화문까지 도시락을 싸 들고 가냐”며 툴툴거렸지만, 한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며 모르는 아저씨와 격하게 껴안고 있었다.

얼마 전 손흥민이 잉글랜드 50m를 질주하며 첼시의 수비수 둘을 따돌리고 원더골을 넣었을 때도 그랬다. 그냥 수비수를 제친 것도 아니다. 세리에 A의 패스 마스터 조르지뉴와 명품 센터백으로 불리는 다비드 루이스다. 국뽕에 제대로 취하면 정말 술에 취한 듯 국뽕이 차오르고 감정이 격해진다. 이성이 마비되며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첼시의 선수에게 욕을 하게 된다. 나 원래 아자르 팬인데. 심지어 국가 대항전도 아니고 유럽 축구리그를 보는데도 국뽕은 이렇게 치명적이다.

손흥민의 골이 터진 후 허프포스트 뉴스룸 회의에서는 국뽕이 주제였다. 후배가 ”손흥민 시즌 1호 골에 쏟아진 해외 찬사”를 기사로 쓴다기에 내가 ”유럽 리그에서 그 정도 골은 정말 매주 한 5개씩은 나온다. 찬사야 쏟아졌지만 그런 찬사는 매주 쏟아지는 것”이라고 쿨병을 참지 못하고 시비를 걸었다. 나와 비슷하게 국뽕을 경계하는 한 에디터가 ”그 정도면 B+ 급”이라고 거들어줬다. 그는 오랜 아스널 팬이고 이번 주에 아스널은 손흥민의 토트넘과 붙는다. 

축구 경기를 볼 때면 ‘나의 이성은 세계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지만, 감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뽕의 지배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그런데 올림픽 컬링에서 은메달을 딴 팀킴, 호주오픈 4강에 올랐던 정현, 토트넘의 판타스틱 4로 활약하는 손흥민에게 열광하는 마음은 환단고기를 믿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마약에도 중독성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있듯이 어쩌면 스포츠 국뽕은 국뽕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게 아닐까? 일주일에 손뽕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