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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구! 인종차별에 맞서는 정부

ⓒRalf Geithe via Getty Images
ⓒhuffpost

″국제연합헌장이 천명한 인류의 기본권리보장 및 인류평등원칙에 입각하여 무국적자의 권익과 자유를 보장하며 기(其)지위를 향상시킴이 세계질서유지를 위하여 필연적으로 요청됨.”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1962년 당시 내각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제출한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 비준동의안’의 내용이다. 그럴듯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협약 가입의 목적은 “아국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즉, ‘일국일민주의’를 표방해온 한국에서 무국적자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고 협약 가입은 쿠데타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행보에 불과했다.

한국은 유엔 가입 훨씬 전인 1978년 유엔의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가입했다. 비준동의안은 협약의 취지와 무관하게 “북괴에 앞서 가입함으로써 … 제3세계 제국에 대한 우리의 외교강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부로서는 ‘단일민족국가’에서 인종차별이 크게 문제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는 단지 난민 500명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히고, 외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에 공격적 댓글이 수백, 수천 개가 붙는 인종차별 국가에 살고 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 철폐 위원회는 한국에서 쓰이는 ‘순혈’ ‘혼혈’ 등의 용어가 야기할 수 있는 인종우월주의가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지적했다. 2012년에도 외국인을 향한 인종주의적 혐오발언이 대중매체와 인터넷에서 더욱 확산되고 노골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했다.

1990년대 산업연수제, 국제결혼 등으로 장기체류 이주민들이 국내로 대거 유입되기 전까지 체류 외국인의 존재는 미미했다. 몇몇 특별법이나 특별 규정을 제외하고 국내법 전반은 외국인을 상정하지 않은 채 제정·시행됐다. 그러다 보니 현시점에서 어떤 법이 국민에게만 적용되고 어떤 법이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는지를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더하여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제정된 특별법들의 규정방식은 매우 배타적이다. ‘재한 외국인 처우 기본법’은 체류자격이 없으면 ‘재한’ 외국인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인신보호법’은 외국인 구금이 인신보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고 있고, ‘다문화가족 지원법’은 가족 구성원 중에 한국인이 있어야만 ‘다문화’가족이라고 정의한다. 헌법 개정 논의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자유권적 기본권은 외국인을 포함한 인간의 권리이고 사회권적 기본권은 국민만의 권리라는 국적 불명, 출처 불명의 이분법에 갇혀 있는 기존 헌법재판소와 헌법학계의 틀을 넘지 못했다. 특히 대통령 발의 헌법 개정안은 통신 비밀의 자유, 알 권리, 공정·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안전권 등의 주체도 국민에 국한함으로써 다른 안보다도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는 12월3일과 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종차별 철폐 위원회의 한국 심의가 열린다. 정부는 철저한 자기 평가를 전제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심의에 임해야 하고 관련 권고의 이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주의 및 불관용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소위 ‘다문화’ 가정과 아동이 전체의 5~8%를 차지하고, 외국인 인구가 전체의 4%에 이르는 현재, 세계를 상대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이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더욱 명확하다. 외국인을 사람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법과 제도의 전반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한 사회는 그 사회가 배제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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