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11월 24일 18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4일 18시 33분 KST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는 ‘서기 536년’

위키미디어 코먼스
huffpost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는 서기 536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1349년, 최대 5천만~1억명의 희생자를 낸 1918년 스페인독감을 제치고 이 해가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해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통치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큰 전염병이나 전쟁이 없는 조용한 시기였다.

문제는 하늘에서 일어났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소개된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 11월15일치 논문에 따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지 안개가 무려 18개월 동안 유럽과 중동, 아시아 일부 지역의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가렸다. 그러자 기온이 급락해 세계 곳곳에서 가뭄, 흉작, 기근이 확산되고 중국에선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해의 여름 기온은 1.5~2.5도 떨어졌는데, 이는 2300년만에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태양이 일년 내내 달처럼 밝지 않은 빛을 냈다”고 기록했다. 아일랜드에선 536년부터 539년까지 빵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미 하버드대 고고학자이자 중세역사가 마이클 맥코믹 교수는 ”이 해는 최악의 생존 고난기간이 시작된 해”라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과학을 통해 불분명한 인류의 과거사 진실을 밝혀내는 `인류과거과학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0년 당시 아이슬란드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날아간 지역.

최근 하버드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연구팀은 광범위한 자연 재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536년 초에 시작된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음을 밝혀냈다고 보고했다. 재앙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541년엔 흑사병의 일종인 선페스트가 이집트 북동부의 펠루시움에서 발병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라는 이름의 이 전염병으로 동로마제국 인구의 3분의1~2분의1이 목숨을 잃으면서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사실 역사가들은 이 기간이 암흑의 시대였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체 불명의 그 거대한 구름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였다. 이번에 맥코믹팀이 스위스 빙하층에 대한 초정밀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540년과 547년에도 잇따라 대규모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폭발로 고난의 기간이 더 길어졌다.

이 고난은 언제까지 계속됐을까? 연구진은 100여년이 지난 640년 얼음층에서 경제 재건의 신호를 발견했다. 그 신호는 납이었다. 이는 인간이 납 광석에서 은을 채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은화 주조가 증가하면서 납 농도는 660년, 695년에 급증했다. 이는 최초의 상인계층 탄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얼음층의 납 농도는 1349~1353년 급락했다. 이는 흑사병이 번진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의 급변이 초래하는 재앙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이는 인간 활동으로 가속화하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분석에 사용한 빙하는 2013년 스위스 알프스의 콜레 그니페티에서 시추해낸 높이 72m의 빙하코어(오랜 기간 묻혀 있던 빙하에서 추출한 얼음 조각)다. 이 얼음 덩어리에는 지난 2000년 동안 이 곳에 흘러온 화산재 낙진, 사하라사막의 먼지 등이 간직돼 있다. 연구진은 이 얼음을 새로운 초고해상도 분석 장치를 이용해 판독했다. 이 장치는 레이저로 얼음을 120미크론(1미크론=0.001mm) 크기로 잘라 그 성분을 분석해낸다. 이런 식으로 5만개의 샘플을 채취해 그 안의 물질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추적해 비교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빙하가 타임캡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영국 노팅엄대의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러브럭 교수는 ”우리는 이제 초고해상도의 환경 기록과 비슷한 초고해상도의 역사 기록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이는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고 이번 연구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