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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팬덤, 한국영화를 구하라

ⓒ미쓰백
ⓒhuffpost

이른바 ‘원폭 티셔츠’ 논란으로 일본 극우 혐한 세력의 맹공을 받은 방탄소년단(BTS). 그들이 성공적인 도쿄 콘서트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일본 내 팬클럽 아미의 역할이 컸다. 일본 혐한 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을 쫓은 미국의 한 유대인 단체가 논란에 끼어들자 이번에는 미국 아미가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최근 걸그룹 마마무 팬들은 과도한 스케줄로 혹사 논란을 낳은 마마무의 연말 콘서트를 취소시켰다. 굿즈 불매운동을 벌이며 소속사를 압박했고, 팬 투표 끝에 취소 결론을 끌어냈다. 유례없는 일이다. 

대중문화에서 팬덤의 힘은 날로 커지고 있다. 팬들이 단순 소비자를 넘어, 자신이 직접 스타를 키우고 후원하는 양육자 팬덤으로 진화한 결과다. 좋아하는 스타를 보호하려 실력행사를 하고, 때로는 소속사의 영역인 매니지먼트에 개입하기도 한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팬들이 구한 영화 ‘미쓰백’이 화제다. 신인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한지민 등 여배우가 주연이며,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다. 남배우들이 집단으로 주연을 맡아 거친 남성의 세계를 그리며, 사회적 분노의 대리 발산을 흥행 공식으로 삼아온 주류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스크린을 많이 잡지 못했고, 개봉 1주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에 공감한 여성 팬들이 영화의 운명을 바꿨다. 스스로를 ‘쓰백러’라 부르며 반복 관람에 나섰고, 관람이 힘들 땐 표만 사서 몸 대신 영혼을 보낸다는 ‘영혼 보내기’를 했다. SNS를 기반으로 단체관람, 극장 밖 상영도 추진했다. 영화는 손익분기점(70만명)을 넘겼고, 한달넘게 상영 중이다. 작은 성공이지만 의미가 크다. 

지난 6월 일본군 위안부 소재인 영화 ‘허스토리’ 때도 ‘허스토리언’이라는 이름의 열혈 팬덤이 생겨났다. ‘미쓰백’, ‘허스토리’와 달리 여성주의와 거리 먼 범죄느와르 ‘불한당’(2017), ‘아수라’(2016)도 여성 팬덤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여성 팬들의 ‘재발견’‘재관람’ 덕에 명작으로 재조명되며, VOD 시장까지 장기 흥행이 이어졌다. 

ⓒ미쓰백

한 ‘쓰백러’는 “이런 영화가 시장에서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계속 만들어진다. 일단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였다. 관객의 상당수는 여성인데 여성주의적 영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여성영화여서만 아니라 영화 자체가 좋았다.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영화계가 반성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미쓰백’ 사례가 ‘와라나고’에 이은 영화 관객 운동으로까지 불리는 이유다. ‘와라나고’는 2001년 큰 영화에 밀려 자리를 잃은 작은 영화(‘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비’‘고양이를 부탁해’) 관람 운동을 말한다. 

툭하면 천만영화가 터지는 영화강국이지만 최근 충무로는 급격하게 활력을 잃고 있다. 고만고만한 흥행공식을 짜 맞춘 영화들이 쏟아지면서, 젊은 관객들은 흥미를 잃고 극장 관객들은 늙어가고 있다. 딱히 문제작도 없고, 주요 해외 영화제 초청작도 드물다. 지난 추석 때는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들이 줄줄이 망해, 흥행 전선에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연예든 정치든 팬덤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는 세상을 맞고 있다. 팬덤은 스타 지키기를 넘어 문화소비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계로 진화 중이다. 한국영화계의 고질인 스크린독과점을 비판하며 법 정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극장들은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상영할 뿐’이라고 버텼고, 그 앞에서 ‘다양성 담론’은 공허했다. 한국영화계의 그 어려운 일을 지금 여성 팬덤이 해내고 있다. BTS나 마마무 팬덤이 BTS나 마마무를 구해냈다면, ‘미쓰백’ 팬덤이 살려낸 것은 ‘미쓰백’만이 아니다. 위기의 한국영화 자체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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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덤 #미쓰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