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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역할 바뀐 프랑스판 ‘양들의 침묵’, 드라마 ‘사마귀’

ⓒhuffpost

프랑스 파리 근방에서 끔찍하게 훼손된 백인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경찰청의 페라치 경정(파스칼 드몰롱)은 이것이 과거에 일어난 악명 높은 ‘사마귀’ 살인 사건의 모방 범죄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25년 전, 남성들만 잔혹하게 죽이는 연쇄살인 사건이 프랑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다. 결국 페라치가 체포한 여성 살인범 잔 데베르(카롤 부케)에게는 ‘사마귀’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모든 범행을 자백받는 조건으로 잔의 신원을 철저하게 숨겨준 페라치는, 무기징역수로 수감 중인 그로부터 모방범죄 사건 수사를 돕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단, 이번에도 조건이 있다. 잔은 경찰이 된 아들 다미앵(프레드 테스토)이 수사를 담당할 것을 요구한다.

지난해 프랑스 최대 민영방송 TF1이 방영한 <사마귀>(원제 ‘La Mante’)는 여러모로 영화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양들의 침묵>은 잘 알려져 있듯 한니발 렉터라는 천재 사이코패스 캐릭터와 그와의 공조 수사라는 독특한 플롯이 돋보이는 범죄 스릴러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에 영향받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내세운 수많은 범죄물이 등장했지만, 이 희대의 캐릭터를 능가하는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사마귀>는 그에 필적할 만한, 티브이 범죄 드라마 사상 가장 인상적인 여성 연쇄살인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

잔 데베르는 한니발 렉터 같은 지식인도 천재도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오히려 <양들의 침묵>과 같은 무수한 범죄 스릴러에서 피해자로 묘사되는 여성에 가깝다. 잔이 강렬한 캐릭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대상화된 피해자의 위치에서 직접 응징하는 자로 변화하고, 더 나아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도 남성들이 주도하는 범죄 수사의 주도권까지 끝내 손에 넣기 때문이다. 한니발과 FBI 요원 스털링의 관계를 모자지간으로 성 반전한 듯한 잔 데베르와 다미앵의 공조 수사는, 전문가도 권위자도 아니고 단지 괴물 혹은 마녀로 불리는 중년 여성의 예상치 못한 통찰력과 심리전 때문에 한층 흥미진진해진다.

<사마귀>와 잔 데베르 캐릭터의 이런 특징은 지난해부터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미투 운동’ 때문에 더 주목받기도 했다. 도입부부터 도발적이다. 수많은 범죄물 장르에서 여성 피해자들이 온갖 잔혹한 살해 방법을 통해 훼손당한 시신으로 적나라하게 전시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 피해자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다미앵이 시종일관 잔 데베르에 의해 흔들리고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반면, 잔은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냉철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인물 구도 역시 신선하다.

물론 결말이나 모방범 캐릭터를 둘러싼 논란 등 한계도 있다. 그러나 잔 데베르 캐릭터의 잊을 수 없는 카리스마, 그리고 흔히 ‘역대 최고의 본드걸’(<007 포 유어 아이스 온리>, 1981년)로 회자되곤 하던 배우 카롤 부케의 명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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