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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3일 17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3일 17시 53분 KST

프랑스 시골길,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묵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

류승희
생 콤 돌트의 성당의 종탑은 비비 꼬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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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들이 구제한 수도원

생 콤 돌트에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주 훌륭한 숙소가 있다. 르 퓌 길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인데다 새로 정비를 마쳐 아주 깨끗했다. 수녀, 신부, 순례자 무리가 식사 시간이 되어 모이면 수용 인원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용료는 기부제인데 자원봉사자에 의하면 보통 프랑스 길에서는 10~20유로 정도가 기본이고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은 이왕이면 많이 지불한다. 프랑스에서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아침과 저녁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와 달걀, 치즈로 이뤄지는 식사인데 분위기가 맛을 돋운다.

수녀원은 원래 너무 낡아서 건물을 없애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처한 운명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수녀들은 자진해서 구제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수녀 개개인이 평생 일해서 모은 돈과 연금을 걷어 건물을 재건해 현재 모습이 되었다. 어려운 사람들의 무상 휴식처로 이용되며 은퇴한 수녀들의 요양원이나 안식처로도 쓴다. 이곳 수녀원은 그래서 다른 곳과 그 의미와 색채가 남다르다.

나는 생 콤 돌트와 사랑에 빠졌다

숙소도 특색이 강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는 해마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선정하는데 생 콤 돌트도 뽑혔다. 먼저 아주 눈에 띄는 곳은 생 콤 돌트 성당인데 교회 지붕이 비비 꼬여 있다. 1552년에 건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문 장식이 독특하다. 마을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옛집이 즐비하다. 섬세한 운치로 아주 독특한 이 마을만의 색채가 있다. 미술 대학 교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케치해보고 싶은 소재로 가득했다.

마을 자체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 같고 골목길을 걷다보면 몇 세기는 거슬러 올라가 왠지 라틴어로 대화를 나눠야만 할 것 같다. 연기 같은 회색빛과 연한 분홍빛이 섞인 낡은 돌집이 있는 이 마을의 과거 모습이 궁금해졌다. 상대방의 과거가 궁금해지면서 사랑이 시작된다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나는 이 마을과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다.

류승희
11세기에 건축된 페르시아 성당.
류승희
찬란한 강에 비친 매력적인 풍경.

강물이 그려낸 그림 같은 성곽 마을

생 콤 돌트를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수녀원과 그림 같은 마을에 마음을 빼앗겼다. 언제 또 다시 그 예쁜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인생길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듯 그러한 장소를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만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너무 끔찍한 일이지만 심장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런 점에서 생 콤 돌트는 내게 의미가 있는 장소다.

유유히 흐르는 로트 강을 끼고 걷기 시작했다. 반 시간쯤 지났을까. 르 퓌 길의 꽃으로 불리는 페르시아 성당Eglise Perse을 만났다.

성당은 약간 경사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노란색과 푸른색의 천장화, 아라베스크 선, 앙증맞은 부조, 분홍빛 회벽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다. 11세기에 세워진 성당은 12세기와 14세기에 증축되었다. 4개의 아치형 종탑이 있고 북쪽 정문은 예수 강림, 요한계시록, 마지막 심판의 내용이 부조되어 있다. 성당 옆 묘지 또한 아주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류승희

물 위에 비친 에스팔리옹

성당을 내려오면 바로 옛 정취를 간직한 도시 에스팔리옹Espalion이다. 미적 외모를 따지자면 에스팔리옹도 빠지지 않는다. 로트 강변길에 들면서 동화처럼 예쁜 마을이 계속 보인다. 성곽, 나무로 된 발코니가 있는 예쁜 집, 아주 오래된 고풍스런 다리, 이 모든 것들이 찬란한 강에 비친 풍경은 매력적이다. 에스팔리옹은 장인이 만든 가구와 장갑으로도 아주 유명하며 인구가 4000명이나 되는 부근에서 꽤 큰 마을이다.

마침 에스팔리옹에 재래시장이 서는 날이었다. 갑자기 만난 인파로 정신은 혼란스러웠지만 장을 둘러보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샀다. 시골 사람들이 당일 아침에 만들어 파는 신선한 프랑스 음식을 맛보다니, 들뜬 마음으로 로트 강변에서 피크닉을 했다. 오랜만에 집밥을 먹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순례자에게 풍부한 점심 식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나른해서 걸을 수가 없었다. 졸음 섞인 느린 발자국으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되어 꿈꾸듯 걸었다. 흰 무명옷에 배만 긁는다면 그 순간 나는 《춘향전》의 영락없는 배부른 방자였다.

3시간 뒤 생 피에르 베수줄St Pierre Bessuejouls 성당에 도착했다. 11세기 건축물이다. 이 성당이 특이한 점은 2층에 있는 방인데 겨우 한 사람이 올라갈 만한 계단을 통해 있다. 방문객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구석구석 훑어보며 용도를 상상했다.

* 프랑스 도보 여행 에세이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꼼지락)’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