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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남자친구와의 연애, 망설여져요!

곽정은의 단호한 러브 클리닉

ⓒGeorgePeters via Getty Images
ⓒhuffpost

Q 저는 29살 여성입니다. 사회 생활한지는 이제 1년 정도 돼갑니다. 회사 주변 독서 모임에서 만난 36살 오빠와 지금 연애 중입니다. 연애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오빠가 자신에 관한 얘기를 해주었어요. 자신은 2년 전에 이혼했다고 하더군요. ‘돌싱남’인 거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 오빠가 정말 좋았거든요. 결혼 이야기를 제가 먼저 꺼낼 정도였어요. 아이는 없다고 하더군요. 이혼 사유는 전 부인의 분노조절장애였다고 했어요. 결혼할 당시 그런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결혼했다고 해요. 결혼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답니다. 안정을 찾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더 심해져서 칼까지 든 적이 있었다고 해요. 제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들은 “그 말을 믿지 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라고 하는 겁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제 맘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혼남을 남자친구로 둘 줄은 정말 상상도 한 적이 없었거든요.

제 마음엔 이미 정답은 있었어요. 헤어지지 않는 것. 오빠의 말이 다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친구 중에는 “이혼은 죄가 아니다. 그냥 계속 만나보고 스스로 판단해봐라”라고 조언하는 이도 있어요. 그 친구는 “지금 당장 뭘 가지고 그 사람을 단정 지으려고 하느냐, 1년이라도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헤어져도 늦지 않을 나이다”라고 하더군요. 또 다른 친구는 “더 정들기 전에 헤어지는 게 낫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했어요.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힘들어요. 남자를 만나다 보면 맘에 안 드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고, 안 통하는 측면도 있잖아요. 대화로 풀면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같이 있으면 맘이 편하고 대화도 잘 통해요. 물론 오빠가 저를 온전히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에요. 본인이 보기에 잘못된 행동을 제가 하면 공손한 태도로 조언해줍니다. 그런 점도 좋지만, 무엇보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여겨져요. 날이 갈수록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어요.

이혼 얘기를 한 후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깐, 더 잘해줍니다. 그런 부분도 친구들은 “믿지 마라”고 해요. 하지만 그런 노력을 알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고마울 뿐이에요. 일단 1년간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가지기로 했어요. 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죠. 우리의 결혼은 어쩌면 다른 커플과 다르게 매우 힘들 거라는 것을요. 그래서인지 만남이 더 애틋해요. 당장 이 고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연애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요.

이혼남과의 연애에 고민하는 여자

A 당신의 사연인데, 그 안에 당신의 생각은 없네요? 당신은 ‘친구들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데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과 ‘오빠가 이렇게 말하니까 이걸 믿고 싶다‘, ‘오빠가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니까 믿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은 열심히 기록했지만, 그 안에 당신의 생각이라 할 것은 거의 보이질 않네요. 당신의 가장 큰 문제는 남자친구가 이혼한 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이라 할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일단 연애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이혼 사실을 말한 그는 딱 한 달의 기간만큼 비겁합니다. 이혼했다는 것이 자신의 매력을 보이는 데에 도움 되는 이야기는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가 될 때 숨겨야 할 이야기도 아니니까요. 사랑하고 확신이 있어서 한 결혼이었지만 큰 손실과 상처 그리고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감내하고라도 삶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는 일은, 슬프고 고된 일일지언정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까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모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사귄 지 무려 한 달이 되도록 숨긴 것은 그만큼 그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일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또 하나, 이혼의 이유를 묻는 말에 오직 전 부인 탓을 하는 그는 솔직하지도 못한 같습니다. 한때는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에게, 결혼이 파국에 이른 책임을 모두 덮어씌우는 표현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픈 경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배우고 성장했다면 ‘그 사람의 분노조절장애 때문에 이혼했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을 겁니다. 한때는 사랑했고 살을 맞대고 살았던 사람을 ‘칼까지 들었던 사람‘이라고 당신에게 표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관계는 상호적이지 않나요? 최소한 그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도 어떤 노력을 했던 사람이라면 ‘함께 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정도까지만 표현했겠죠. 그리고 당신의 말처럼 서로 맘에 안 드는 부분도 있고, 안 통하는 측면도 결국 대화로 풀면 되는데 그 둘은 왜 그렇게 힘들게 헤어졌을까요? 설마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으신 건 아니죠?

저는 그분이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얼마나 공손한 태도로 조언해주는지, 서로 대화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는 사실 중요하게 보지 않아요.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이가 제법 좋을 때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이거든요. 당신의 이 사랑이 너무나 특별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든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초반엔 최선을 다한다고요. 이혼한 전 부인을 그런 식으로 ‘디스’하는 남자가, 당신과 사이가 좋지 않아지면 당신에게는 어떤 태도를 취할까요?

당신은 ‘헤어지지 않는 것‘을 정답으로 정하고, ‘이혼이라는 큰 흠이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진심으로 잘해주는 남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네요. 그리고 ‘큰 흠이 있는 남자‘이지만 그 때문에라도 당신에게 더 잘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네, 그런 기대 자체는 나쁘지 않고, 한동안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면을 확대해서 보기 위해서, 제 3자의 눈에 너무나 확실하게 보이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려 하고 있네요. ‘내 사랑은 특별하고 실패하지 않을 거야’라는 섣부른 기대가, 눈을 또렷하게 뜨고 걸어야 할 때, 눈을 감고 뛰게 하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눈을 감고 뛰는 사람은 본인이 눈을 감고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더라고요.

나에게 정말 맞는 사람을 잘 고르고 싶으시죠. 그럼 그럴수록 ‘자기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으세요.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든, 이혼했다고 해도 그 경험에 대해 성숙하고 존중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든, 그것이 당신의 고요한 내면에서 나온 깊고 단단한 생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걸 가치관이라 부르고, 통찰력이라 부르지요. 남들 눈에 괜찮아 보였으면 좋겠고, 남들이 하는 충고는 충고대로 신경 쓰이고, ‘오빠가 잘해주는 것‘은 놓치고 싶지 않고…. 이런 상태로는 당신의 생각이라는 게 만들어질 공간이 없겠죠.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것이 결혼이 아닙니까? 지금의 이 상태로 ‘오빠의 진심 어린 사랑‘을 믿고 결혼까지 간다면, 글쎄요. 그 결혼은 과연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요? 자기주관이 없는 사람에게, 행복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답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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