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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의 시선으로 후쿠시마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 이소연
  • 입력 2018.11.21 17:54
  • 수정 2018.11.21 17:58
ⓒhuffpost

올해 초, 싱가폴에 있는 디스커버리 아시아에서 쓰나미 피해를 크게 입은 도호쿠지방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을건데 함께 가자는 제안이 왔을 때 나의 대답은 “도호쿠가 어딘가요? 였다. 도호쿠 지방은 우리에겐 그 일부인 후쿠시마만 알려진 그보다 훨씬 큰 쓰나미 피해지역이었다.“난 원전이고 원자력이고 핵에 대해 1도 모르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였다. 도호쿠지방에 매년 방문하면서 어떻게 완전히 무너진 그 지역의 삶이 회복되는지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계시다는 싱가폴 출신의 PD(Yusen Siow)는 후쿠시마의 쓰나미로 외할머니를 잃으신 분이었다. 그 분은 나에게 일본에서조차도 제한된 정보만이 유통되고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후쿠시마의 진실을 과학자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합리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질문도 하고 느끼기도 하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디스커버리 아시아에서 제작한 ’Fukushima Dreams and Beyond’ 다큐멘터리는 나에게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곤 하는 비극적인 어떤 사건들을 떠올리게 했다.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정보들과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이상한 정보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살고 있고, 그 모습을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후쿠시마의 이야기가 타블로이드의 선정적인 이야기거리로도 참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그 궁금증은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후쿠시마에 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주변에 했을 때 그런 터무니 없는 의혹들과 황색 가십들 때문에 주변에서는 극구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무엇보다도 믿을만한 구석없이 떠다니는 후쿠시마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 진실이 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정말 다방면으로 위험한 일이 된 후쿠시마 아니 도호쿠 다큐를 촬영하게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함께 간 PD는 일본 내에선 누구도 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 후쿠시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나름대로 그 지역에서 힘겹게 회복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도 전혀 도와주지도 않고 함께 하길 꺼려한다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PD는 내가 특별한 사전지식이 없는 상태로 본 그대로를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원전사고 보다는, 쓰나미로 완전히 모든게 없어져버려서 텅빈 땅이 된 곳들이 어떻게 회복되었고, 거기서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고 전의 바닷가 마을들은 대개 쌀농사, 과일농사, 고기잡이가 주업인 평범한 시골마을 이었는데, 7년전 쓰나미와 원전사고로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물론 도호쿠에 대해 얘기하면서 원전 사고로 완전히 멈춘 후쿠시마 원전과 텅빈 그 주변 동네없이 이야기를 이어갈수는 없어서 원전도 방문하고, 사고이야기도 담았다. 사고는 왜 일어났고, 어떻게 일어났고, 현재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지금은 간신히 문제를 묶어두고는 있지만, 도대체 얼마나 이런 상황을 유지할수 있을지 알 수 없겠다는 의문이 들었고, 촬영 중에 그런 의견도 말했다.

모든 촬영팀과 출연자들은 개인별 방사능 트래커를 부착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의 대기중 방사능 농도를 계속 체크하면서 안전을 확인했다. (사실 떠날때부터 위험한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다시 귀국할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다.) 도호쿠지역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큰 지역이었는데, 이 지역의 농민들은,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의 영향이 전혀 없는 곳 마저도 단지 주소가 후쿠시마가 속한 도호쿠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떤 농산물도 지역 바깥으로 나갈수 없었던 몇년의 시간을 보내야했고, 사고와 관련된 부정적인 상황을 무조건 덮기만 하려는 정부의 안일한 대처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젠 정부의 데이터는 그 어떤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인것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대처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의 일부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그 지역의 방사능 수준을 측정하고 그 정보들을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일들을 주도하기도 했다. 데이터 민주화이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주지 못하는 정부로 인해 고통받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남일같지 않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그 어떤말을 해도 다 변명같고, 무슨 얘기를 해도 부정적 반응만 얻게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그 어떤 최첨단 기계로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서 보여줘도 생산지 주소에 ‘후쿠시마’만 찍히면 방사성폐기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피하는 사람들을 대해야 했던 그 시간이 참 힘들었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후쿠시마의 복숭아를 집어서 먹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상황에 대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 상황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나에게 건네는 음식의 방사능 수치를 내가 직접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내 삶을 살고 내 미래를 염려하는 나약한 사람이지만, 과학자로서 내가 측정한 데이터가 나에게 이 음식이 괜찮다고 말할때, 괜한 공포감만으로 그걸 거부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도 어제도, 몇 달전 내가 거길 간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그래, 직접 확인하고 이야기할 믿을만한 과학계 사람이 필요하지. 근데 왜 그게 너야?” 라는 질문을 받는다. 날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너무 감사하지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긴 한데, 난 좀…아닌 것 같다..’는 내가 꿈꾸던 과학/공학자의 대답은 아니었다. 반쯤은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기도 하고, 주목받는 자리에 서게된 과학자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가게되었고, 도호쿠 지방에서는 힘들지만 의지를 잃지 않고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것을 돕는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노력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기회사의 발전소가 생기기도 몇십년 전부터 그곳에서 터를 일구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냥 쓰나미 만으로도 힘들었을 상황에, 원전사고까지 얹어지면서 그냥 “모두 힘을 내서 으쌰으쌰”만으로는 회복이 안될것 같은 그 일이 조금씩 극복되고 있는 것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의 어딘가에 우리가 태어나서 사는게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듯,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이 시간 역시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닌데, 같은 지구에 사는 한 사람으로써, 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는 그들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거기에서 인간의 삶이 가진 끈질긴 힘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튼.. 지난 여름 디스커버리 아시아와 함께 도호쿠에 다녀왔고, 갔다온 얘기를 바로 쓰려다, 오자마자 또 출장을 가고 하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얼마 전 방송시간이 편성되서 방영된다는 이메일을 받고, 또 며칠전 예고편이 공유되고 할 때까지도 싱가폴에 있는 디스커버리 아시아에서 제작한 다큐이고 내가 받아본 스케줄 표에는 동남아 지역의 일정만 있어서 한국에서도 방영되는 줄 모르고 있었다. 아, 이 방송에는 나 외에도 두명의 출연자가 더 있다. 진지한 과학 탐사 다큐라기보다,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휴먼 다큐의 느낌으로 대만의 스타 쉐프와 중국의 배우도 함께했다. 진지한 과학 다큐였다면 원자력 전문가가 함께했겠지만, 과학자의 정보가 아니라 과학의 시선이 필요했기에, 우주인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과학자인 내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온라인 상에 ‘후쿠시마 홍보 다큐’ 라든지 ‘ 후쿠시마 농산물 홍보 영상’에 이소연이 출연했다 라든지 하는 얘기가 돌고 있는데, 진짜 일본 정부가 나를 써서 후쿠시마 농산물을 팔려고 했다면 그렇게 바보같은 기획이 있을까? 한국의 이소연 안티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도 안하고 그런 기획서를 올리는 일본의 공무원이 있다면 당장 일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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