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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페미니스트는 반드시 트랜스 해방을 지지해야 한다

트랜스의 목소리가 없는 페미니즘이란 없다.

ⓒYana Paskova via Getty Images

11월 20일은 반 트랜스젠더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다. 2017년에 활동가들은 미국에서 최소 29건의 사망을 추적했다. 기록된 중 가장 많은 수치였다. 이러한 치명적 폭력의 희생자는 주로 유색인종 트랜스 여성이다.

미국에서 트랜스는 거주처, 직업, 건강보험이 없을 확률이 더 높으며, 인종주의,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성차별, 계급차별의 복잡한 교차성(intersection) 속에서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트랜스 커뮤니티가 겪는 엄청난 손실과 폭력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의 편인 우리는 트랜스에 대한 공정함과 정의를 위한 운동에서 우리의 자리를 잘 계획할 필요가 있다.

트랜스 커뮤니티가 역사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던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는 주류 페미니즘 내부였다. 트랜스 여성과 커뮤니티는 양성 중 하나를 강요하는 문화에서 가장 취약한데도 불구하고, 젠더에 따른 억압과 가부장제의 폐해, 젠더 평등 진전과 싸움의 방법에 대한 가장 중요한 문화적 대화에서 이들은 거의 배제되어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트랜스 말소에 기여해왔기 때문에, 이제부터 페미니스트들은 트랜스 해방을 위한 싸움에 나서서 최전선에 서야 한다.

예를 들어 여성 행진을 보라. 핑크색 모자(이른바 ‘pussy hat’)이 여성 행진의 상징이 되었다. 여러 저명한 유색인종 여성 활동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트랜스 여성은 배제되었다. 여성 성기를 의미하는 모자를 사용한 것은 이 운동은 버자이너를 가진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트랜스와 넌바이너리(nonbinary)는 소외되었다.

트랜스 커뮤니티는 트럼프 정권 하에서 많은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으므로, 이런 노골적인 간과는 더욱 문제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취임 후, 이 행정부는 LGBTQ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트랜스 학생들 보호 거부, 외교관의 동성 파트너에게 비자 발급 거부, 트랜스젠더 군복무 금지, HIV/AIDS 자문위원회 무시 등이었다. 지난 달에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젠더의 법적 정의에서 트랜스젠더와 넌바이너리를 없앨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이 시행되면 트랜스는 의료, 주택, 교육, 시민권에 있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트랜스의 경험과 정체성의 말소는 트럼프 집권 훨씬 전부터 있어왔다. 미투 운동, 젠더 임금 격차 등 젠더 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나, 그 중심에는 시스젠더 백인 여성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고 트랜스 여성과 커뮤니티는 계속해서 배제된다.

미투 운동 안에 트랜스와 넌바이너리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이들이 경험하는 성폭력을 생각했을 때 특히 해로운 일이다. 트랜스 여성 3명 중 1명 이상, 트랜스 남성 2명 중 1명이 성폭력을 경험했다. 넌바이너리에 대한 성폭력 비율은 심지어 더 높다. 성노동을 하는 트랜스는 폭력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으며, 트랜스 생존자들은 성적 트라우마 후 도움을 구할 때 차별과 오명의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성폭력에 대한 논의 확대에 대한 글에서 라켈 윌리스는 “나는 성희롱과 공격에 대한 내 경험을 논할 수 없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심지어 시스젠더 여성도 폭로했을 때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트랜스, 흑인, 퀴어인 나를 본질적으로 일탈적 존재로 보는 사회에서 내 주장은 더욱 신빙성없게 받아들여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억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경험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미 투가 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여성의 섹스, 동의, 권력에 대한 인식에 있어 중요한 순간이 된 반면, 현재 상태의 미 투 운동은 가부장제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시스템으로서 탐구하는 섬세함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성폭력이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게만 일어난다는 양극화된 생각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성이나 젠더에 따른 억압의 다양한 얼굴이 다면적이며 계속 변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전혀 해방을 주지 못한다.

페미니즘 내에서의 배제를 이야기할 때,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급진 페미니스트(TERFs)를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이들은 시스젠더 여성은 트랜스 여성과 커뮤니티와 동조해서는 안되며 현재의 페미니스트 운동에 트랜스의 자리는 없다고 믿는 하위 집단이다. TERF 이념은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트랜스는 위험하거나 일탈적이라고 열렬히 주장하는 많은 우익 ‘가족적 가치’ 단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TERF는 자신들이 ‘진짜 여성’을 대표한다는 트랜스 혐오성 주장으로 오래 전부터 교차성 페미니스트와 LGBTQ 단체들의 비난을 받아왔으나, 페미니즘 내의 트랜스 배제는 더 은밀한 방식으로 자주 일어나며 이 역시 포용적이고 진정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운동 형성에는 마찬가지로 해악을 미친다.

유색 인종 여성, 장애 및 노동 계급 여성은 주류 페미니즘이 자신들의 경험과 정치적 요구를 인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와서,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경험에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벨 훅스, 셜리 치좀, 돌로레스 우에르타, 마샤 P. 존슨, 오늘날의 래번 콕스, 미아 밍거스, 록산 게이, 로레타 로스 등의 활동가와 페미니스트 지도자들은 페미니즘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문화적 대화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동안 여러 운동들은 보다 포용적이고 교차성을 띄게 되어왔지만,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 운동들은 아직 진정 혁명적이며 모두를 위한 것이 되지 못했다. 메레디스 탈루선은 커뮤니티 플랫폼 뎀에 페미니즘 내의 트랜스 배제에 대해 “여성이 되기 위해 버자이너를 가지고 태어나야 한다고 믿지 않는 시스젠더 여성 사이에서도 우리는 독특한 지식을 지닌 잠재적 지도자가 아닌 피해자 또는 포용하는 시늉을 해야 할 존재로 여겨진다. 포용은 우리의 의견이 다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라고 썼다.

트랜스에 대한 겉치레 포용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유명 여성 단체들은 국제 여성의 날에 트랜스 활동가들을 환영한다고 하지만, 내부의 트랜스 지도자나 트랜스 여성 지원을 위한 장기적 계획은 없다. 할리우드는 트랜스의 이야기를 착취하는 동시에 트랜스 배우, 작가, 프로듀서는 무시한다.

정부가 젠더를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트랜스는 존재할 것이고, 삭제될 수 없다. 트랜스 인권은 인권이다. 시스젠더 페미니스트인 우리들은 우리가 여러 면에서 트랜스 자매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음을 인식하고, 이 순간 우리가 가진 특권을 이용해 트랜스 커뮤니티를 그 어느 때보다 지원해야 한다.

가부장제와 젠더 기반 억압, 그리고 젠더, 섹슈얼리티, 권력, 가치에 대한 좁은 이해는 우리 모두에게 해가 된다. 우리의 고충은 엮여 있으며, 우리의 운동 역시 엮여야 한다. 현실에서 이는 페미니스트들이 우리의 운동 안에 트랜스 여성과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리더십을 지지하고 가꾸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트랜스 혐오를 목격할 때마다 그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시스젠더로서의 특권을 잘 활용해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와 운동을 우리가 증폭시켜야 한다. 우리가 권리, 가시성, 소유권, 힘을 얻을 때마다 우리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와 함께 해야 한다.

트랜스의 목소리가 없는 페미니즘이란 없다. 테이블에 당신 자리가 없다면 당신이 메뉴에 오른 것이란 속담이 있다. 우리의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동지인 자매들이 잡아먹히는데 더이상 우리가 손놓고 서 있을 수는 없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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