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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0일 14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20일 14시 09분 KST

목사 다음 교수

Kritchanut via Getty Images
huffpost

인천 한 교회의 청년부 목사가, 수십명의 청소년을 성폭행했다. 사회의 윤리적 기준이어야 할 종교인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라는 뉴스가 더이상 놀랍지 않다. 목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 정도다. 속옷을 내리지 않는 여신도는 신앙심이 없다던 대형 교회 목사가 여전히 잘나가고, 소망교회 장로였던 대통령이 서울을 신에게 봉헌하고 감옥에 가 있는 나라에서, 이제 주말이면 광화문 광장에 나와 탄핵당한 대통령을 풀어주라며 찬송가를 부르는 목사들이 일상인 사회에서, 목사란 그저 성추행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직업이다.

부산 의대의 한 교수는 연구비 34억원을 유용했다. 별로 놀랍지 않다. 교수들의 연구비 비리는 이미 뉴스의 흔한 소재다. 부산대 교수의 비리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 연구실의 행정직원이 연구비를 유용해 명품을 사는 데 사용했다는 에피소드다. 그 직원은 책을 사거나 여행을 가지 않고, 명품백과 의류를 구입했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교수에게 배울 수 있는 실천적 윤리란 배부른 돼지가 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방법 정도인 셈이다. 수백명의 교수 및 연구원이 가짜 학회를 빙자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마당에, 교수와 학계의 도덕성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학계도 썩었다. 

두 집단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목사와 교수 모두 본인의 도덕성과 상관없이 무작위 대상에 대한 도덕적 권위를 획득한다. 목사는 학벌, 설교 등을 기준으로 교회에 임용되고, 목사의 도덕성은 교회의 성장이라는 기준에 밀린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박사 학위는 도덕성을 가르치는 과정이 아니다. 도덕성 검증도 받지 않고, 전문직으로 임용된 이들이, 연구실의 왕이 되어 학생들을 다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와 교수 모두 신자와 학생에게 도덕적 기준을 강요한다. 말도 안 되는 구조다.

둘째, 비리가 터질 때마다 그들 모두 일부의 일탈이라고 변명한다. 그 변명은 교계와 학계에 받아들여지고, 징계는 가볍다. 그들은 시스템의 승리자다. 또한 암묵적 공범자인 교계와 학계의 네트워크가 그들을 보호해줄 것임을 잘 안다. 그래서 이런 범죄는 절대 뿌리 뽑힐 수 없다. 언론이 매일 목사와 교수의 범죄를 발견해 대서특필해도 마찬가지다. 그건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가 벌써 반세기 넘게 언론에 의해 폭로되었어도, 여전히 그들이 한국을 지배하는 현실과 같다.

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해 한국에 들렀다. 그리고 최대한 교수를 만나지 않기로 했다. 학계에만 있었던 사람이라 그 결심이 잘 지켜지진 않는다. 당장 한국의 잘 아는 지인들 대부분이 교수다. 내 주변의 교수들은 착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교수란, 그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에 비해 도덕적으로 무능한 사람들이다. 여러 이유로, 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교수로 존경받고 싶지도 않다.

한국 개신교인 수는 줄고 있고, 새로운 세대의 유입은 막혔다. 한국 대학원은 더이상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고, 대학은 인구절벽으로 곧 상당수가 사라지게 된다. 목사와 교수는 가라앉는 배의 선장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배를 구하려는 의지가 없다. 마치 세월호를 먼저 탈출한 선장처럼, 그들은 자신의 안정적인 지위만 보장받으려 한다. 목사와 교수가 지식인이라 불리며 민주화를 이루려 했던 시대는 끝났다. 김박사넷이라는 사이트가 화제다. 거기서 한국 교수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다. 목사 다음이 교수다. 존경하면 안 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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