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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구하기

ⓒhuffpost

집을 구하고 있다. 고통의 연말이다. 서울에 깔끔하고 안전한 원룸 하나 구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달이 지난 지금 나는 서울의 온갖 해괴한 집들을 꿰고 있다. 부동산의 마케팅은 정말로 창의적이다. ‘반지하’라는 말을 수십가지 말로 바꿔 부른다. ‘미니 1층’이라든가, ‘언덕에 위치한 집이라 반지하인데 거의 1층 같다’든가. 서울에서도 교통편이 좋은 지역에서 집을 알아보다가 결국 나는 조금 더 변두리로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청년 보증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고 높은 보증금에 좀 더 괜찮은 집을 찾는 게 계획이었다. 2년 전 살펴봤을 때보다 청년 지원 제도가 많이 늘어 있어서 반가웠다.

애타게 세입자를 찾는 듯했던 부동산에서는 대출의 ‘대’자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중개사는 당당히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이 동네는 80% 이상 안 해줄 거예요.” 수요가 많은 동네라 불법도 많다고 했다. 집을 보러 다니면서 열심히 벽을 두들겨보았는데, 방의 두면 다 옹벽인 경우가 드물었다. 방을 쪼개거나, 증축한 경우가 많았다. 애초 주택 허가 조건보다 가구 수가 늘어난 게 구청에 알려지는 것도 걱정이고, 임대소득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집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청년 공공주택도 고려했지만, 일반 주택 시장에서 집을 구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보증금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대학내일> 기사를 인용하면 송파구 행복주택은 보증금 8000만원에 월세 30만원(관리비 미포함), 비슷한 조건의 일반 송파구 원룸은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35만원(관리비 포함)이다. 행복주택이 오피스텔, 아파트 형태인 경우가 많으므로 관리비도 큰 부담이 된다. 물론 이런 고민도 당첨이 되고 나서 할 일이다. 이름은 드높은데 실제로 이용할 기회와 유인은 없는 상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택 정책을 알아보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두번 정도 임대차계약이 엎어지면서 곤란해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나가기로 한 날이 점점 다가왔다. 나는 단기로 살 곳을 알아봤다. 커뮤니티에는 단기 임대를 해준다는 수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개중에는 고시텔, 원룸텔도 있었고 요즘 새로 생기는 기업형 셰어하우스도 많았다. 그나마 셰어하우스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급형은 엄두가 안 나서 비교적 가격이 싼 곳들을 살펴보았다. 이케아 가구에 이케아 조명에 이케아 침대로 만든 이케아 집이었다. 발 디딜 거실과 부엌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보니 놀라울 정도로 방을 작게 쪼개두었다. 1인실은 5㎡에서 7㎡로, 그보다 큰 방은 2인실 또는 4인실로 쓰였다. 이 집에는 최저 주거기준이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 불이 나도 안전할까?

최저 주거기준도, 대출 제도도, 공공주택도 분명 있는데 왜 나에게 바로 도움이 되질 않을까. 유명무실했다. 집을 구하면서 만난 나쁜 임대인들은 이걸 ‘쌈짓돈’ 또는 ‘연금’ 삼는다고 말하면서 세금은 기필코 피하려 했다. 관리비가 왜 이렇게 책정되었는지 묻자 동네 임대인들끼리 관리비 수준을 담합한 것을 자랑했다. 임대인을 부를 때 ‘집주인님, 집주인분’ 이렇게 말하다 보니 나중엔 ‘집주인님, 주인님, 주인님’이 되었다. 임대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집을 빌린 사람이라는 계약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가 더 크게 느껴졌다. 웃기고 묘한 말실수였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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