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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5일 14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15일 14시 54분 KST

50대 아재는 왜 퀸을 보며 울었나

huffpost

우리나라에 이렇게 퀸(QUEEN) 팬이 많았었나, 깜짝 놀라게 될 정도다. 페이스북에 또래 친구들이 연일 퀸 음악과 함께 “울컥했다. 한 번 봤지만 성에 안 차서 싱어롱 버전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소감을 올릴 때 알아봤어야 했다. 개봉 2주 만에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얘기다. 1991년 세상을 떠난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수퍼밴드 퀸 영화다. 영화뿐 아니라 음원차트까지 들썩인다. 이건 해외도 비슷한데, 퀸의 노래들이 수십 년 만에 역주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설의 귀환, 이례적인 퀸 현상이다. 세계적으로도 2억8000만 달러 넘게 벌어들이며 흥행하고 있지만, 특히 음악영화가 잘 안되는 한국에서는 더욱 이례적인 인기다. 미국의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상영 2주째인 지난 주말 흥행수익은 퀸의 고향인 영국(630만 달러)보다 한국(700만 달러)이 더 높았다.

물론 이런 흥행은 사춘기, 청년기 퀸을 듣고 자란 40~50대의 ‘추억 소비’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거기에 스포츠 응원가나 CF음악으로 익숙한 노래가 알고 보니 퀸이었음을 새삼 깨달은 20~30대의 재발견이 더해졌다. 퀸의 핵심 팬층이라 할 40~50대 남성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가 골고루 찾은 영화다. 한번은 일반 영화, 다음은 스크린X(3면 영상)나 음악특별관 버전으로 보고 또 보는 ‘N차관람’(반복관람), 관객이 떼창을 하는 ‘싱어롱 관람’ 등 새로운 극장 문화도 가세했다. ‘퀸포에버’ ‘퀸사모’ 등 팬클럽을 중심으로 줄곧 ‘덕질’을 해온 골수팬들도 있지만, 오랫동안 퀸을 잊고 살았던 평범한 50대 ‘아재’들이 마니아 문화의 전유물이던 N차관람에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알다시피 영화는 애초 호평보다 혹평이 많았다. 복잡한 혈통의 이민자, 소수자, 양성애자인 프레디 머큐리의 내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빈약한 전기영화라는 비판이 쏟아졌다(페르시아계 인도인인 프레디는 어려서 아프리카의 조로아스터교 집안에서 자랐고, 18살에 영국 국적을 얻었다). 퀸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로저 테일러(드럼)가 제작에 참여했음에도 사실관계의 오류가 적잖았다. 극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짜깁기다. 그러나 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기영화 아닌 음악영화로 받아들였고, 특히 모두가 입 다투어 말하듯 후반부 20분가량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1985) 장면은 영화의 모든 흠을 가렸다. 공연 전경을 잡아내는 전형적인 3인칭 카메라 대신 인물과 무대, 관중석에 밀착해 생생한 호흡까지 살려낸 카메라는 관객을 85년 공연 현장으로 되돌려 놓는 데 성공했다. 관객은 음악 다큐를 보듯 거리감을 갖고 과거 공연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공연을 즐겼다.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공연을 체험하게 한 영화다. 관객이 떼창으로 응수하는 게 너무도 당연해 보일 정도였다.

사실 “음악은 기억으로 경험된다”는 말처럼, 음악엔 강력한 추억 소환 효과가 있다. 음악은 우리에게 그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을 가져다준다. 음악이 불러오는 것은 그 시절의 나인 것이다. 아마 울컥 차오른 감정으로 청년 시절에도 해보지 못했던 떼창을 부른 아재들은, 그 순간 빽판(해적판)을 사 모으고 라디오나 AFKN(미군 방송)을 찾아 듣던 고교 시절, 혹은 더는 팝송은 금기이고 운동가를 외쳐야 했던 대학 시절을 함께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후 가버린 젊음과 함께 퀸도, 록도 잊고 산 바쁜 일상을 돌이켜 봤을 수도 있고 말이다.

소수자·마이너리티 정서, 다원적 문화의 아이콘으로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이 주는 메시지의 힘도 컸다. 복잡한 혈통만큼 이국적 외모의 프레디는 그 자신이 문화다원주의의 상징이다. 양성애자의 정체성은 튀는 패션과 음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무대 의상은 전형적인 게이 룩이었으며, ‘보헤미안 랩소디’는 은밀한 커밍아웃, ‘위 아 더 챔피언’은 게이들에게 바치는 송가로 해석되기도 한다). 생전의 프레디는 성정체성을 밝히라는 추궁에 시달렸지만 이 시대의 젊은 관객들은 좀 달랐다. 순혈주의보다는 다원주의에 이끌리고, 다양한 성적 취향을 편견 없이 인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극중 프레디는 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다.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 어디엔가 속하지 못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밴드다”라고 말한다.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멤버들에게 밝히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오직 뮤지션이고 싶다며 “내가 누군지는 내가 결정한다”고도 했다. 세상과 불화하고 세상의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당당한 자유인, 온갖 억압받는 소수자들의 대변인. 시대를 훌쩍 넘어 그들이 21세기 관객과 공명할 수 있는 이유다.

퀸은 록의 황금기(70년대)에서 팝의 르네상스(80년대)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멜로디를 앞세운 보컬지향적 록밴드로 인기를 끌었다. 대중적 인기는 높았으나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같은 기라성 같은 밴드에 가려져 가장 저평가된 록밴드로도 꼽힌다. 그러나 재즈평론가 남우성의 말처럼 “록음악을 그만큼 유니크하게 미장센한 밴드는 없다. 퀸의 음악은 오직 퀸만의 것이다.” 영화는 ‘돈 스탑 미 나우’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 등 록의 송가들을 쏟아낸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을 지나, ‘쇼 머스트 고우 온’을 부르는 프레디의 절창으로 끝난다. 그렇다. 그는 갔지만 쇼는 계속돼야 한다. 퀸의 신화도 네버엔딩이다. 오는 24일은 그의 27번째 기일이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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