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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합의문' 초안 들고 온 영국 메이 총리가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일단은.

일단 내각의 지지를 확보했다. 의회는? 쉽지 않다.

  • 허완
  • 입력 2018.11.15 11:51
  • 수정 2018.11.15 18:16
ⓒDan Kitwood via Getty Images

영국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과의 협상 끝에 나온 ‘브렉시트 합의’ 초안에 대한 내각의 지지를 확보했다. 내년 3월말로 예정되어 있는 브렉시트 공식 개시를 앞두고 큰 관문을 하나 넘은 셈이다.

메이 총리는 14일(현지시각)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5시간 넘게 이어진 각료회의에서 ”열정적인 토론” 끝에 EU와의 탈퇴 합의문 초안을 지지하기로 내각이 ”공동 결정”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북아일랜드 안전장치(backstop)와 관련해 그랬다. 그러나 내각의 공동 결정은 정부가 이 ‘탈퇴 합의’ 초안과 ‘(EU와의 미래 관계) 윤곽에 대한 정치적 선언(Outline Political Declaration)’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이 총리의 말이다. 

그는 ”나는 이 탈퇴 합의(Withdrawal Agreement) 초안이 최선의 협상 결과라고 확신한다”며 ”이번 결정은 영국 전체를 위해 최선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강조했다. 

내각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투표로 결정하자’는 에스더 멕베이 노동연금부 장관의 요구를 메이 총리가 두 차례 거절했으며, 최대 11명에 달하는 장관들이 합의문 초안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메이 총리의 발표가 나온 직후 EU 측 협상 대표인 미셸 바르니에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했다. 

이제 영국과 EU는 최종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하는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안이 나오면 영국 의회와 EU 정상들은 각각 비준 및 승인 절차를 밟게 된다.

여기까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되면 마침내 영국은 합의안에 따라 ‘질서 있는 탈퇴’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된다.   

 

 

합의문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나?

이날 영국 정부는 585쪽에 달하는 합의문 초안(PDF)과 탈퇴 이후 EU와 맺을 관계의 원칙들을 담은 선언문(PDF)을 공개했다. 가디언은 ”영국과 EU의 이혼 합의라고 생각해보라”며 합의문 내용을 크게 3가지로 요약했다.

① 회원국으로서 애초 영국이 부담하기로 EU와 합의했던 분담금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의 문제

②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 EU 시민과 EU 내 영국 시민들의 권리 문제

③ 아일랜드섬 내 (영국 연방 소속)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사이에 물리적 국경선(hard border) 설치를 피하는 메커니즘

이 중에서 협상 진전을 가로막았던 핵심 쟁점은 아일랜드 국경선 문제였다. 영국과 EU가 ‘남남’이 되면 서로 수입 품목에 관세도 부과해야 하고, 노동력의 이동도 통제해야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국경선이 필요한 것.

애초 영국 정부는 EU 단일시장(single market)과 관세동맹(custom union)에서 완전히 탈퇴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럴 경우 아일랜드섬 내 물리적 국경선 설치를 도무지 피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영국과 EU가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국경선은 큰 문제가 안 될 수 있다. 지금과 비슷하게 역내 무관세 교역이 가능해지기 때문. 그러나 양측이 합의했던 ‘전환기간(transition period)’이 끝나는 2020년 12월 내로 당장 무역 협상이 마무리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EU는 무역 협상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북아일랜드만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남기는 ‘안전장치(backstop)’를 두자고 제안했다. 영국은 수용을 거부했다. 이렇게 되면 북아일랜드와 영국섬 본토 사이에 국경이 생기는 셈이기 때문.

대신 영국은 영국 전체를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EU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영국이 언제든 이를 탈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합의문 초안에는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한 내용이 담겼다. EU는 영국 전체를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방안을 수용했다. 영국은 EU 동의 없이 여기에서 탈퇴할 수 없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양측은 전환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까지 무역 합의를 끝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는 데에도 합의했다. 그럼에도 무역 합의가 마무리 되지 않으면 전환기간이 연장될 수 있고, 전환기간이 종료되더라도 무역 협상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안전장치(단일시장·관세동맹 잔류) 규정이 적용된다. 

영국이 EU 회원국의 의무는 하지 않고 단일시장·관세동맹의 혜택만 누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도 합의문 초안에 담겼다. 영국은 지금처럼 EU의 규제를 준수해야 하고, 유럽재판소(ECJ) 결정을 따라야 하며, EU 분담금도 내야 한다. 그러나 EU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할 수 없다.

전환기간은 2020년 12월31일까지로 하되 한 차례 연장될 수 있으며, 무역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연장을 원할 경우 영국은 2020년 7월1일이 되기 전까지 연장을 요청해야 한다.

연장 가능한 기한은 일단 ’20XX년 12월31일’로만 언급됐을 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협상을 마무리 하는 과정에서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섬 내 통관 절차를 피하기 위해 EU의 규정을 추가로 적용해야 하고, 영국섬에서 북아일랜드로 들어오는 가축 및 식료품 등에 대해서는 추가 검역이 이뤄지게 된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담겼다. 

ⓒBarcroft Media via Getty Images

 

의회 통과 가능성은?

우선 메이 총리의 보수당 내부에는 강경 브렉시트파들이 있다. 이들은 메이 총리가 가져온 합의문을 반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상 EU에 그대로 남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영국이 EU의 ”속국”이 되는 셈이라며 메이 총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허프포스트UK는 특히 전환기간이 예정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강경파 의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했다. ”체크아웃은 했는데 퇴실은 안 하는 ‘호텔 캘리포니아 브렉시트‘나 다름 없다”는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얘기다. (같은 비유를 쓰자면) 강경파는 ‘즉각 퇴실’을 원한다.

영국이 단일시장·관세동맹 탈퇴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 부분도 강경파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회의론자(Eurosceptics) 그룹을 이끌고 있는 보수당 제이콥 리스-모그는 곧바로 합의문 초안을 반박하는 글을 당 동료들에게 보내며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불신임 투표 등을 통해 메이 총리를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보수당 의원 48명만 확보되면 불신임 투표가 성사되며, 불신임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150표가 필요하다. 

합의 성과에 반발하는 내각 구성원들의 사퇴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날 저녁까지 사퇴 의사를 밝힌 장관은 없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후 다음날인 15일 오전(현지시각), 북아일랜드부 장관 샤일레쉬 바라가 메이 총리의 합의문을 ”지지할 수 없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우리는 이것보다 더 나은 합의를 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영국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그의 뒤를 이어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 온 브렉시트부 장관 도미니크 랍이 사임했다. 그는 ”영국의 본모습을 위협”하고 ”지난 번 선거에서 했던 약속”과 어긋나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Dan Kitwood via Getty Images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보수정당 민주연합당(DUP)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북아일랜드와 나머지 영국 지역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 보수당은 DUP의 도움 없이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당은 합의안이 일자리와 경제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밖에 친(親)EU파인 자유민주당(LibDem)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도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메이 총리로서는 이 모두를 설득해 의회 비준을 이뤄내야 한다.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하는 것. 

EU는 11월25 임시 정상회의를 소집해 영국과의 합의문에 서명할 것인지 결정할 예정이다. 영국 의회에서는 12월 중으로 비준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앞으로 남은 과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메이 총리와 그의 합의문이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정부는 2020년 6월까지 전환기간을 연장해 북아일랜드 안전장치 합의를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영구적 관세동맹에 들어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여전히 양측의 견해차가 큰 미래 무역 협정을 타결지어야 한다. (가디언 11월14일)

‘브렉시트 드라마’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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