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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신은 선택할 것이 너무 많아서 결정하지 못한다

[내일의 내가 하겠지]

ⓒhuffpost

Q. 얼마 전에 회사가 이사했습니다. 이사를 하는 김에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 사야 할 물건들은 사기로 했어요. 여러 팀에서 구매 목록 리스트를 작성해서 저에게 전달해 주었고, 이번 주 내내 저는 그 리스트를 보며 쇼핑 아닌 쇼핑을 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사지 못했습니다. 펜 하나 고르는데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펜 쓰는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잉크 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얇은 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외근 나가서 일일이 써 보고 사야 할 것 같아요.

사실 펜보다 더 중요한 구매 물품이 있습니다. 바로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의 사양뿐만 아니라 가격, A/S 서비스 여부 등 알아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제 딴에는 이것저것 비교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회사 사람들은 얼른 사라고 재촉해서 속상합니다. 이 정도면 그만 알아봐도 된다고 하면서요. 빨리 결정해서 사 버리면 저도 편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샀다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들 저를 탓할 겁니다. 고군분투하느라 힘들고 피곤하긴 하지만, 조금 더 조사해 보려고요.

A. 한국의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성인 남녀 2148명을 대상으로 ‘평소 결정 장애를 겪는지’ 물었다. 그 결과 성인 남녀 10명 중 7명인 70.9%가 결정 장애를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불필요하게 미루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지연 행동’이라고 한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휴대폰을 열어 검색만 해도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양질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더 결정을 하지 못하는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을 겪고 있다. 심리학자인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더 큰 불안감과 불만을 느끼게 되고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우유부단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선택의 역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증가할 것 같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감이 감소한다. 선택지가 많으면 행복감이 감소하다 못해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대안 역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이라는 손실이다. 두 번째 이유로 기대감을 들 수 있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여러 선택지 중 고심하고, 그 과정에서 최종 선택한 대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 마련이다. 불행히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세 번째 이유는 죄책감이나 후회의 여지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불행을 겪지 않을 탈출구는 되도록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실제로 미루는 습관은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일을 습관적으로 미룬다’고 밝히 미국인이 26%로 나타났는데, 이는 30년 전인 1978년(5%)보다 5배나 늘어난 수치다. 미국인의 40%는 미루는 습관 탓에 경제적 손실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적의 솔루션 vs 적절한 솔루션

선택의 역설 속에서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을 앞두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이 정해 놓은 최저 기준만 충족하면 선택하는 만족주의자(Satisficer)와 자신이 선택한 기준은 있지만 혹시라도 더 나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 최소기준주의자(Maxmiser)가 있다. 1956년에 경제학자 허먼 사이먼은 ‘최적의 솔루션보다 적절한 솔루션을 우선으로’ 두는 의사 결정 스타일을 설명하는 용어로 ‘Satisficer’를 소개했다. 행복 프로젝트로 전 세계 200만 독자를 열광시킨 『무조건 행복할 것』의 저자 그레첸 루빈은 ‘만족주의자들은 자신이 정한 기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일단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Maximizer’는 ‘최상의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 자신이 정한 기준에 모두 충족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모든 선택지를 점검하면서 결정을 미루는’ 사람들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만족주의자 혹은 최소기준주의자 중 어느 한쪽에 속한다는 것은 행복감과 건강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실제로 최소기준주의자는 만족주의자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 낙관성, 자부심이 훨씬 낮고 더 많은 후회와 우울증을 보인다. 최소기준주의자는 사회적인 비교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조건법적인 생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좋은 선택을 위해 모든 선택지를 분석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낳게 될지는 몰라도, 최상의 결과만을 좆는 것은 결정 사항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더 많은 불안과 후회, 더 적은 행복과 만족으로 이어진다.

최소기준주의자들은 완벽주의자들과 닮았다. 완벽주의자는 ‘무결점’을 추구하기에 선택지를 전부 비교‧분석한 뒤 확신이 섰을 때 결정하려고 한다. 철저한 탐색을 거쳐 마침내 결정을 내렸더라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곳에 더 좋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대학생 500명이 직장을 구하는 과정을 추적하여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자는 많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보낸다. 심지어 1000장이 넘는 입사 지원서를 보낸 사람도 있었다. 몇 달 뒤 다시 이들을 만나 보니 상당히 좋은 직장에 취직한 상태였다. 초봉도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20%나 많았다. 하지만 객관적 성공이 주관적 만족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완벽주의자는 구직 과정에서 비관적이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입사 후에도 여전히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구직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당연히 낮았다.
자신이 수행한 일이 자신의 가치와 미래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믿는 마음이 클수록 압박감은 커진다. 이때 결정을 미루면 잠시나마 그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종의 도피다. 일하지 않으니까 실패 혹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가끔은 자신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남이 대신 결정 해주시도 한다. 그러면 나중에 문제가 발견되더라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결정을 미룬 덕분에 예상치 못한 보상을 받기도 하고, 적어도 ‘있는 것이라도 지키자’라는 선택을 한다. 그 길은 결국 안전한 길이라기보다는 매너리즘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될 지도 모른다.

* 무기력한 직장인을 위한 심리 보고서 ‘내일의 내가 하겠지’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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