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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트럼프는 혼자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혼자'였다.

  • 허완
  • 입력 2018.11.13 19:12
ⓒBloomberg via Getty Images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그가 말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 혼자(America alone)’나 다름없었다.

지난 주말의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랑스럽게 ‘국수주의자’(nationalist)를 자처했다. 유럽 대륙에서 트럼프가 지향하는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으나, 국수주의를 지향한다고 밝힌 것은 트럼프 뿐이었다.

트럼프는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럽군 창설 주장에 대한 비난 트윗을 올렸고, 행사에 자신만의 차량으로 따로 참석했으며, 파리 중심부의 주프랑스 미국대사관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1일에는 국수주의적 고립주의의 위험에 대한 연설을 들은 이후 파리평화포럼에 불참하고 곧바로 귀국했다.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는 12일 이번 방문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트윗을 썼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해 그간 해왔던 불평을 되풀이했다. 미국이 “다른 국가들을 보호하느라 수십억 달러를 쓰지만 얻는 것은 무역 적자와 손해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굉장히 부유한 국가들이 미국이 제공하는 훌륭한 군사적 보호에 대한 돈을 내거나 스스로 방위해야 할 때다”라고도 주장했다. 

ⓒASSOCIATED PRESS

 

트럼프가 취임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번 프랑스 방문은 트럼프가 수십 년 간 유지되었던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완전히 뒤집고 동맹국들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 명의 죽음을 불러온 ‘오래된 악마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고 경고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 대상이다.

트럼프가 무시했던 다국적기구 역할 강화와 협력을 주장해 온 마크롱은 주말의 가장 중요한 행사에서 노골적으로 트럼프주의(Trumpism)를 비난했다. 수백만 명이 사망한 세계 전쟁의 종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선문(Arc de Triomphe)의 무명용사묘 앞에 수십 명의 각국 정상들이 모인 자리였다. 끔찍했던 전쟁이 끝났던 순간을 기리기 위해 유럽 서부 전선에서 종을 울렸고 전투기가 비행했다.

트럼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크롱은 미국과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것을 비판하며 국내에 치중함으로써 역사를 되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애국주의는 국수주의와 정반대이다. 국수주의는 애국주의의 반대다.” 마크롱은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누가 남들에게 신경을 쓰느냐”라고 할 때 “국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인 도덕적 가치들을 지우게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자리를 뜨고 나서 최근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국제적 협력을 호소하는 인상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은 “정치와 외교에서 생길 수 있는 타협이 없을 때 어떤 파멸적 결과가 나오는지 명백히 보여주었다”고 했다.

광범위한 다자간 협상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온 트럼프는 헝가리와 폴란드 등 유럽 국가들에서 부상하고 있는 국수주의 정서를 막는 유럽의 보루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마크롱이 연설을 하는 내내 무표정하게 앉아있었다. 

트럼프는 마크롱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주최한 10일 만찬과 11일 오찬에는 참석했다. 10일에는 마크롱을 만나 기자들 앞에서 비용 분담에 대한 의지를 서로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트럼프는 세계 정상들과의 개인적 대화에서는 말수가 적었다고 한다. ‘성격이 나빴다’는 말도 있었다. 개인적 대화를 언급할 권한이 없어 이들 취재원은 익명을 조건으로 말했다. 

ⓒASSOCIATED PRESS

 

트럼프의 파리 방문을 더 극명하게 상징하는 사건은 따로 있었다.

트럼프는 지난 주말의 가장 강렬한 사진에서 빠졌다. 전쟁이 끝난 순간(1918년 11월11일 오전 11시)에 울린 종소리가 그칠 때 세계 정상들이 비를 맞으며 나란히 걷는 사진이다.

다른 정상들은 엘리제궁에서 버스를 타고 함께 이동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영부인은 다른 차량으로 따로 참석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댔다.

트럼프 부부가 탄 자동차 행렬이 교통이 통제된 샹젤리제를 이동할 때, 한 여성이 상의를 벗고 거리로 뛰어 들어 “가짜 중재자”(fake peace maker)라고 외쳤다. 가슴에 ‘가짜’(Fake)와 ‘평화’(Peace)라는 단어가 들어간 슬로건을 써두었다.

경찰이 이 여성을 제지했으며 차량 행렬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그룹 페멘(Femen)이 자신들의 행동이었다고 후에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혼자 이동했다. 트럼프가 도착하자 푸틴은 악수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팔을 툭툭 쳤다. 트럼프는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푸틴과 트럼프가 파리에서 만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은 이번 달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리는 국가 정상 회담에서 공식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러시아 고위 인사는 미국과 러시아가 파리에서 만나려 했으나 프랑스측이 반대하여 취소했다고 나중에 밝혔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공약을 내세웠던 트럼프의 행동으로 인해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들의 관계는 삐걱댔다. 트럼프는 EU에 관세를 매겼고, 기념비적인 파리 기후협약과 이란 핵협약에서 미국을 탈퇴시켰으며, 가입국들이 부담금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점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이들은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 등의 공격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푸틴에게 보이는 호감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라는 일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국수주의자’를 자처했다.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이 단어의 사용을 변호했다. “당신은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나는 우리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말했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국수주의자들이 있다. 글로벌리스트들이 있다. 나는 세계도 사랑하고 세계를 돕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나라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에겐 문제가 많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제1차 세계대전(“끔찍한, 끔찍한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과 연합군 병사들의 묘지를 찾은 11일에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엄청난 싸움에서 최후를 맞은 용감한 미국인들을 기리기 위해 신성한 이곳에 모였다.” 전쟁 중 사망한 미국인 1500명 이상이 묻혀있는 파리 교외의 쉬렌 묘지에서 트럼프가 한 말이다.

“그들이 수호했던 문명을 지키고, 그들이 한 세기 전 고귀하게 목숨을 바쳐 지킨 평화를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흰 십자가들이 늘어선 묘지에서 검은 우산을 들고 잠시 혼자 서 있은 후에 말했다.

이 연설은 파리에서 약 100km 떨어진 미군 묘지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비가 와서 헬리콥터가 뜨지 못하자 이를 취소한 일 때문에 트럼프가 비판을 받은 다음 날 나왔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트럼프 대신 참석했으며, 트럼프는 다른 대체 일정 없이 대사관에 머물렀다.

다른 정상들은 국제적 협력을 꾀하는 파리평화포럼에 참석했으나 트럼프는 이 연설을 마치고 귀국했다.

프랑스는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였다. 프랑스가 이번 국제 기념행사 주최자로서 수행한 역할은 제2차 세계대전 때처럼 세계가 다시 순식간에 재앙에 가까운 전쟁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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