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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생각한다

ⓒChristian Hartmann / Reuters
ⓒhuffpost

미국 중간선거의 최대 이변은 이변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이다. 지난 2년간 ‘트럼프 정치’를 경험한 미국인들이 그의 정부를 ‘정상 정부’로 승인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중간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트럼프가 오바마보다도 좋은 성적표를 움켜쥔 것이다. ‘트럼프 인증 선거’를 보며 다시 미국을 생각한다. 미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이며, 우리는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미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니라 오히려 ‘예외 국가’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미국정치학회와 미국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시모어 마틴 립셋이 <미국 예외주의>를 쓴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에서 미국이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예외적으로’ 보수양당제 국가가 된 경로를 추적하고, 여기서 미국의 불평등 원인을 찾는다.

독일의 총리들도 미국의 현실을 보고 당혹감을 토로하곤 했다. 헬무트 슈미트는 “미국은 사회적으로 보면 지옥”이라고 평했고, 게르하르트 슈뢰더도 미국의 “빈곤에 충격을 받았다”며 미국식의 “비사회적이고 비연대적인 팔꿈치 사회”를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국이 언제나 이상적인 모델로서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 결과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미국화된”(조희연) 나라가 되었다. 미국식 사회모델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한국 사회를 ‘헬조선’으로 전락시킨 주범은 아닌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미국과의 관계 또한 이제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친미냐 반미냐의 선택이 아니라, 자주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미국은 이상화의 대상도, 악마화의 대상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국가일 뿐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가 내세운 선거구호지만, 언제 미국이 ‘미국 우선주의’를 취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미국과의 종속적 관계를 끝내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적기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후예로서 미국에 새로운 관계를 요구할 정치적 정당성과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편협한 이기주의에 실망한 국제사회도 우리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다.

지금 대등한 한-미 관계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한반도 평화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대등한 한-미 관계 없이는 한반도 평화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일 깨닫고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정부의 압력에, 대내적으로는 수구 야당의 저항에, 즉 미국과 한국의 ‘극우보수주의 동맹’의 협공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수구의 반민족적 숭미주의와 미국의 오만한 패권주의에 분노하는 국민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한 유럽의 대응이 통합된 유럽”(요제프 브라믈)이라면,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한 한국의 대답은 ‘평화의 한반도’여야 한다. 한-미 동맹보다 한반도 평화가 우선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각국의 전통적인 관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한때 미국의 ‘점령국’이던 독일이 “유럽의 운명은 유럽인의 손으로”를 외치며 ‘유럽 독자노선’을 선언한 것이나, 미국의 속국에 가까웠던 필리핀이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천명한 것이나, 이는 모두 신뢰를 잃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국제사회가 보내는 대답이다.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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