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11월 09일 16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09일 16시 49분 KST

북한 주민들이 마약에 빠진 이유

'무상 의료'의 환상 너머

huffpost

이런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월급의 1%를 공과금으로 제하는 대신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하고, 질병 발생 이후에 치료하는 것보단 질병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강조하며, 주치의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의료이용체계도 잘 정비되어 있는 나라. 제도만 놓고 보면 형평성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보건정책의 측면에서도 꽤나 바람직해 보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북한에서 운영된다면 어떨까요? 그 파국적 결과는 여러 가지 지표로 관찰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조금 다른 부분입니다.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각종 범죄를 저질러 수익을 얻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교한 위조지폐인 ‘슈퍼노트’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대북제제가 지금처럼 심해지기 전에는 분쟁지역 국가들에게 대량 살상 무기를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국가가 반미 노선으로 미국과 대립을 겪던 이란인데, 이란의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북한이 깊이 관여했다는 것이 이미 9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렇듯 국제적인 범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외화벌이에 열중하는 북한이다 보니 결국 이들은 마약에도 손을 댔습니다.

북한이 마약을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1월 8일부터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구체적인 날짜가 나오게 된 것이냐면, 이게 당시 북한을 통치하던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시였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시작된 ‘백도라지 사업(=양귀비 재배)’은 연간 수십 톤의 아편을 생산하는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재배지만 대략 4,000에서 7,000헥타르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데, 여의도 면적이 450헥타르 정도이니 정말 엄청난 수준이죠. 거기서 더 나아가 2000년도에 들어와서는 메스암페타민(속칭 히로뽕)도 제조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드라마 <나르코스>에 등장하는 콜롬비아 마약왕들도 울고 갈 수준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에 등장하는 콜럼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그런데 대체 이게 왜 보건의료 제도랑 관련이 있냐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마약 제조해서 해외에 팔아먹으면 그만이지, 얼핏 보기에는 이게 북한 주민들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거든요. 그렇지만 무척 안타깝게도 북한 주민들에게도 마약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바로 북한의 막장 의료 환경 때문입니다.

북한은 원래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한 사회주의 국가였습니다. 지금은 잘 상상이 안 가지만 80년대까지는 소련이나 중국 등의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 덕분에 한국보다 경제적 여건도 훨씬 좋았습니다. 오죽하면 불꽃 튀는 체제경쟁 상황에서 평양에 지하철이 먼저 개통됐을까요. 그런 상황이 역전된 것은 90년대입니다. 한국이 80년대 후반에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도 격차가 벌어진 한 가지 이유이긴 하지만 공산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 북한의 경제가 박살난 것이 가장 직접적 영향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련이 붕괴되며 경제난을 겪던 북한은 또 하나의 불행을 견뎌야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90년대 중반의 극심한 가뭄을 겪으면서 실질적으로 사회주의 배급 체제가 붕괴 됐거든요. 국가가 책임진다는 식량 배급이 무너지고, 살 길을 찾아 장마당을 찾은 주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배급제도가 무너졌는데 의료라고 다를 바는 없었고, 거기서부터 북한 주민들의 비극이 시작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다시 가져와보겠습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치료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병원을 방문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 배급 시스템이 붕괴되자 북한 병원이라고 약이나 치료를 위한 소모품을 갖추고 있을 여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병원에 가면(보통 담배 한 갑은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사가 치료를 위해 필요한 약을 적은 처방전과 필요한 비품들을 적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환자는 장마당으로 가서 그 약을 사고, 필요한 비품들을 사서 병원으로 갑니다. 주성하 기자의 책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에서는 이런 서술이 나옵니다. 주사기조차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지를 못해 소독해서 쓰는가 하면, 이 주사기도 병원 것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장마당에서 직접 사 온다구요.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된 연구에 등장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약이나 주사는 의사들도 없으니까 환자한테 뭐가 필요한지 목록을 만들어서 따로 줘요. 그러면 우리가 장마당가서 그것대로 다 사오죠. 진단이나 간단한 처치는 무료라고 봐도 되고 약이나 주사, 거즈나 다른 필요한 거는 환자가 부담하는 거예요”(사례D)

 

“의사들은 환자에게 필요한 페니실린을 장마당에서 사오라고 하는데 만약 20대가 필요하면 40대를 사오라고 해요. 그중에 한 5대 정도는 간호사가 가져가고 남은 것은 의사가 아내를 시켜 다시 장마당에 내다가 팔아요.”(사례K)

 

“수술 할 때는 의사가 따로 목록을 적어주는데 붕대부터 시작해서 마취약에 주사기까지 다 적어줘요. 항생제부터 시작해서 붕대, 가제 다 사오라고 해요. 사실 그거 다 필요하진 않은데 환자더러 사오라고 해놓고서는 마취과나 수술실에서 재고로 깔아놓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친한 사람들이나 간부들이 오면 그걸로 갖고 공짜로 치료해줘요.”(사례A)

출처 - 북한의 보건의료시스템과 그 이용실태에 대한 질적 연구: 2010년대 북한이탈주민의 경험을 중심으로

저는 이런 것과 아주 유사한 광경을 한국에서도 많이 봤습니다. 이런 흉악한 병원이 한국에도 있었냐고요? 저는 이런 광경을 병원에서 본 것이 아닙니다. 고객이 알아서 고기를 사 오면 차림비만 받고 알아서 구워 드시라는 식육식당에서 많이 봤죠. 병원에 가면서 거즈와 주사기를 사 오라니, 북한의 병원은 식육식당과 다를 바가 없는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식육식당보다도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식육식당에는 난방은 물론이고 전기와 수도 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만, 북한의 지방 병원에서는 난방은커녕 전기 공급도 안 되어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나마 상급병원은 좀 낫다지만, 거긴 간부가 아니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북한 주민들은 병원을 찾기보다도 장마당에서 대충 약을 사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나마 약을 구했으면 다행이지, 장마당에서도 약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애초에 북한에 수입되거나 유입되는 의약품이 많지가 않으니, 장마당에서도 약을 구할 수가 없던 거죠. 그래서 북한 정부는 의사들에게 ‘약초를 캐서라도 진료를 하라’는 황당한 지시까지 내리지만, 감염성 질환이 한약 같은 것을 써서 나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틈을 노려서 ‘가짜 약’이 범람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북한 주민들은 나름의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마약입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흔히들 마약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쾌락‘과 ‘중독’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에, 지독한 삶에 대한 도피 목적으로 마약을 찾았단 것 아닐까란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약은 아무런 다른 작용이 없이 중독 증상을 일으키고 쾌감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남용의 우려가 크기 때문에 관리를 하는 것이지, 적절히 사용한다면 원하는 약리작용만 얻을 수 있는 물질들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걸 정말 약으로 쓰고 있습니다.

 

Henry Romero / Reuters
아편을 만들기 위해 양귀비 유액을 채취하는 사진

 

 

앞서 북한에서는 양귀비를 엄청나게 재배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양귀비의 유액을 추출해서 만드는 것이 그 유명한 아편인데, 아편의 주 성분은 모르핀(morphine)이라는 물질입니다. 이걸 화학적으로 변형시키면 더 중독성이 강한 헤로인(heroine)으로 변하게 되구요. 여기까지는 몇 번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모르핀이 현재 이 시각에도 세계 각국의 병원에서 쓰이는 의약품 중 하나란 것 알고 계셨나요?

물론 모르핀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은 아닙니다. 다른 진통제를 사용해도 도저히 통증이 조절되지 않을 때, 예컨대 암 환자가 겪는 극심한 암성 통증 같은 것을 조절하기 위해서 최후의 수단으로나 쓰이지요. 이와 같은 약들을 ‘마약성 진통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무척 안타깝게도, 이런 약을 사용하면 통증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길어지기에 생략하지만,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마약 특유의 ‘쾌감‘이 발생하게 됩니다. 단기간은 몰라도 이걸 계속 사용하다 보면 의존성이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그 쾌감만을 좇아 통증이 없는데도 모르핀을 투여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아편 중독자’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은 무척이나 처참합니다. 회충약 한 알이 없어서 주민들 몸에 각종 기생충이 들끓는 상태인데, 시중에 타이레놀 같은 약이 흔하게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가벼운 두통 정도면 좀 낫지, 열악한 구강위생으로 인해 이가 썩어서 발생하는 극심한 치통이라든가 생리통 같은 경우에는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약이 없네요? 그러니 그런 통증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집에서 양귀비를 키워 아편을 제조하던가, ‘상비약’ 개념으로 아편을 집에 구비해두는 것입니다. 마약을 마약인지도 잘 모르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과량을 쓰고, 결국 마약 중독자가 되어버립니다.

차라리 아편은 좀 낫지, 북한에서 빙두/얼음/아이스 등으로 불리는 메스암페타민 과용은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메스암페타민, 흔히들 필로폰/히로뽕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원래 일본의 제약회사가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먹으면 피로가 싹 가시고, 식욕도 줄어들고, 기분도 좋아지고, 잠도 안 오는 기적의 약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이건 스누피 커피는 명함도 못 내미는 강력한 메스암페타민의 각성효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들인데, 이게 북한 주민들에게는 무척이나 절실했던 약효였던 겁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피곤에 쩔어 장시간 노동을 하던 북한 인민들은 ‘빙두’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이 약 한 번 먹으면 힘이 셈 솟고, 졸음도 사라지며, 밥도 덜 먹을 수 있으니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잖습니까. 마약을 일종의 박카스 대용품으로 복용하는 셈입니다.

 

AlexLMX via Getty Images

 

그렇게 너도나도 먹다 보니 중독자가 속출하게 됐는데,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의 마약에 대한 인지 수준은 무척이나 낮습니다.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26.6%는 아직도 마약을 치료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26.4%는 각성제나 가벼운 환각제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 주민의 53%가 마약을 마약인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약 중독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한국에서야 마약 중독자가 생기면 어찌 재활치료라도 하지, 북한에서는 마약 중독자가 적발되면 사형을 시키거나 노동교화소로 보냅니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은 차이가 없으니 치안을 담당하는 보안원들도 차마 단속을 하지 못하고, 이들은 지속적인 마약 부작용을 경험하면서도 마약을 갈구하다 결국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공산권 국가의 지원으로 유지되던 북한식 무상의료의 참혹한 현실입니다.

한국 내 일부 지식인들은 이러한 북한의 의료 체계를 두고 ‘무상의료’라며 칭송하곤 합니다. 북한이 제도적으로는 한국보다 낫다며, 한국 의사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환자를 돈으로만 본다고 비난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타이레놀이 없어서, 박카스가 없어서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북한 인민들을 보고도 이런 거짓말을 일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지 좀 의문입니다. 전 국민 무상진료가 의료제도에 있어서 가능한 한 가지 대안임은 분명합니다만,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참혹한 현실을 낙원이라 호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