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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7일 17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07일 21시 00분 KST

테르미도르 반동(反動)파를 위한 변명

benoitb via Getty Images
huffpost

자유한국당 전(前) 대표인 홍준표씨가 언론 보도에 의하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문재인 대통령을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코뱅당의 공포(恐怖)정치가인 독재자 로베스피에르에 비유하고, 그를 실각시킨 테르미도르의 반동(反動)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과연 없는지 물었다고 한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나 역시 문재인 대통령의 행태(특히 최저임금의 인상을 고집하는 경제 정책)가 로베스피에르를 상당히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특히 로베스피에르가 고집하고 그의 몰락을 자초한 최고가격제)을 한 적이 있지만, 로베스피에르를 몰아낸 테르미도르 반동파에 대하여서는 홍씨가 오해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간만에 몇자 끄적거려 보게 되었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프랑스 대혁명력(曆)에 따른 테르미도르(열월, 熱月)에(그레고리력으로는 1794년 7월 27일), 프랑스 혁명의회인 국민공회에 있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로베스피에르 형제와 생쥐스트 등 공포정치가들을 몰아낸 사건이다, 특히 ‘반동’이라는 용어 때문에 로베스피에르를 몰아 낸 세력들은 얼핏 보면 역사의 수레바퀴를 완전히 거꾸로 돌리려는 극악무도한 보수파들인 것처럼 (홍씨가 그랬듯이) 오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은 이들도 프랑스 대혁명의 대의에 공감하는 이들이었고(이들은 일단 프랑스 혁명의회인 국민공회의 의원들이었다), 프랑스왕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앙트와네트의 처형에도 동의한 공화파들이었다. 예컨대 로베스피에르 축출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진 푸셰 같은 이는 심지어 로베스피에르 소속 자코뱅당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자코뱅클럽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즉 이들은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국왕과 귀족, 고위 성직자들이 봉건 특권을 누렸던 구체제(앙샹 레짐)와는 절연하면서도, 단두대를 쉴새 없이 움직여 피를 가마니로 쏟아내는 로베스피에르 일파의 미치광이 같은 공포정치에 반대했을 뿐이었다. 그러기에 이들 테르미도르 반동파는 근대 시민사회를 확립한 프랑스대혁명의 성과는 계속해서 보존하려고 하였으며 부패하고 무능한 구체제 부르봉왕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계속하여 저항하였다. 그래서, 이들 테르미도르 반동파가 집권한 총재 정부 시절(1794년부터 1799년)은 구체제로의 회귀 움직임과 로베스피에르 추종자들에 의한 혁명 시도 양자에 모두 맞서는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시대였다.

그렇다면 이들 테르미도르 반동파가 홍씨가 오해한 것과는 달리, 기왕에 반동의 길(웃음)을 걷기로 한 김에 구체제인 부르봉왕정을 복귀하는데까지 타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뭔가 고매한 이상을 가졌기 때문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고,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이 국왕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졌던 이른바 국왕 시해(弑害)파였기 때문이었다. 즉 테르미도르 반동파도 왕의 목을 치는데에 동의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로서는 왕정이 다시 부활할 경우에는 대역죄인이 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에 안간힘을 다해서 왕정의 복귀를 막고 공화정의 유지에 힘을 쏟았던 것이었다. 우리로 치면 만약에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가 파면을 면하는 결정을 받아서 박근혜가 권좌에 복귀했을 때 탄핵에 찬성했던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 이탈 세력인 바른정당 의원들이 박근혜 정권에게 어떤 탄압을 받았을까 하고 상상해 보면 테르미도르 반동파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테르미도르 반동파의 입장은 그들의 총재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통령 정부/제정(帝政)에도 나름 계속 이어진 기조였다. 테르미도르 반동에 이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안개의 달) 18일의 쿠데타(1799년)까지 일어나 점점 프랑스 대혁명이 보수화 되어 가는 것을, 왕정복고(王政復古)가 이루어질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착각한, 외국에 망명 중이던,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는 나폴레옹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복위를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루이 18세가 귀국하는 길을 시체로 뒤덮이게 하지 않는 이상에는 돌아올 길이 없을 것이라는 매몰찬 답변을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나 다름 없던 변방 코르시카섬 출신의 (말하자면 개천에서 난 용^^)인 나폴레옹도 로베스피에르의 동생의 천거로 발탁되어 출세길을 걷기 시작해 테르미도르 반동파 정권의 뒤를 이었던 관계로 그 역시 부르봉 왕조의 구체제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던 것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민법전을 만들고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는 등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를 보존하고 승계하는 조치를 취한다.

이쯤에서 다시 홍씨의 오해로 돌아가 보자. 홍씨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으로 인하여 문 정권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는 것을 보고, 문 대통령이 (이제는 재앙이 되어 버린 것이 슬슬 드러나고 있는 그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방문 중에) 촛불혁명을 프랑스 대혁명에 비유한 것을 기화로, 프랑스 대혁명도 반동(응?) 세력인 테르미도르 반동파에 의하여 혁명파인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했듯이, 탄핵당한 대통령 박근혜와 구속된 대통령 이명박의 잔당인 자신들 자한당에게도 무슨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테르미도르 반동파라는, 홍씨 같은 이가 오해하기 좋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실은 이들 테르미도르 반동파나 이들의 뒤를 이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파)는 부패하고 무능한 구체제와는 분명히 단절된 정치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었고, 그러기에 부패한 절대왕정으로 회귀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요약할 수 있는 근대 시민사회를 확립시킨 프랑스대혁명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홍씨의 헛된 희망에도 불구하고 홍씨가 대표를 지냈던 자유한국당이 몰락한 두 대통령의 망령에 계속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나라에서 프랑스대혁명에서와 같은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며, 설사 테르미도르 반동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여기에 좀비나 다름 없는 지금의 자한당이 설 자리가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