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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7일 14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07일 14시 53분 KST

‘버릇’없이 굴어야 산다

OSEN
롯데 자이언츠 염종석의 2007년 선수 시절 모습
huffpost

“속구.”

맞았다.

“변화구.”

또 맞았다.

야구도사야? 남편 얼굴을 쓰윽 쳐다봤다. 남편은 별것 아닌 듯 대꾸했다.

“모르겠어?”

남편의 지시에 따라 마운드 위 A투수의 글러브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하. 속구를 던질 때마다 투수의 글러브가 아주 살짝 움찔한다. 투구 습관, 일명 ‘쿠세’였다.

흔히 야구를 신사의 스포츠라고도 칭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야구가 과연 신사의 스포츠일까도 싶다. 상대의 조그만 버릇까지도 잡아내 공격과 수비에 이용하는, 조금은 치졸해 보이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아니하다)라던가. ‘버릇’없이 굴어야 프로야구에서는 살아남는다.

 보통 타자들은 투수가 글러브를 잡는 방법이나 투구할 때 손의 위치 등으로 구질을 알아낸다. 어떤 투수는 공 던지는 순간의 입모양으로 타자에게 고스란히 구질을 알려주는 이도 있다.

롯데 염종석의 경우는 글러브 모양이 문제였다. 포크볼을 던질 때 평소와 달리 글러브가 벌어져서, 그 공을 노리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들에게 통타당하곤 했다.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라 버릇을 고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린다.

2008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3차전 때도 ‘쿠세’가 입길에 올랐다. 1-3으로 뒤진 7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SK 투수 조웅천의 115㎞ 커브를 받아쳐 솔로홈런을 터뜨린 두산 포수 최승환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구종에 따라 조웅천의 팔 높이가 약간 다른 것을 이용해 미리 구종을 알고 쳤다”고 말했다. 조웅천의 투구 습관을 간파한 것이다.

 버릇을 끄집어내는 대상은 비단 투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도루를 시도하려는 루상의 주자도 그들만의 습관이 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현 LG 코치)은 도루를 시도할 때 몸을 좌우로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도루왕을 5번이나 했던 김일권은 도루하기 직전 습관적으로 발 앞꿈치와 뒤꿈치를 이용해 슬금슬금 2루쪽으로 가곤 했다.

명포수 출신의 조범현 전 KT 감독은 “주자들은 2루로 뛰려고 할 때 일반적으로 중심을 오른쪽에 두거나 앞쪽에 둔다. 주자들의 움직임을 보고 포수는 견제나 송구준비 등의 대비를 미리 하게 된다”고 했다. 주자들의 버릇을 잘 포착해내는 ‘현미경’ 포수들은 도루저지율도 상대적으로 높다.

타자들도 일종의 버릇이 있다. 자기가 노리던 공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동작들이 있다. 베테랑 포수들은 종종 초구에 대한 타자들의 반응도를 살펴 타석에 선 선수가 변화구를 노리는지, 속구를 노리는지 간파한다. 방망이 스윙궤적과 발의 위치, 그리고 몸의 움직임 등을 곁눈질로 파악하고 타자들과 수 싸움을 시작한다. 현역 시절 최고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박경완 SK 코치는 “초구나 두번째 공이 날아올 때 타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아, 이 선수가 변화구를 노리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 경험을 이용해 감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2008시즌부터 프로야구 전 경기가 케이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면서 선수들의 버릇을 잡아내는 게 더 쉬워졌다. 전 경기 녹화가 가능해서 ‘매’의 눈을 가진 각 구단 전력분석원들이 상대팀 선수에 대한 분석이 용이해졌다. 텔레비전은 이제 제2의 전력분석원이 됐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야구에서 남에게 간파당한 습관은 팀 운명과 직결될 수 있어 더 무섭다. 습관, 만들면 독이 되기도 한다. 야구에서는 더욱 그렇다.

*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