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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07일 15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1월 07일 16시 09분 KST

노옥희 울산시교육감 이승복 동상 철거 지시 논란

조선일보가 발끈하고 있다

한겨레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일부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승복 동상 철거를 지시하면서 이 동상을 둘러싼 ‘사실관계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7일 울산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노 교육감은 최근 열린 간부회의에서 ”지난주 (울산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해보니 이승복 동상이 있었다”며 ”시대에 맞지 않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른 시일 안에 없앴으면 좋겠다”며 동상 철거를 지시했다.

이승복군은 1968년 발생한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어머니, 동생과 함께 공비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해 10월 삼척 등을 통해 침투한 일부 공비는 두달이 지난 12월9일 당시 강원도 평창군 소사초등학교 계방분교 2학년이었던 이승복군의 집까지 찾아왔다. 이군은 ‘남한이 좋냐, 북한이 좋냐‘는 공비의 물음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맞섰다. 그러자 공비는 ‘입버릇을 고쳐주겠다’며 이군의 입을 찢어 잔인하게 살해했다. 여기까지가 그해 조선일보 12월11일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목숨이 달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공산당이 싫다’고 당당히 밝힌 이승복군의 일화는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등 반공교육의 소재로 널리 활용됐다. 울산 등 전국 곳곳에 이승복군의 반공정신의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노 교육감이 사실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승복 동상의 철거를 지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조선일보는 7일 ”울산교육감 한마디에...‘이승복 동상’ 모두 사라질 판” 제목의 기사에서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노 교육감의 철거 근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애초 이승복 논란은 1990년대 들어 조선일보 기사가 오보였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이승복군의 발언은 조선일보에만 등장한 것이었는데, 1992년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당시 미디어오늘 기자)는 생존자인 이승복군의 형 학관씨 인터뷰를 통해 조선일보 기자가 당시 현장에 가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고 보도했다.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오보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이듬해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김씨를 형사고소했다. 기나긴 ‘이승복 오보논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핵심 쟁점은 조선일보 기자가 직접 사건 현장을 찾았는지 여부였다.

만 8년 가까이 이어진 긴 명예훼손 사건은 2006년 11월에야 끝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은 조선일보의 이승복 보도가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조선일보는 오보’라고 주장한 김종배씨한테도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의 보도가 합리적 의심에 기반한 것인 만큼 언론의 자유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선일보도, 김종배씨도 모두 맞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린 것인데, 이 때문에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두고두고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대법원은 2009년 명예훼손 사건과 별도로 조선일보가 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앞서 소개한 ‘오보전시회‘를 연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한테만 ‘진실 여부에 대한 구체적 사실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상의 이승복 논란과 별개로 노옥희 교육감의 ‘이승복 동상 철거’ 지시가 순조롭게 이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울산에는 현재 강남·복산·태화 등 초등학교 12곳에 아직 이승복 동상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개인이 기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따르면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승복 동상은 모두 개인이 기증한 것들로, 기증자나 유족의 동의 없이는 철거가 어렵다. 학교장 판단으로 철거 여부를 결정하고, 기증자 동의 절차나 철거한 동상의 보관 방법 등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